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서 만난 지하철의 두 가지 풍경

등록 2013.07.07 16:54수정 2013.07.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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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잊었던 구걸과 적선의 의미를 생각나게 한 분의 신발 굽

잊었던 구걸과 적선의 의미를 생각나게 한 분의 신발 굽 ⓒ 이안수


측은지심과 사양지심


공공장소 계단이나 길거리에서 손을 내미는 걸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저의 입장은 지난 시간 일관되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그들의 깡통에 넣어주곤 했습니다. 60년대 시골의 고향집에 구걸을 오는 이가 적지 않았고 어머니는 한 번도 그들을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제 머릿속에는 누구나 손을 내밀면 보리나 쌀 한 되는 꼭 줘야 하는 걸로 굳어졌습니다.

청소년이 돼서는 적선이 그들의 자활을 막는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한두 푼의 작은 적선이 영원히 그들을 동냥아치로 만들 것이라는 인식에 눈을 뜬 것이지요. 냉소적인 마음으로 그들 앞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대학생이 돼서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좀 더 적극적인 논리로 적선에 반대했습니다. 특히 돈을 주는 것은 그들을 술주정뱅이로 만드는 일을 돕는다는 이유로 적선을 막는 것을 설득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다시 사회인이 되고서는 적선은 하지 않고 쪽박만 깨는 저의 입장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걸인들에게 투망법을 가르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도 이미 대부분의 강은 선점돼 있어서 경쟁력이 없는 그들이 그물을 칠 곳도 사실 마땅치 않다는 사회 구조에 눈을 뜨고부터였지요.


그 후부터 저는 그들 앞을 지나칠 때 저의 기분에 적선 여부를 맡겼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그들의 깡통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아니면 바쁜 척 외면했습니다.

수년 전,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가 동냥하는 이가 다가왔고, 아내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 작은 적선이 그들을 돕는 일이라고 여기는 지를….  


아내는 걸인을 만나면 무조건 작은 돈을 낸다고 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측은지심을 거슬리고 싶지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시스템을 바꿀 능력이 없으면서 시스템을 탓하며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무능력한자의 자기변명이다'라는 옛 생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내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지난 4일, 대화역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서울로 막 접어들었을 때 한 걸인이 전동차의 끝에서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왼손에는 목발이, 오른손에는 깡통이 들려있었습니다. 걸음은 느리고 얼굴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어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달팽이가 기어가듯 복도의 중앙을 느리게 다리를 끌어 옮겼습니다. 마침내 제 앞에까지 왔고 저는 좌석에서 일어나 1000원짜리 한 장을 그의 깡통에 담았습니다. 제가 자리에 되앉자 천천히 제게로 고개를 돌려 얼버무리듯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안내셔도 되는데…."  

제 앞을 지나칠 때보니 그의 왼쪽 구두 굽이 오른쪽 것보다 다섯 배쯤은 높았습니다. 그의 걸음걸이가 느린 이유로 보였습니다.  

아마 그 분은 제 수염 때문에 제가 아주 고령일 것이라 여겼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뇌리에는 그의 겸손한 말이 오랫동안 맴돌았습니다.

그는 제가 탔던 전통차에서 아무에게도 적선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칸에서도 얼마나 적선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양지심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심복으로 살다

a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지하도 벽 플러그에 코드를 꽂고 있는 사람. 그의 손에는 전기를 먹고사는 도깨비, 스마트폰이 들여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해주고 편리함을 가져다준 도깨비 방망이를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의 주인은 이것을 자신의 충실한 종이라 여기고있지만 사실은 주인이 이것의 심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지하도 벽 플러그에 코드를 꽂고 있는 사람. 그의 손에는 전기를 먹고사는 도깨비, 스마트폰이 들여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해주고 편리함을 가져다준 도깨비 방망이를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의 주인은 이것을 자신의 충실한 종이라 여기고있지만 사실은 주인이 이것의 심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안수


지하철 종로3가역 주변은 오래된 가게들이 노변에 도열해있고 종묘광장공원과도 닿아있어 도심에서 과거가 중첩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루해진 가게 주인의 모습이나 딱히 목적지를 두고 걷는 것 같지 않은 느린 걸음새의 노인들을 쉬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땅 밑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지하철 3호선이 1호선과 5호선을 가로지르는 이곳은 환승하는 승객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곳으로 저도 그 다망한 흐름에 발걸음이 휩쓸리다보면 뒤쳐진 영혼을 두고 몸만 앞서가는 것이 아닌지 어두커니 서서 저를 살피게 되는 곳입니다.

멀거니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에 움직임이 없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하도 통로의 한 쪽 벽을 향해 다리를 꿇어앉은 사람이었습니다. 백팩과 운동화 그리고 스포츠용 바지는 '속도전'에 알맞은 차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속도를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주저앉힌 것은 그 벽에 나 있는 작은 구멍 두 개였습니다. 그의 손에는 전기를 먹고 사는 도깨비, 스마트폰이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편리함을 가져다준 도깨비 방망이를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고 사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것의 주인은 이것을 자신의 충실한 종이라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주인이 이것의 심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밥은 굶어도 이 몬스터(monster)의 식사는 어떡해든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선물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더 큰 편리함은 물론, 편리함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축내고 있다는 사실을 종로 3가역 지하도의 플러그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스마트폰 #적선 #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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