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그 자리에 있는 거 아닙니다

'귀태' 발언에 '격노'했다는 박근혜 대통령님께

등록 2013.07.13 14:23수정 2013.07.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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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鬼胎)발언에 대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 요구하고 있다. 이 홍보수석은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대통령님. 먼저 야당의원의 '박정희 귀태' 발언으로 인해 마음 상하신 데 대해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야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딸로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참담했을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 대목 이후로 제 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씨에게 쓰는 게 아니라, 한국의 18대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이니 이 점 오해 없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당 고위정책회의 브리핑을 하면서 "지난해 출판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있다.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을 길게 다시 쓴 것은 대통령님께서 이 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입니다. 홍익표 의원은 분명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박 전 대통령을 '귀태'라 표현했습니다. 대통령님을 귀태라 표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대통령님께서 "격노" 하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나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다음과 같이 발언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게 현 대통령을 부정하는 건가요?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그 의원의 자질 문제이지 "대한민국의 자존심"까지 들먹일 것까진 없습니다. 그 정도 말로 망쳐질 자존심이라면 박 대통령님도 함께 했던 한나라당의 노무현 대통령 조롱 연극 '환생경제'로 이미 다 망쳐져서 남아 있지도 않겠습니다.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 역시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홍 의원의 발언에 어떠한 '모독'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통령님은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한국 역사에서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이 되었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독재를 했으며, 그 기간 동안 많은 죄 없는 이들이 감옥에 가고 사형을 당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을 '귀태'라 부르는 데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습니다.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잡아 가두고 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알제리 독립을 돕는 사르트르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의견에 드골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합니다.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 대통령님과 생각이 다르지만 저 역시 대한민국입니다.

홍 의원의 발언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그 근거가 뭔지 궁금합니다. 우선 '귀태'는 박 전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한 게 곧 대통령님의 정통성을 부정한 게 되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모두 이어서 그 책임까지 지실 각오가 되어 있으신가요? 아니잖아요. 국민들이 대통령님께 바라는 것도 그게 아닙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의 입장에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 자리가 원래 그런 자립니다.

홍 의원이 대통령님을 일본의 아베 총리와 비교한 부분 때문인가요? 대통령님도 아베 총리와 단순 비교 되는 게 싫으시군요. 아베 총리는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네요. 홍 의원은 대통령님이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고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 하는 것 같다" 는 발언을 했습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대하는 대통령님의 태도를 보면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이며, 그와 별개로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저 정도 발언도 하면 안 된다는 게 더 어이가 없습니다.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 (TV 조선) 혹은 "완벽한 아치 모양의 허리에 감탄" (강용석) 같은 말만 듣기를 원하는 게 아니길 바랍니다.

국가 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고, 남북 정상회담의 대화록이 공개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이 상황에서 야당 의원의 일탈 발언을 꼬투리 삼아 정국의 흐름을 바꾸려고 일부러 일을 키우려 하는 거라면 그만 두시길 권합니다. 국민들이 그렇게 어수룩하지 만은 않습니다. 무엇이 몸통이고 무엇이 깃털인지 정도는 구분합니다.

그래도 국민이 대통령을 욕하는 건 나쁜 건 아니냐는 생각을 하시나요? 우리 속담에 "없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독재 정치를 하던 유신시절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랏님 욕 했다가 잡혀가서 치도곤 당한 사람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절라디언" 운운이야말로 국민 모독

일각에서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는 "민주화"는 없는 데서 하던 나랏님 욕을 있는 데서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로 실제로 나랏님 욕을 맘 놓고 할 수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나랏님 욕이 국민 오락처럼 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참 나쁜 대통령"이라 했던 분이 이제 대통령이 되고 나니 나랏님 욕을 못하게 했던 유신시대로 되돌려 놓고 싶으신가요?

고 노무현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을 '귀태'라 불렀다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국민을 모독"했다고 했는데, 진짜로 국민을 모독하는 게 어떤 건지 알려 드릴게요.

"아따 절라디언들 전부 *져버려야 한당께"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인 국가정보원의 공무원들이 익명 뒤에 숨어서 인터넷에 쓴 글들입니다. 어떻습니까. '귀태' 하고는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전라도 출신이 아니지만 이 말에서 심한 모독을 느꼈습니다. 대통령님은 안 그렇습니까? 이 발언에 대해 대통령님은, 혹은 청와대 어느 참모도 한마디 한 게 있습니까?

대통령님은 한국의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님이 "격노" 해야 할 건 "귀태" 발언이 아니라 "홍어 종자 절라디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딸로서 느끼는 모독은 개인적으로 해결을 하시고, 국민이 국가 기관에 의해 모독을 느끼는 바로 거기에 대통령의 자격으로 조치를 취하셔야 하는 겁니다.

지금 대통령님의 모습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의 모습인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의 모습인지.
#귀태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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