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서비스업 실태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등록 2013.07.09 10:44수정 2013.07.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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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당하고만 있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태를 다룬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같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화를 내고 심하게는 때리기까지 하는 '고객'들에게 정당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병원 신세를 지는 그들이, 남편의 눈에 답답하고 힘겨워 보였나 보다. 자신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경찰서에 가고, 고용주에게 고발하고, 하는 데까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저렇게 당하면서 아무 말 못하고 병원 신세까지 지는 거냐고, 그는 텔레비전을 향해 말했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남편에게 대꾸했다. 저 사람들도 저러고 싶겠냐고. 그렇게 저항하면 바로 짤리고, 짤리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으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가 없는데. 고용주들이 고용인을(나는 갑과 을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왜 갑을관계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상하의 위치가 갑을이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아서다), 자본을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구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더니 남편은 그래도 저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이미 당할 만큼 당해서 개선 의지는 커녕 잔뜩 위축이 된 그들에게, 남편의 이야기는 더 상처가 될 것 같아서이다.

문제를 그렇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격 탓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그 밑에 실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고객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실제로 힘든 것은 고객들 때문이 아니다. 고용주가 자신의 고용인들을 지키면, 고객들은 함부로 고용인들을 대하지 않는다. 고용주가 자신의 고용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고객들에게 그럴 거면 오지 말라고, 당신 같은 손님 안 받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돈을 가진 것은 고객들이고, 고용주는 그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가진 것은 고용주이고, 고용인들은 그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돈이, 모든 것을 앞선 것이 문제다.


그렇게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그렇게 돈 때문에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화들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흡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도 그렇다. 학생들은 입학을 하자 마자 일명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을 강요 받는다. 부모와 교사로부터.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등수'가 적힌 성적표를 받는다.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된다면, 만약 어느 기업에서 업무 실적에 따라 사람들에게 '등수'를 매긴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아파트에서 가장 집 청소를 잘하는 집 순서대로 등수를 매겨서 각자의 집에 성적표를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등수를 받는 당사자라고 생각해 보자.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심각한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은 죄도 없이, 그들의 특성과는 전혀 관계 없는 지식의 항목들을 누가 더 잘 외우고 그것을 가지고 누가 더 문제를 잘 푸는지 평가하는 종이를 받고, 그것 때문에 심지어는 부모님께 혼나기까지 한다. 학생들이 항의하면 부모들은 말한다.

"너희 다 잘 되라고 말하는 거야."

'다 잘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결국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그래서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들은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의사와 판검사를 선호하는 것도 연봉 때문이다. 돈을 잘 벌게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특성, 인격, 그 모든 것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대기업에 입사한 A씨가 후에 어느 항공사 승무원에게 라면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고 폭행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속한 구조 속에 제대로 적응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벌게 하기 위해서라면, 학생들의 인격 같은 것은 무시하고 함부로 그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는 학교를 거쳐, 비슷한 분위기의 대기업을 거쳐, 그는 돈이 있으면 자신이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습득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 따위는 그는 관심 두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도 그것을 얻기 위해 숱한 상처를 받아왔으니까, 그것은 당연한 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교육뿐만이 아니다. 광고는 또 어떤가. 소비를 부추기는 각종 문구들.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를 부풀리면서, 광고는 상품을 팔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카피들을 내면화한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재벌 2세가 노동자들을 폭행하면서 한 대에 100만원씩 주겠다는 말을 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신문의 사회면에만 나온 기사이다. 드라마에서 재벌 2세는 대부분 최고 인기를 누리는 남자 탤런트이다. 그는 거친 면이 있지만 내면은 착하고 가지지 못한 여주인공에게 헌신적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여주인공을 따라 길거리 떡볶이를 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어떻게 재벌 2세가 길거리 떡볶이를 음식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전에 동남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음식을 냉장고도 아닌 그냥 플라스틱 상자에 며칠씩이나 담아 놓고 팔았다. 매우 값싼 음식이었으나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음식을 먹지 않았다. 솔직히 그것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푹푹 찌는 날씨 속에서, 그 더운 상자 안에 며칠씩 있는 그런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지인들은 거리낌없이 그 음식들을 먹었다. 재벌 2세가 보는 길거리 떡볶이가, 내가 보는 동남아 음식과 다르겠는가. 아니, 그보다도 더 구역질 나는 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재벌 2세가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한층 성장해서 멋있어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그 인물이 실제 인물이 아님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재벌을 동경의 대상으로 이미지화 한다. 재벌과 서민의 결합을 통해, 재벌도 충분히 서민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 실제로는 전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고, 실제 있는 재벌의 모습을 이미지화 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문제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태도도 아니고,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몇몇 '진상' 고객들의 태도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을 낳은, 물질이 인간을 앞서는 문화, 소유가 존재를 앞서는 문화이다. 텔레비전과 교육 기관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 문화가 존속하는 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그들이 고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이 문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류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를 내야 한다. 피켓 들고 거리에 나서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사무실에서, 인간이 돈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다독여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순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진상 부리지 말자고 다짐하기 보다는, 돈보다 인간의 가치를 우선한다고 우리가 잘못 습득했던 것들을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그 동안 받았던 성적표를 찢어 버리고, 그 동안 보았던 텔레비전 속의 광고들을 지워버리고, 그 동안 즐겼던 드라마 속의 재벌의 이미지, 가진 사람들의 이미지를 모조리 날려버려야 한다. 그리고 진정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에 대해 당장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씩, 그렇게, 이 시대에 반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새로운, 인간 지향적인 공동체를, 서로 도구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그 무엇보다도 서로의 존재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공동체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은 어떨까.
#서비스업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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