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이후 13년간 유지해왔던 팝업창 형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SK컴즈
#1 한 남자의 싸이월드
2007년 이등병 시절.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우린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정리할 게 하나 더 남았다. 싸이월드 일촌. 상대방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일촌이라는 감정의 끈 한 쪽을 위태롭게 붙잡고 있었다. 군대 내 PC방인 '사이버지식정보방(싸지방)'에서 '일촌을 끊어, 말아?'하며 속병을 이어갔다.싸지방은 이등병에게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선임 뒤를 '졸졸' 쫓아 한참 만에 찾은 싸지방. 올 것이 왔다. 일촌이 끊겼다. 이미 정리된 사이에서 일촌을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래도 일촌은 오묘한 의미가 있었다. '일촌을 끊어야 진짜 헤어진 거다'라는 의식이 싸이월드 이용자 사이에 존재했다. 나도 일촌이 끊어지고 비로소 이별을 실감했다.'carpe diem'이라 적혀 있던 미니홈피 위쪽 가운데의 '대문글'에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 프로필 사진과 자기소개는 백지 상태로 비웠고, 다이어리와 사진첩도 닫았다. '쿵짝'거리던 배경음악은 '도토리 5개'를 들여 잔잔한 발라드로 바꿨다.'파도를 타면' 언제든 그녀의 미니홈피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지인의 미니홈피에서 우연히 그녀의 이름이 봤을 때, '누를까, 말까'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찌질함'의 결정체이지만 그땐 누구나 다 그랬다.#2 한 여자의 싸이월드 헤어진 다음날에 가장 먼저 하는 일.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첩에서 그와의 사진이 담긴 폴더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커플 미니미는 오늘부로 내 홈피에서 쫓겨난다. 비밀로 쓸 수 있는 방명록에 그가 나에게 은밀하게 고백한 글도 찾아 지운다. 다수가 이용하는 만큼 공개적으로 고백하기에도 안성맞춤인 미니홈피. 그가 나의 홈피에 남긴 애정 넘치는 일촌평도 거침없이 삭제한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내 홈피에 그가 남긴 흔적을 지우는 1차 작업일 뿐이다.
2차 작업은 내가 그를 향해 고백한 글을 지우는 일이다. 연애초기, 그의 진심이 궁금할 때 다이어리에 적은 '진심이 아니면 다가오지 마세요' 부터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까지. 연애중임을 티내는 글을 모조리 없앤다. 헤어진 후에도 그의 홈피에 방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미니홈피의 일촌평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빠, 어제 재밌었어요." 과연 무엇이 재미있었을까.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는 다른 여자와 즐거웠던 것일까. 난 그의 일촌 파도를 탔다. 나는 그의 홈피에 일촌 댓글을 단 여자들의 홈피에 가가호호 방문했다. 이러기를 며칠. 문득 '나도 잘 먹고 잘 산다'라고 티내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거나 이성친구와 찍은 사진을 올렸다. 어느 날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글에 "사랑스런 쭌이"(당시 일본드라마 <꽃보다남자>의 주인공 '마츠모토 준'이 인기였다)라고 쓰고 난 후 헤어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슬라이드 핸드폰을 밀어 올리자 술 취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준이는 잘 해 주냐?"가수 '싸이' 말고 홈피 '싸이'에 미쳤었다한때 대한민국은 '싸이'에 미쳤었다. 여기에서 싸이는 강남스타일 '싸이'가 아닌 '싸이월드'를 말한다. 싸이홀릭이라는 말이 생겼고 곳곳에는 싸이질을 하는 폐인들이 넘쳐났다.
싸이월드는 새로운 문화현상이었다. 그 중심에는 미니홈피와 일촌이 있다. 1999년 9월에 만들어진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비스로 당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열풍이었다.
2001년 10월 싸이월드는 사용자에게 정액으로 결제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 대신, 개인의 아바타에게 옷을 입히고 액세서리를 사서 미니룸을 꾸밀 때 결제할 수 있는 도토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토리는 배경음악을 사고, 홈피 글씨체를 바꾸는 등 사이버머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를 통해 싸이월드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싸이월드의 인기 원인은 인간의 인정 욕구를 자극한 데 있었다. 감정 표현이 직간접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억제된 표현 욕구를 미니홈피를 통해 실현했다. 앞서 '그 남자'와 '그 여자'처럼 미니홈피 운영자는 대문글과 프로필 사진, 자기소개 등을 바꿔 방문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방문자는 일촌평, 방명록을 이용해 그 감정 표현에 반응했다.
이 상호작용이 주는 재미로 싸이월드 이용자들은 꾸준히 미니홈피를 갈고 닦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미니홈피는 사람 대신 나에 대한 정보가 사는 공간이었다.
삼촌, 사촌보다 가까웠던 '일촌'관계얼마 전 너의 미니홈피 들어가 봤어/ 사진이 보이지 않아 왜 일까생각해봤어 맞아 너와 나는 일촌이 아니었어 / 왜 나랑 일촌 끊었어?괜히 끊었어 괜히 끊었어 / 걱정하지마 다시 일촌하면 돼뭐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 예전 그때처럼 내 사랑 유세윤으로 [UV의 '쿨하지못해미안해' 가사 중]무엇보다 싸이월드를 대표하는 상품은 일촌이었다. 용어 자체에서 친밀함이 느껴지는 일촌은 이용자 사이를 잇는 끈이었다. 일촌을 '맺고, 안 맺고'의 여부는 오프라인까지의 친밀도를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일촌명'에 담은 정성을 보고 두 이용자가 얼마나 가까운지 추정할 수 있었다. '선배' '후배' 같은 일촌명은 두 이용자 사이가 가깝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촌의 존재감은 단순히 싸이월드 체제에서 두 사람을 잇는 규율을 넘어섰다. '일촌을 맺을까' '일촌명은 뭘로 하지' '일촌 끊어버릴까' 등은 싸이월드 이용자의 필연적 고민거리였다. 일촌평, 일촌공개 등 일촌만을 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촌을 둘러싼 감정선은 싸이월드를 하는 큰 재미였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은 없었다. 한때 일반명사로 쓰일 만큼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밀리면서 월 사용자가 최고 2700만 명에서 현재는 12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와 달리 개인페이지에 머무는 시간보다 타임라인과 뉴스피드에 집중한다. 페이스북은 빠른 속도로 정보가 공유되는 인터페이스로 사용자들을 끌어들였다. 페이스북이 정보공개 설정에서 세부적이라면 싸이월드는 단지 개인공간에 누군가를 참여시켜놓은 느낌이다. 그동안 싸이월드 앱 3.0, 모아보기, 싸이랑 등 여러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떠난 일촌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엔 부족해보였다.
팝업창 없애고 메뉴 간소화 "아카이브 기능 주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