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청소년들.
권우성
"미친 쇠고기, MB 너나 드세요."
5년 전 고3 때, 내가 촛불집회에서 들었던 플래카드 내용이다. 당시 광우병 미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전국적으로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점심시간에 관련 플래카드를 만들었고,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야자(야간 자율학습) 수업은 빼먹고 부산 서면 시위 현장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며 그 해 여름을 보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5년 전의 기억 처음에는 친구들과 가면을 만들고 촛불집회에 나가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차츰 집회에 참여하며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어른들은 고등학생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줬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공부 안 하고 시위하러 다니는 나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을 하셨지만, 한편으론 소신껏 행동한다고 기특해 하셨다.
물론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소 가면을 들고 교문 밖을 나가던 중에 학교 주임 선생님께 걸리면 교무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호된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교육청에서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고교생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했다. 야자 빼먹는 것도 죄였지만,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건 더한 죄였다.
"야, 꼴통. 닌 커서 뭐가 될라꼬 그라노. 으잉?""신문기자 할 건데요.""니 그라다가 좋은 대학 못 가면 기자고 뭐고 없데이."그로부터 5년 뒤, 선생님 말씀대로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건가 좋은 대학에 못 갔다. 현재 백수다. 촛불과는 멀어졌지만 취업 준비와 가깝게 지내는 중이다. 지금도 기자가 꿈이라 시사 이슈는 항상 가까이 두고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의 하루는 '국정원'으로 시작해서, '국정원'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구독하고 있는 <한겨레>를 펼치면 1면부터 국정원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1면 톱이 아니더라도 대개 국정원 관련 기사가 꼭 있다. 필사할만한 칼럼을 찾아보면 또 국정원 이야기다. 7월 한 달 동안 필사한 칼럼 절반이 국정원에 대한 글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잠 자기 전에 듣는 시사 팟캐스트가 남아 있다(내가 주로 듣는 건 <오마이뉴스> 팝캐스트 '김종배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다). 여기에도 국정원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루종일 국정원을 잡고 사는데도 아직 촛불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책상에만 앉아 있을 뿐이다. 집회가 있을 때면 놀러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했던 내가 변한 것일까? 동네 아줌마들한테도 촛불을 건네며 시위 동참을 권하던 내가 말이다. 고등학교 선생님 말씀대로 이제야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우리는 더 화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