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병캠프 참사] 친구의 빈자리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여했다가 친구를 잃은 충남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19일 학교로 돌아왔다. 함께 떠났던 친구를 두고 혼자 돌아온 한 학생이 텅빈 교실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닌데, 정부는 마치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이 돈벌이를 위해 우후죽순 생겨난 사설 업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청소년 활동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레저 활동 시설 관리 문제로 치부했고, 레저 활동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학생 교육활동 문제로 판단해 교육부 소관으로 여겼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 활동이므로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우선이고, 또 연간 학사운영계획에 따른 학교장 재량 하에 치러지는 행사이니 개별 학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늘 그래왔듯, 업체 담당자와 학교장, 그리고 인솔 교사들이 처벌받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장담하건대, 관련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 중에 이번 참사에 책임을 지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 중 도의적 책임을 느껴 자진 사퇴하지 않는 다음에야 기실 법적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끔 돼 있는 탓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책임에 관한 '폭탄 돌리기'가 가능하도록 돼 있으니, 외려 '물러난 놈만 바보'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구청 공무원인 친구가 술자리에서 건넨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왜 '철밥통'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죽자 사자 밤샘 공부를 하며 승진에 목매다는 줄 알아?"라며 질문하더니 이렇게 자답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봉급만 많아지는 게 아니야. 권한은 커지는데 반해 책임은 줄어들기 때문이지!"사후약방문 식의 호들갑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업체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것과 체험활동 교관이 전문성 없는 무자격자라는 사실, 방학 즈음이면 업체들의 허위 과장 광고가 판을 치고 영업사원들의 학교 방문이 줄을 잇는다는 등의 소식이 연일 터져 나온다. 정부든 언론이든, 지금 관심의 반의 반만이라도 사전에 보여주었으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이때, 국방부는 생뚱맞게 '해병대 캠프'라는 명칭을 아무나 사용할 수 없도록 상표 등록을 검토하겠단다. 해병대라는 이름을 팔아 체험활동 사업을 하는 영세업체들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일 테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일 수는 없을 터, 되레 '해병대'라는 이름을 더럽히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닐는지. '조직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그들이니 말이다.
방학을 '대목'으로만 여기는 이에게 아이들 맡겨온 것 거듭 강조하거니와 체험활동은 죄가 없다. 외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딱딱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책과 씨름해야 하는 가엾은 아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유일하다시피 한 '탈출구'다. 방과 후 수업에다, 방학 때마저 학교에 나가 수업을 받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취소시키기는커녕 더욱 권장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우선 '옥석'을 가려야 한다. 방학 때 잠깐 문을 열었다 닫는 영세업체들에 대해 인허가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사후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이 나서서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는다면, 학교는 업체와의 계약에 있어서 허위 과장 광고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저 방학을 '대목'으로만 여기는 그들에게 소중한 아이들을 맡길 순 없잖은가.
무엇보다도 우리 교사들의 자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쓰라린 고백이지만, 지금껏 외부 업체에 위탁한 체험활동의 경우, 교사들에겐 휴가와 다름없었다. 학교에서 해당 장소까지 인솔은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교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업체 입장에서는 교사가 아이들 대열에 끼어있으면 불편하고, 교사도 굳이 함께하길 원하지 않는다. 업체와 교사가 서로를 '배려'하는 셈이다.
이러한 관행은 뿌리가 깊다. 이번 해병대 캠프와 같은 체험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청 단위의 단체수련활동과 심지어 수학여행까지도 아이들과 교사들이 '분리'되기 일쑤다. 듣자니까 일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는 늦은 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따로 야간 순찰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체험활동은 교육적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고 만다. 언제부턴가 학교는 수업이나 체육대회 등 학교 울타리 내에서 실시되는 교육을 제외하곤 모두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겉으로는 그들의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실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학교의 '조심스러운' 태도 탓이다.
외부 체험활동을 '휴가'로 여긴 교사들도 반성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