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흑산도 부럽지 않은 대둔도

[한국의 섬③] 세 마을이 모여 이뤄진 천혜의 가두리 양식장

등록 2013.08.02 13:31수정 2013.08.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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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둔도의 무인도서 하죽도  하죽도는 대둔도와 다물도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것이 돛대바위

대둔도의 무인도서 하죽도 하죽도는 대둔도와 다물도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것이 돛대바위 ⓒ 이재언


a 돛대바위와 낚시배 전경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 촬영하다.

돛대바위와 낚시배 전경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 촬영하다. ⓒ 이재언


대둔도 개요

목포에서 100km 남짓 떨어진 흑산면의 작은 섬 대둔도는 뱃길로 1시간 50분 거리에 있다. 흑산군도 중에도 높은 언덕을 지녔다고 해 대둔도라 불려온 이 섬은 다물도와 이웃하고 있다.


대둔도는 흑산도 예리항으로부터 4km 떨어져 가까운 곳에 있지만, 어미섬 흑산도와 관광 섬 홍도에 묻혀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이 섬에는 150여 가구, 500여 명의 주민이 우럭과 전복양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오전 8시, 목포에서 홍도·흑산도행 쾌속선을 타면 비금도 도초도를 거쳐 1시간 50분 만에 대둔도와 다물도에 닿는다. 대둔도와 다물도는 서로 마을이 보일 만큼 마주하고 있어 도착지점도 같다. 대둔도에 갈 승객은 쾌속선에서 다물도 전용 종선인 다물도호로 바꿔 타고 다물도와 대둔도에 각각 도착한다. 이 종선은 다물도와 대둔도 주민을 위해 지자체에서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 한다.

대둔도 둘러보기

a 수리 마을 전경 움푹 들어간 천혜의 섬마을 수리 이곳에 출장소와 학교 보건진료소가 있다.

수리 마을 전경 움푹 들어간 천혜의 섬마을 수리 이곳에 출장소와 학교 보건진료소가 있다. ⓒ 이재언


a 대둔도 수리마을 입구에서 만난 어부  대둔도의 관문 수리마을에서 우럭과 전복 양식장 그물을 씻는 어부

대둔도 수리마을 입구에서 만난 어부 대둔도의 관문 수리마을에서 우럭과 전복 양식장 그물을 씻는 어부 ⓒ 이재언


이곳 대둔도는 도목리·오리·수리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다물도와 가장 가까이 있고 여객선의 기항지인 수리마을 가는 길을 먼저 택했다. 종선이 수리마을을 향해 섬의 오른쪽 호안으로 접어들었다.

수리마을 선착장에 이르니 '전복과 우럭의 고향, 대둔도'라 적혀 있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 뒷면에는 '바다사랑! 고향사랑! 흑산면수리어촌계'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낯선 얼굴을 만났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이곳에서는 몇몇 외국인을 고용해서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었다. 대부분 태국 등에서 왔다는데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의사소통은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다. 이 섬엔 외국인 노동자 외에 페루에서 1명, 베트남 3명, 중국 교포도 3명 시집을 와서 살고 있다.


수리라는 마을 표지석이 꽤 폭이넓은 방파제를 배경으로 해 서 있다. 방파제 끝에 부교가 함께 눈에 들어온다. 수리마을 오른쪽에 있는 제법 큰 정자쉼터에 한마음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니 왼편에 자리한 흑산면수리노인정이 나타난다. 제법 높은 곳에 자리한 노인정은 단층건물이라도 옥상에서 사방을 전망할 수 있었다.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의 지형이 관찰되고 바다 건너 멀리 돌산이 보였다. 수리마을에는 흑산면 출장소와 학교가 있다. 대둔도의 유일한 학교인 흑산초등학교 수리분교장. 학교는 높은 지대에 있어 옹벽이 운동장을 떠받치고 있고, 계단으로 오르는 윗부분에 교사를 지어놓았다. 현재에는 교사 2명  그리고 13명의 학생과 유치원생 5명이 있다. 학생 수가 적어도 지금도 가을이면 운동회를 연다고 한다. 그날은 학생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아 시끌벅적하다고. 왜냐하면 주민 대부분이 이 학교가 모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생들 최고로 400여명이나 되었다니 격세지감이다. 자연을 벗삼아 뛰노는 아이들은 바다와 산의 많은 생물들이 탐구 대상이다. 교육 여건은 열악하지만 사교육에서 벗어난 모습이 이곳 아니면 어디서 찿아 볼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a 대둔도와 다물도의 전경  큰 섬이 대둔도, 우측 파란색이 저수지이며 좌측은 도목리, 큰 섬 앞에는 다물도가 보인다.

