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끌어 모으는 이 남자, 약장사 아닙니다

퇴직 후 어르신들 '건강 지킴이'로 나선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

등록 2013.07.15 17:51수정 2013.07.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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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유산각에 모인 어르신들. 박노창 전 구례부군수의 건강 강연을 귀담아 듣고 있다. ⓒ 이돈삼


지난 12일 오후 지리산 자락의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50여 명이 유산각에 모여 있다. 밖에서 보기에 꽤나 진지한 표정들이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며 무더위를 잊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는 박노창(65) 전 구례 부군수. 그는 건강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지,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운동법이 무엇인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었다.

우상철(64) 방광마을 이장은 "발 마사지와 손톱을 자극해 건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전 부군수님의 강연이 재밌고 귀에도 쏙쏙 들어왔다"고 말했다. 조정순(78) 방광마을 여자노인회장도 "여기서 들은 대로 집에 가서 꼭 해볼 것"이라면서 "그러나 기억이 제대로 날 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배종원(75) 노인회장은 "배운 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고향 토박이, 공직생활 마치고 강연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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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지킴이로 나선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가 지난 12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유산각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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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지킴이로 나선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고향마을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열고 있다. ⓒ 이돈삼


"그 동안은 솔직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았어요. 퇴직한 뒤부터는 남을 위해서,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서 봉사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건강관리 요령도 알려드리고 있죠."

박노창씨의 말이다.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에서 태어난 박씨는 고향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토박이다. 구례농고를 졸업한 뒤 1968년 고향의 광의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구례군과 전남도의 주요 부서를 오가며 근무하다가 구례 부군수를 거쳐 전남혁신도시추진단장 전남교통연수원장을 끝으로 43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지난 2006년 구례 부군수로 재직할 때였는데요.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 수술을 받았어요. 전남교통연수원장으로 일하던 2009년에는 대장암 판정을 받고 대장 절제수술과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죠.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그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건강의 중요성이었다. 퇴직(2012년 2월)을 앞두고 그는 광주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문을 두드렸다. 거기서 발마사지와 건강한 발 관리요령·건강치유 마사지·대체요법 등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재미삼아 기초적인 마술도 배웠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나만 안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고생하시는 고향 어르신들께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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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창 전 구례부군수가 만든 건강강좌용 차트.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알아야 할 건강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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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가 지난 12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유산각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하고 있다. ⓒ 이돈삼


박씨는 그날부터 '9988 생활 속 건강교실'이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 교재를 만들었다. 어르신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큰 글씨로 차트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구례읍을 시작으로 관내 8개 읍·면을 돌아가며 건강강좌를 열고 있다. 고향마을 어르신들의 건강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박씨는 강연을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 발목 펌프운동 ▲ 손톱 자극을 통한 건강관리 ▲ 요통과 허리디스크 예방 ▲ 경혈 자극 마사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쳤다. 서툰 솜씨지만 마술공연도 하며 재미까지 선사한다. 교육을 끝낸 다음엔 음료수를 사서 같이 마시고 마을이장과 노인회장을 초청해 식사도 함께한다.

박씨는 강연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르신들에게 평소 배우고 익힌 발마사지도 직접 해준다. 대를 이용해 본인이 직접 만든 발목 펌프운동 기구도 마을회관과 노인당에 나눠준다. 변비가 심한 어르신들에겐 약초교실에서 구입한 변비약도 준다. 허리디스크나 요통·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우계묵(우슬뿌리에 닭발 첨가)을 만드는 요령도 가르쳐준다.

"선거요? 건강 살필 시간도 없는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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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유산각에서 열린 건강강좌에서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가 강연 도중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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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구례 방광마을에서 열린 건강강좌에서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가 마술을 선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어르신들이 신기한듯 활짝 웃고 있다. ⓒ 이돈삼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고향 어르신들의 따뜻한 성원과 격려에 힘입어 아무 탈 없이 마감을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순수한 마음으로 고향에서 재능과 지식을 나누는 거죠. 내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되고요. 고향 어르신들을 내 부모처럼 섬기며 보람과 긍지도 갖고. 사는 게 즐거워요. 장기적으로는 뜻을 함께하는 후원자를 모집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효도관광, 집수리 봉사 같은 한 차원 높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박씨의 말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군수나 지방의원 선거에 나오기 위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지방선거에 뜻을 두고 있는 입지자들이 견제까지 해오고 있다. 그는 이런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순수한 봉사활동임을 강조했다.

"안타깝죠. 제가 선거에 나갈 생각이었다면 어르신들께 점심을 대접하고 음료수를 사드리겠습니까. 그건 선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되는데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선거에 출마하는 일도 절대 없을 겁니다. 단언합니다. 선거에 나가지 않습니다. 사실 제 건강 살피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박씨의 말에서 단호한 의지가 읽혀진다. 그러면서 건강교실에 참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계속해서 막걸리 잔을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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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유산각에 모인 마을주민들이 박노창 전 구례 부군수의 건강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박 전 부군수는 1년 넘게 고향마을을 돌아가며 건강강좌를 열고 있다. ⓒ 이돈삼


#박노창 #구례부군수 #방광마을 #구례 #건강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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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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