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에서 듣는 죽음 소식... 현대차 너무합니다

[철탑에서 보내는 편지] 20일 희망버스... 함께 분노해 주십시오

등록 2013.07.19 10:57수정 2013.07.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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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할 당시의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철탑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274일(18일 기준). 그동안 제가 아는 세 분의 동지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이운남 열사,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윤주형 해고자, 그리고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자동차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사무장이 최근 죽었습니다. 모두 짧은 유서에 "꿈과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살아남은 자에게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동지들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동지들과 함께 한 기억, 동지들의 투쟁 정신과 삶을 가슴속에 새기기 위해 열사라 부릅니다. 그들이 꿈꿨던 걸 이루기 위해 싸웁니다. 박정식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4일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너무 답답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005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 류기혁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참 많은 말이 있었습니다. 당사자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며 수군거렸습니다. 숭고한 죽음에 칼질을 했습니다. 죽음 앞에 온갖 잣대를 들이미는 그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박정식 사무장이 자결하자 2005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교섭과 투쟁을 할 것인지를 놓고 '폭탄돌리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누가 박정식을 죽였습니까

2004년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생산 공장 3곳(아산, 울산, 전주) 사내하청업체 전체(127개)가 현대자동차와 계약한 사내하도급 전 공정(9234)이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습니다. 박정식 열사는 불법파견 판정이 나던 그해부터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부 판정에 따라 현대자동차는 두 차례 개선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지하고도 불법파견 노동자를 계속 고용한 것입니다. 만일 현대차가 2004년도 노동부 판정을 이행했다면 박정식 열사는 지금 아산공장에서 소나타와 그랜저를 만들고 있을 겁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도급은 존재할 수 없다"는 취지로 아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의 고용주는 정몽구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자동흐름 방식의 컨베이어 작업을 하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그 판례에 따라 2007년 1심 판결을 받은 아산지회 사건도 2010년 1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그해 박정식 열사는 희망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25일간 긴 파업투쟁도 함께하며, 부당징계도 받았습니다. 만일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고,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박정식 열사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2010년 공장 점거 파업투쟁으로 많은 비정규직 조합원이 부당해고와 부당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정규직 전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다"라고 최종 확정판결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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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일 가까이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 ⓒ 노동과세계 변백선


판결 이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는 함께 요구안을 만들고 현대차와 특별교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부정하며, 신규채용 3500명 만을 고집했습니다.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를 비롯한 불법파견 노측 교섭단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요구안을 지속적으로 수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헌법소원이었고, 많은 폭력과 탄압이었습니다.

만일 현대차가 현재까지 16차례 진행한 특별교섭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교섭을 진행했다면 박정식 열사는 자결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현대차는 박정식 열사만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아닙니다. 2005년 류기혁 열사도 사망했습니다. 또 2005년 최남선 동지와 2010년 황인화 동지를 분신에 이르게 해 죽음 문턱까지 가게 만들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법 준수'을 요구하며, 정당하게 단결권을 행사한 200여 명의 조합원을 해고했습니다. 해고자 조합원은 지금도 죽음의 벽과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16일 새벽, 현대차는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 박정식 열사 죽음을 애도하는 분향소를 침탈했습니다. 죽음을 모독하고 열사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3일장을 했다면 17일 출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18일)까지 장례일정도 잡지 못했습니다. 현대차가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정식 열사를 따뜻한 대지로 하루빨리 돌려보내기 위해 민주노총, 민주노총 충남본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아산위원회,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가 모여 열사대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박정식 열사 정신을 이어받아 투쟁을 조직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제 산자들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해 졌습니다. 대법원이 판결했고, 노동부가 판정했으며, 노동위원회가 수없이 결정한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현대차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로 구성된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팀은 박정식 열사 명예회복을 요구 조건으로 받아 안아야 합니다. 이미 특별교섭 6대 요구안 중 2번째 요구안으로 "비정규직 투쟁으로 발생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수배, 고소, 고발, 징계, 해고, 손배, 가압류 등을 즉각 철회하고 명예회복 및 원상회복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박정식 열사도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으로 희생된 조합원입니다. 만약 현대차가 박정식 열사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변한다면 현대차를 상대로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현대차 사업장에서 벌어진 이 잔인한 죽음의 행진을 막기 위해, 또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죽음을 볼모로 싸움을 조장한다"는 현대차 악선동과 보수언론의 여론몰이가 벌어지겠지요. 또 박정식 열사 개인사를 들추며 투쟁을 회피하려는 내부 비판도 존재할지 모릅니다. 이미 금속노조는 박정식 열사와 관련한 조합비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 일부 잘못한 부분을 인정했습니다.

박정식 열사가 꾸었던 꿈을 이제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 조합원과,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함께했던 현대차지부, 금속노조, 민주노총 조합원이 이어야 합니다. 또 이 땅의 비정규직 투쟁을 응원하는 모든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동참으로 꽃피워야 합니다.

7월 20일, 함께 분노해 주십시오

7월 20일 울산으로 희망버스가 옵니다. 자발적으로 자비를 들여 이 먼 곳까지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시민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저와 천의봉을 당장 내일이라도 철탑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 박정식 열사 죽음을 제대로 추모하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을 중단시키는 길은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말입니다.

희망버스를 타는 여러분께 호소 드립니다.

젊고 꿈 많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희망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서 현대차는 또다시 칼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동지들은 다소 주저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투쟁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내서 투쟁할 수 있게 함께 분노해 주십시오. 기필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에서 현대차의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게 연대해 주십시오. 승리해서 열사의 주검을 안고 슬퍼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박정식 열사를 '비겁한 겁쟁이'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열사의 마지막 유언으로 글을 마무리 합니다.

"같은 꿈과 희망을 좇았던 분들에게 전 그 꿈과 희망마저 버리고 가는 비겁한 겁쟁이로 불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그 꿈과 희망을 찾는 끈을 놓지 마시고 꼭 이루시길...." (2013. 7. 15. 고 박정식 열사 유서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박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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