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 수력발전기 설치를? 놀라지 마세요

[기획- 메콩의 햇빛⑫]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교육훈련 프로그램 참관기2

등록 2013.07.11 09:59수정 2013.07.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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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착한여행과 함께 라오스 산간학교에 햇빛발전을 지원하는 공동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2009년부터 꾸준히 라오스 산간학교에 태양광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 사는 메콩강 유역 산간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10km이상 걸어서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이들 산간학교 기숙사에 지원되는 태양광 시스템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라오스 산간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햇볕발전 이야기에 오마이뉴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북극 가까이 사는 이뉴잇족은 하얀 눈의 색깔을 수십 가지로 구분해 표현할 수 있다고 들었다. 수백 개의 지류를 가진 메콩 가까이 사는 라오스 사람들도 강을 구분해 표현하는  말들이 정말 많다. 기본적으로 강은 매남(물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진짜 강의 어머니는 메콩이기에 메콩은 매남컹(컹 강), 또는 줄여서 매컹('메콩'의 현지 발음이다)이라 부른다. 그보다 작은 강들은 이 매(어머니)를 떼고 남(물)만을 붙여서 구분한다. 유명한 왕위양(Vangvieng) '남쏭'이나 여기 우리 동네 싸이냐부리의 '남훙'이 그 예다.

이보다 대부분 조금 더 길고 넓은 라오스 남부의 강들에는 쎄(물줄기)만 덧붙이거나 여기에 남(물)은 떼고 '쎄남너이', '쎄껑' 등으로 부른다. '남'이나 '쎄'보다 작은 것은 후와이(냇물)라고 부른다. 라오스 북부 타이와의 국경 마을 이름 '후와이싸이'가 그 예다. 또 그 보다 작은 것은 헝(도랑)이다. (전반적으로 내가 굳이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말들보다 라오스에서 강을 가리키는 말들이 한 단계 정도 큰 것 같기는 하다) 초소수력발전기는 바로 이 작은 '후와이'나 '헝'에 주로 설치해 쓴다.        

재생가능에너지 교육 2주차, 오늘은 싸이냐부리 직업학교 가까이 흐르는 남훙(훙강)이 교실이다. 어제 배운 초소수력발전기 이론의 현장 적용을 공부해 보는 시간이다. '후와이'나 '헝'에 비해 좀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류에 해당하고 직업학교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어서, 내가 교육 전에 미리 가보고 실습지로 정한 곳이었다.

초소수력발전기를 찾아가는 길

 초소수력발전기 설치할 곳을 찾아 가는 길.
초소수력발전기 설치할 곳을 찾아 가는 길.이영란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신났다. 이젠 제법 오랜 교육시간으로 피로가 누적되었을 터인데도 남훙 강가로 내려가는 발걸음들이 재고 가볍다. 직업학교 학생 8명(원래 4명이었으나 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2주차 교육에 4명의 학생이 새로이 합류했다)과 선생님 4명, 썬라봅(Sunlabob)에서 온 강사와 교육내용 녹화를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가는 조보영 연구원까지.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자란 풀숲을 헤치고 나와 드디어 남훙에 닿았다. 그런데 우려했던 대로 상류이긴 하지만 초소수력발전기를 설치하기에 남훙은 적당하지 않았다. 건기와 우기의 유량과 수위 차이가 너무 크고 또 유역이 넓고 평탄해 필요한 만큼의 낙차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로 내지는 않았아도 성급한 나는 '큰일이다. 이거 오늘 수업 제대로 못하겠네'를 넘어 '그럼 이거 직업학교에 초소수력발전기는 설치할 수 없게 되는 건가!'까지 낙담을 사서하고 있는데, 선생님과 학생들 간에는 토론이 벌어졌다. 어제 공부한 것에 기초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몇몇 장소들을 얘기하고 그곳이 적절할 것인지를 서로 논의한다.


직업학교 다른 실습장 근처에 있는 '헝'에 가보기로 했다. 선생님들이 학교 행정실에 부탁해 우리가 타고 갈 차를 마련했다. 차까지 타고 현장 학습을 간다는 것에 학생들이 더욱 신났다. 나도 이것이 우리 일이 정말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는 것이 아닐까 싶어 신났다.

작물원예과 실습동 앞에 차를 세웠다. 학교 울타리를 지나서 넓은 풀밭 가운데로 이어진 길을 줄줄이 따라 가는 우리들 모습이 명랑하다. 소풍가는 것 같다. 곧 좀 더 아래쪽 남훙에 도착했다. 이편에 석 대 저편에 한 대 조각배가 매어있다. 멀리 어딜 봐도 주인도 사공도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주저 없이 바지를 걷고 들어갔다. 배안에 고인 물을 퍼낸다. 선생님들도 바지를 걷었다. 학생들이 두 척, 선생님들과 우리 둘이 한 척. 고개만 돌려도 뒤집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조각배를 탔다.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소풍이 아니라 이건 모험이다.


