"너희 아빠처럼 될래?"... 그 말은 큰 실수였다

[공모-당신의 '혐오' 나의 '차별'] 십수년 묵혔던 미안함, 풀었습니다

등록 2013.07.03 16:42수정 2013.07.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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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자 서둘러 걷던 나는 낯선 청년의 인사에 걸음을 멈췄다. 건장한 체격에 검게 그을린 얼굴빛으로 건네는 웃음이 당황스러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하는 생각으로.

"선생님, 저 정우예요."
"정우…? 아, 그래. 한정우, 그럼 청년이 정우야?"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에 안심이 된 나는 정우라는 이름을 기억해내고서는 반가움을 놀라움을 나타냈다.

"네, 선생님, 저 그런데 길을 건너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그래. 저쪽으로 가자."

횡단보도를 건넌 나는 청년이 된 정우와 함께 길가에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그냥 인사만 주고받고 헤어지기는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기억해주는 정우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은 뭐하니? 학교는? 참, 할머니는 건강하시니?"

자리에 앉자마자 아는 궁금함을 쏟아냈고 정우는 웃음으로 답을 했다.


"그렇게 한꺼번에 물어보시면 무엇부터 대답해야 해요? 선생님은 여전하시네요."

갑자기 정우가 의젓해 보여 나는 머쓱해졌다.

"저는 지방대학교에 다니는데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서 여기는 잘 오지 못했어요.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그렇고, 작년에 군에 입대해서 지금은 휴가 나와서 집에 왔어요. 할머니는 제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빠 혼자 계셔서…."

나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에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초등학생 정우와 맑은 웃음을 짓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정우에게 미안하고 할머니께 죄송스러워졌다.

'엄마 없고 아빠는 건설 노동자'... 만만하게 생각했다

내가 정우를 처음 만난 것은 정우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시작한 과외는 남편 대신 내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당장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아이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특히 성적에 관련되다 보니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아 아이들 수가 줄어들까 최선을 다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서 실력 있는 과외 선생님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이 돼 교육비도 주변보다는 싼 가격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간혹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그만두게 되는 아이에게는 형편이 나이질 때까지 그냥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할머니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온 정우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과외를 택한 것도 손자를 염려한 할머니의 결정이었고 정우는 마지못해 따라온 것이었다.

"선상님, 우리 정우 잘 좀 가르쳐 주셔요. 얘가 천방지축 놀기만 하지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구먼요. 듣자허니 영식이가 여기서 공부한다믄서요? 암쪼록 그렇게만 해주셔유."

내 손을 잡고 부탁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그저 "알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공부라는 게 하루아침에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과외를 한다고 무조건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영식이는 반에서 1등만 하는 아이인데. 솔직히 정우 같은 아이를 받았다가 기존의 아이들까지 괜히 빠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나중에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로부터 원망을 들을까 하는 염려도 됐지만,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정우를 맡기로 했다. 그리고 정우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 수 없어 혼자, 맨 마지막 시간에 가르치게 됐다.

"엄마는 직장에 다니시니?"
"엄마, 안 계셔요. 대신 할머니가 있어요. 그리고 아빠도. 아빠는 집짓는 데서 일하세요. 벽돌도 나르고, 무거운 쇳덩어리도 옮긴데요. 그래서 우리 아빠는 힘이 무척 세요."

거리낌 없는 정우의 말에 나는 애틋한 마음이 생겨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언젠가부터 정우를 다른 아이들보다는 만만한 아이로, 평범한 가정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은연 중 차별을 두고 대하게 됐다. 게다가 정우 역시 자신은 꼴찌라는 사실에 그런 나의 차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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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집짓는 데서 벽돌 나르는 일할래? 그보다는 집을 지으라고 시키는 일을 해야지"라고 말했던 나. ⓒ sxc

또 쉬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의 마지막이다 보니 나도 기운이 딸릴 때도 있어 가끔은 숙제 검사만 하는 것으로 수업을 끝내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자로 손바닥을 치고, 한 번쯤은 거리낌 없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럴 때면 정우는 시무룩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타나곤 했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집짓는 데서 벽돌 나르는 일할래? 그보다는 집을 지으라고 시키는 일을 해야지.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겉으로는 정우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를 찾아준다면서 은연 중 나는 정우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아빠에 대한 자부심도 조금씩 허물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우는 기특하게 공부에 재미를 갖게 돼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중학생 때는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내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정우를 다시 만나게 됐다. 건강하고 밝은 청년으로, 한때 과외 선생님이었던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의젓한 모습으로 말이다.

거인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좋다. 그리고 정우야, 아버지 말이야. 네 아버지는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 너를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주셨잖니? 그러니까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혹시나 예전에 내가 했던 말들이 정우에게 상처로 남아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렇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나는 미안함을 내비쳤다.

"그럼요. 아빠는 저에게 영원한 아빠예요. 예전과 좀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힘이 세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저에게 공부에 대한 재미를 갖게 해주셨거든요. 언제나 건강하세요."
"…."

나는 대답대신 정우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정우의 손이 마치 거인의 손처럼 느껴졌다.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듯한 든든함으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당신의 '혐오' 나의 '차별' 공모 응모기사입니다.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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