대둔도와 다물도의 전경 큰 섬이 대둔도, 우측 파란색이 저수지이며 좌측은 도목리, 큰 섬 앞에는 다물도가 보인다. ⓒ 신안군 제공


수리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도목리다. 오리와 도목리 사이에 도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비포장 도로를 걸어가는데 산에는 야생화와 풀벌레들이 즐비했다. 마을로 들어가면 대둔도에 큰 예배당이 보이는데 섬마을 예배당으로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도목리 마을은 산 아래 구릉지에 집중되어 있고 해안에 일부 모여 있고 집의 형태는 거의 2층 슬라브로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마을은 단순하고 짧은 골목길로 이뤄져 있다. 해안길 오른쪽에 돌로 쌓고 시멘트를 덧씌운 작은 방파제가 있다. 이곳이 관리선 계류장인데 길이 8m에 너비는 3m이다.

이곳에서 맞은편을 바라다보면 가운데가 뻥 뚫린 동굴이 제대로 보인다. 동굴 옆으로 도목리에서는 유일한 해변인 굵은 모래해변이 짧게 형성돼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오면 팔각정 쉼터 있고 효자각이 하나 있다. 돌로 된 각 안에는 효자 광산김씨 진수 기적비와 사적비가 있다. 효자각의 주인공은 이곳 도목리 출신으로 20년 동안 병든 모친을 지성으로 간호했으나 낫지 않아 좌측다리 허벅지를 베어내 구워 드시게 해 소생시켰다는 효행이 비문에 적혀 있었다.

우수공동체 마을 도목리

a 도목리 앞 바다 가두리 양식장  흑산면에서 태풍을 피해 가장 안전하게 전복과 우럭을 키울 수 있는 장소이다.

도목리 앞 바다 가두리 양식장 흑산면에서 태풍을 피해 가장 안전하게 전복과 우럭을 키울 수 있는 장소이다. ⓒ 이재언


a 대둔도 도목리에 있는 승천교회  고 장기려 박사의 동생 장기실 전도사가 세운 교회로 가두리 양식장 공동체를 만들었다.

대둔도 도목리에 있는 승천교회 고 장기려 박사의 동생 장기실 전도사가 세운 교회로 가두리 양식장 공동체를 만들었다. ⓒ 이재언


도목리는 마을입구에 도목 자율관리공동체라 적힌 알림판이 있었다. 복합어업을 2006년에 신청했고, 그 결과 2008년과 2009년에 우수공동체로 선정된 사례마을이다. 대둔도가 공동체를 구성하는데 용이했던 배경은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 대둔도에 교회가 들어선 것은 1959년 승천교회로부터였다고 한다. 부산의 고 장기려 박사의 사촌누이인 장기실 전도사가 이곳에 뼈를 묻기까지 23년에 걸친 헌신이 있었다는데,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수치는 섬지역이 갖는 재미있는 특성이다. 공동체 구성의 주된 배경이 이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교회 출신 김현중 장로는 1991년에 처음으로 대둔도에서 가두리양식장을 시작했다. 바다가 너무 깊고, 태풍 때문에 양식하기가 적절치 않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러나 김 장로는 여러 가지 고난을 극복하고 양식에 성공하면서 주민들도 함께 시작했다. 많은 물량의 우럭이 전국으로 공급되고, 마을의 수입이 늘어 어민들의 생활도 달라졌다고 한다.

도목리는 깨끗한 주택들, 방파제 매달려 있는 신형 소형 어선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넓게 펼쳐진 가두리 양식장에서 넉넉함이 느껴진다. 그 후 가두리가 사양길로 접어 들었지만 김 장로는 흑산도어업협동조합장이 되어 8년 동안 어민 소득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

도목리에는 35가구에 10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어촌계 회원은 35명이며 공동체 회원수는 50명이다. 2009년 기준 어업 가구당 평균소득이 9000만 원. 어업으로만 연 9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는 말인데, 이 정도면 부자마을이라고 할만 하다. 어촌종합개발계획에 의해 도목리 전지역이 어류 및 패류 양식장으로 조성돼 높은 소득을 올려온 것이다. 그러나 양식업이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어 예전의 호황 때와는 사정이 달라저 지금은 마을공동체 경제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라 한다.

a 대둔도 오리마을 전경  이 마을은 앞 바다와 뒤에 있는 바다를 번갈아 오가며 전복 양식장을 하기에 폐사율이 거의 없다.

대둔도 오리마을 전경 이 마을은 앞 바다와 뒤에 있는 바다를 번갈아 오가며 전복 양식장을 하기에 폐사율이 거의 없다. ⓒ 신안군 제공


다시 도목리에서 오리까지 15분 정도이니 대둔도는 그리 작은 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마을로 소통하는 길이 산으로 나있고 경사진 해변 언덕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부터 20년 전에 1993년도 5월 13일 대둔도 오리 마을에 왔다. 흑산도에서 오리까지 소형 어선을 타고 왔다가 걸어서 도목리 들려서 일을 보고 수리에 갔다.