건너편에 겨우겨우 내려 몇 발자국 수풀로 들어서는데 앞서 가던 선생님이 외친다. 다시 돌아가요, 여기 물이 없어요. 저런, 이번에도 초소수력발전기를 설치할 장소를 못 찾았구나, 실망할 틈도 없이 다시 배에 올라 잔뜩 힘을 주고 있는데 배가 중간에 뭐에 걸린다! 선생님들이 배에서 치워보려고 하다가 아예 배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물 깊이가 겨우 엉덩이! 물살도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이니 이정도면 빠져도 절대 죽을 일은 없었을 거였다. 그걸 알고 나니 걱정이 돌아오며 모험이 끝났다.

우리 마을에 맞는 초소수력발전기는 어떤 걸까?

그러나 우리 탐사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후와이'다. 다시 차에 올라 학교 북서쪽으로 5분 정도를 타고 갔다. 포장도로 입구 쪽에 좀 큰 마을이 있고 안쪽 길로 들어올수록 보이는 가구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크기에 비해 꽤 깊이가 있어 보이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내렸다.

 초소수력발전기 설치할 곳의 여러 조건들, 유량과 유속 등을 측정하는 방법을 실습하고 있는 직업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
초소수력발전기 설치할 곳의 여러 조건들, 유량과 유속 등을 측정하는 방법을 실습하고 있는 직업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영란

나름 그냥 눈으로 보아도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인가 개울로 내려가는 걸음들이 빨라진다. 이곳을 이미 아는 선생님들은 강사에게 지형을 안내하고 학생 두어 명은 물을 건너뛸 디딤돌을 놓아주고 진흙 수렁들을 살피며 앞서 내려갔다. 또 두어 명은 잠깐씩 사라지더니 기다란 대나무 가지 몇 개를 구해서 나타났다.

오늘 수업의 목표, 이곳 물의 유량과 유속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긴 대나무 두 개를 수면 위에 걸쳐 놓아 기준 지점을 표시하고 짧은 대나무들로 바닥을 짚어가며 가능하면 사각형을 이루도록 그 단면을 여러 개로 나누어 면적을 구할 수 있도록 깊이를 측정했다. 위쪽 기준 지점에서 나뭇잎을 띄워 아래쪽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서 유속을 측정했다. 너무 큰 잎은 흐르는 물만이 아니라 수면의 공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작은 나뭇잎을 이용해 여러 번 측정한 값의 평균을 쓴다.            

선생님들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그제 있었던 태양광발전기 설치 실습 때도 그 관심과 집중도가 한 낮의 열기를 무색케 할 만큼이었지만 오늘은 그저 설치를 위한 사전조사, 계측 연습일 뿐인데도 눈빛이 이 개울물보다 더 맑고 반짝거린다.

직업학교 학생들은 연구소가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한 산골학교가 있는 지역이나 그만큼은 아니어도 전기 쓰기가 쉽지 않은 시골에서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미 초소수력발전기를 많이 봐 왔고 직접 자기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태양광발전기에 비해 값이 싸서 라오스에서 많이 쓰고 있긴 하지만 초소수력발전기는 우리가 이렇게 적절한 장소를 찾아다니고 이런저런 수고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현장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제대로 설치하지 않으면 부족한 낙차나 유속, 유량에 의해 효율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건기엔 물이 부족해 못 쓰고 우기엔 급작스레 물이 불어 발전기가 유실되거나 통나무나 다른 부유물들이 터빈에 들어가 고장 나 못 쓰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예 물어서 건져 놓기도 한다) 심지어 안전사고도 빈번하다. 이런 위험과 불안정, 저효율 문제를 체감해온 학생들이이기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서 더욱 반짝거렸을지도 모른다.

 재생가능에너지 교육훈련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 학생들. 강사가 기기들을 설치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진지하게 보고 있는 학생이 바로 쩌와다.
재생가능에너지 교육훈련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 학생들. 강사가 기기들을 설치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진지하게 보고 있는 학생이 바로 쩌와다. 이영란

싸이냐부리 도의 가장 남쪽 껜타오(Kenthao) 군에서 유학 온 쩌와(소수민족 몽족으로 열일곱 살이다)네 집에서도 초소수력발전기로 전기를 얻는다. 설치하는데 별다른 제약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자유형(그만큼 불안정하고 효율이 낮은 방식이다. 초소수력발전기 설치 방식은 대략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으로 두 대를 돌리고 있다.

모범생 쩌와는 이번 여름에 졸업을 한다(라오스는 가을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초소수력발전기 설치장소 조사에 이어 실제 설치 훈련은 오는 10월에 다시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쩌와는 10월에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로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 했다. 나도 그 10월을 고대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영란 기자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입니다.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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