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할머니의 자전거바구니가 앞뒤로 크게 있다. 친척 할머니께서는 빈 병을 주어 모아 기부하신다.
공응경
친척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밥 먹다 말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친척 할머니는 "성당은 잘 나가고 있냐?" "돈은 열심히 모르고 있냐?"라고 물으시며 연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신다. 여전히 할머니는 내게 있어 껄끄러운 상대다.
나 역시 젊은 세대이기에 친척 할머니가 시키는 일들이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한 번은 이사를 하는데 포장이사에 맡겼더니,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막 쓰냐고 야단을 치셨다. 나는 포장이사에 맡기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잘못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내가 다른 일로 돈을 더 버는 게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평생을 한 푼 두 푼 아끼며 살아오신 친척 할머니께 포장이사란 '돈 아낄 줄 모르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이제 친척 할머니께서 노년을 조금 더 편하게 보내시고, 여행도 다니시고, 문화센터 강좌도 듣고, 드시고 싶으신 거 사드시기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할머니, 근데 문화센터 같은 데 운동하러 다시니시 그러세요?""응. 나도 생각해 봤는데, 내가 봉사활동하러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다닐 수가 없어.""그래도 모아두신 돈도 있으신데…. 몸도 힘드신데 좀 쓰면서 편하게 지내셔야죠.""난 그냥 하늘나라에 돈을 저장할 거야. 교부금 열심히 내고, 기부 많이 한 다음에 죽어서는 천국에서 살 거야. 사실 내가 당뇨도 심한데 이렇게 잘 돌아다닐 수 있는 건 바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더욱이 내가 요즘 잘 먹지도 못하는데, 크게 아픈 데는 없잖아. 암까지 걸렸었는데…. 이게 다 하늘에서 보살펴주기 때문이야."친척 할머니에게는 화려한 옷이나 맛있는 음식은 값진 게 아니었다. 되레 천국의 재물을 모으는 노력이 더 값지고 보람찬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친척 할머니께서는 매일 아침 새벽, 성당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며 길거리에 버려진 병이나 휴지를 줍고, 봉사활동을 통해 받은 돈을 모아 한 달에 50만 원씩 기부하신다. 그래서일까. 친척 할머니의 자전거는 유난히 앞뒤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달려 있는데, 그 크기도 유난히 크다.
어떻게 보면 친척 할머니는 평생을 모으고 아껴 남을 위해 쓸 줄만 알 뿐 정작 본인은 쓸 줄 모르는 '착한 바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통해 같은 여자로서 친척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친척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각각의 삶 속에는 고난과 역경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잘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친척 할머니는 자신만의 확실한 답을 갖고 살아가는 분이라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고 할 만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경험하신 분들이시다. 가끔 우리 젊은이들이 보기에 억척스럽고 고집스러워 보여도 조금은 넓은 마음으로 그분들을 이해해 주고 존경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 또한 이제 친척 할머니의 잔소리를 조금은 편하게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듯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할머니가 한달에 오십만원씩 기부하는 비결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