다시 찿은 오리 마을의 가장 먼저 변한 것은 널따란 길들이다. 그리고 마을과 소통할 수 있게 차들이 다니니 소통이 한결 쉬어졌다. 오리의 길가의 밭들은 여느 섬이 그러하듯 그리 넓지 않다. 내리막길을 접어들다 보면 앞에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쪽은 섬의 북쪽 해안이다. 오리마을에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하나는 오리 남쪽에 있는데 가두리 양식장이 있고 흑산도로 가는 섬누리호가 닿는 포구이다. 이 포구가 오리의 관문이다. 또 하나는 바로 마을과 접한 해안이자 피항지로 적합한 선착장이 있는 반원형의 안전한 바다다. 잔자갈로 가득한 해변의 오른쪽 끝에 목섬이라는 무인도와 연결되고 그 옆으로 선착장이 있다. 이 해안은 곳곳에 만과 갑이 발달하여 드나듦이 심한 편이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울 수 있는 역동적인 해안이라 할 수 있다. 이 해안은 여름에 태풍이 몰아치지만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준다. 그때 마다 가두리를 이동하여 전복 폐사율이 거의 없는 천혜의 바다가 오리에 있다. 

대둔도 역사와 인물

a 대둔도 돛대바위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 반대편에서 찍은 촛대바위 전경

대둔도 돛대바위 탐사선 등대호를 타고 반대편에서 찍은 촛대바위 전경 ⓒ 이재언


대둔도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수리 마을의 김이수(金理守) 선생이 있었다. 흑산도 선착장에 가면 홍어 모양을 한 거대한 흑산도 연혁비가 있는데, 그 뒷면에 새겨진 비문 중 김이수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김이수(1743~1805)는 조선후기인 1743년 대둔도 수리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김이수의 활동이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의 격쟁(擊錚) 때문이었다. 격쟁이란 임금의 행차길에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시선을 집중시킨 후, 직접 백성들의 민원을 호소하는 방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정조 15년(1791) 5월 22일, 흑산도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속의 주인공인 흑산도의 백성은 다름 아닌 김이수였다. 김이수는 지금의 흑산면 대둔도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으로 당시 나이 35세였다.

김이수의 격쟁으로 흑산도를 비롯한 인근 홍의도·태도·가거도·우이도 4개 섬에 부과됐던 되었던 중첩된 세금을 혁파하게 되었고, 이에 관한 기록이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것이다. 1813년 섬주민 김광은이라는 사람이 김이수의 글을 모아 5개의 테마로 나누어 엮은 책 <김이수전>을 발행했다. 이 책에 의하면, 당시의 세금이 서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부과됐는지를 알 수 있다.

김이수 선생 후손들이 해마다 전국 방방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가 시제날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두 들어와 시제를 모신다고 한다. 아마도 남다른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1767년부터 무려 약 40여 년 동안 굶주린 섬 주민들을 위해 흑산진·나주목·전라 감영과 한양의 정조 임금까지 찾아 다니며 끝까지 해결하려는 의지가 감동적이다.

대둔도 지리

대둔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으로 동경 125°27′, 북위 34°43′에 위치하며 면적 3.4㎢, 해안선 길이 13.7㎞, 높이는 성암산163m가 가장 높다. 인구는 239가구 487명으로 행정적으로 수리·오리·도목리의 3개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약 98㎞, 대흑산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3.2㎞ 지점에 있다.

대둔도 민속

슬픈여 전설과 달꿍딸꿍이란 노래가 구전된다. 대둔도 수리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3일 자시에 상당제(당할머니․당할아버지), 산신제를 지내고 4일에 둑제(용왕제)를 지낸다. 상당제와 산신제는 제관들만이 참여하여 엄숙하게 진행하며, 둑제는 이와 달리 주민들이 모두 참가하여 지낸다.

대둔도 관광

a 대둔도의 절경 하죽도 모습  좌측은 촛대바위, 우측은 무인등대 모습

대둔도의 절경 하죽도 모습 좌측은 촛대바위, 우측은 무인등대 모습 ⓒ 이재언


a 하죽도의 촛대바위  하죽도에 올라가 가까이 가서 찍은 촛대바위 모습

하죽도의 촛대바위 하죽도에 올라가 가까이 가서 찍은 촛대바위 모습 ⓒ 이재언


바다 한가운데 아치 모양으로 솟은 돛대바위와 파도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칠성굴이 명승지로 꼽힌다. 섬 부근의 해역은 제주난류가 통과하여 각종 어족이 풍부한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있어, 낚시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대둔도 가는 길

뉴남해퀸호 / 목포 → 다물도·대둔도 1일 2회(오전 7시 50분, 낮 1시 20분) 소요시간 1시간 50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8월 2일 <전남일보>에 개제된 내용이지만, <전남일보>는 지면에 한계 때문에 글과 사진을 많이 올릴 수 없었다. <오마이뉴스>는 그런 제약을 받지 않아 글과 사진을 더 많이 게재했다.
#대둔도 #돛대바위 #도목리 #수리 #가두리양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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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으로 2019년까지 10년간 활동, 2021년 10월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섬을 촬영중이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재정 후원으로 전국의 유인 도서 총 447개를 세 번 순회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집필했음,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 내용이 들어있음, 지금은 '북한의 섬' 책 2권을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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