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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이문재의 아날로그적 감성 웃음 <두근두근>, 개콘의 새 희망

등록 2013.07.15 17:55수정 2013.07.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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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웃음이 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훈훈한 웃음이라고 할까. 따뜻한 상황에서 공감과 함께 어우러지는 웃음은 한 번 자지러지고 돌아서면 잊는 그것보다 감칠맛이 있다. 희극의 정의에는 해학과 풍자의 의미가 있고, 그것은 동시대인들의 보편적 감성을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공감과 웃음을 함께 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럴 때 흔히 빠지기 쉬운 것이 인신 공격적 코미디다. 상대의 신체적 특징을 깎아내리고 외모를 비교하고, 말투나 행동을 놀려댄다. 그것이 시대의 트렌드가 된 듯 이제는 코미디언 스스로가 자신의 특징을 타인 앞에서 비하하는 자학 코미디로까지 발전했다.


반사적으로 웃기고 피식하는 헛웃음도 나온다. 하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을 넘어 머리 굵은 장년층에게까지 퍼진다. 사람을 인격의 주체가 아닌 상품으로 바라보는 시대. 자제를 요청하진 못할망정 코미디가 그 트렌드를 앞서 이끄는 모습에 다소 아쉬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

물론 모든 탓을 코미디나 그 업에 있는 이들에게 돌릴 순 없다. 하지만 기왕이면 즐겁게 웃자고 만드는 코미디. 외향적 특징이 아닌 인간의 감정이나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면 보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새 코너들로 무장한 <개그 콘서트>, 그 중에 단연 반짝이는 '두근두근'

'예전만 못하네 어쩌네'해도 여전히 국민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KBS 2TV <개그 콘서트>에도 그런 모습은 존재했다. 일부 코너의 콘셉트가 그랬고, 그렇지 않은 코너라도 대사나 행위로 보여졌던 것. 거기에 과도한 연예인들의 홍보용 출연과 간접광고의 의혹까지 일며 심각한 위기론이 대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근래에는 여러 새 코너들과 신인 개그맨들의 투입으로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청률의 제왕' 같은 경우는 막장으로 치닫는 TV 프로그램과 거기에 동조되어 가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적절히 꼬집고 있다.


그 외 좋은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봐야 할 반짝이는 코너가 있다. 신인 개그맨 이문재와 장효인이 20년지기 친구로 설정된 '두근두근'이라는 코미디다. 남녀 사이의 사랑과 우정 사이를 줄 타며, 말하고 싶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관계를 숨 막히게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남녀사이의 풀리지 않는 명제인 '친구사이'를 크렌베리스의 감미로운 음악 'ode to my family'에 맞춰 연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코미디와 연극의 사이를 넘나든다. 포복절도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햇살 같은 미소를 짓게 되고, 코너가 끝나면 아쉬움과 설렘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누구나 공감하는 그리고 추억할 만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인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이성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친구로라도 만족해야만 했던 옛 기억들. 그 사람의 한 마디와 웃음 하나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시간들이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설렘 속에 녹여낸, 이문재식 코미디 예사롭지 않아

이문재의 이런 연기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끝나기는 했지만, '있기 없기'라는 코너를 통해 심각한 상황이 웃음으로 치환되는 절묘한 상황을 보여줬던 것이다.

교도소 안 면회실,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둔 남녀. "내 인생 다 끝났어! 너도 가 버려"라는 남자에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기 있기 없기?"라며 돌연한 웃음을 선사하는 여자. 실상 여자 친구가 자신을 기다려주길 바라며 분노와 애교 사이를 오가는 남자. 지켜보던 간수까지 눈물을 쏟는 기묘한 상황은 감동과 웃음이 뒤섞인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매주 올려지는 '나쁜 사람'의 경우 슬픔의 반전을 제대로 보여주는 코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형사가 피의자의 개인적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린다. 반전이면서 시청자들이 듣고 싶었던 사연을 대신 전달해주는 상황이 펼쳐진다.

피의자의 사정은 대개의 소시민 입장을 대변한다(그렇다고 범죄 자체가 옹호되는 건 아니다). 불순한 의도로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 같지만, 듣고 보면 대부분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혹은 홀로 굶고 있는 여동생에게 주기 위한 등의 이유로 오해를 살 행동을 했을 뿐. 반전의 묘미는 물론 시큰한 감동이 웃음을 따라온다.

스마트 시대의 아날로그적 웃음이 통하는 이유

신인 개그맨 이문재는 나이 서른에 힘들게, 거의 막차로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기다림과 고민의 시간이 웃음의 자양분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있기 없기', '나쁜 사람', '두근두근' 등의 이야기에는 단순히 웃음만이 아닌 삶의 희로애락이 아슬아슬한 설렘과 함께 녹아 있다.

때문에 과도한 노출이 없어도,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 않아도 공감과 웃음이 뒤따르는 것이다. 모든 코미디가 이와 같을 수 없겠지만, 분명 <개그 콘서트>가 음미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런 신인을 발굴하고 무대를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개콘이 지닌 가장 무서운 저력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면에서 속도전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제어되는 세상. 빨라야 하고 즉각적이어야 하고, 메시지는 간결해야 한다. 문화도 다르지 않아 드라마 전개 속도가 느리면 작가는 욕을 얻어먹고,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전반부에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감 그 자체가 주는 깊이와 원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가 좋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한 풍자엔 웃음을,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면 귀를 세운다. 개콘의 신인 이문재식 코미디가 공감을 이끌어내고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첨단 디지털 시대에 지치고 뒤떨어진 현대인에게 필요한 치유 중 하나는 바로, 설익은 듯해도 풋풋한 아날로그적 감성이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 #두근두근 #이문재 #나쁜사람 #있기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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