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김기춘 전 의원이 대통령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7월 19일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임명된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호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시점에 왜 이 분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을까요? 정치권에서는 이번 김기춘 실장의 발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깊이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고 분석합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함께 해온 이른바 애국주의 세력과 같이 가야 안심이 된다는 판단,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국가이념, 국가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한 번 실행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김기춘 실장을 발탁한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녀의 멘토단인 '7인회'의 좌장격인 김기춘 실장을 정치 한복판으로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는 '저도의 추억'이 아니라 '유신의 부활' 혹은 '유신의 완성'을 위해 '김기춘식 세계관의 정치가 복원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집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김기춘 실장은 정수장학회, 유신, 간첩조작, 지역감정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는 인물"이라며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같다. 반역사적 인사"라고 평가했습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김기춘 실장의 발탁에 대해 "역사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고 논평했습니다.
실제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비서실장으로 앉힌 건 야당을 협력적 관계로 보기보다는 하위 파트너십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김 실장이 유신 정권 시절 공안검사를 했고, 한국 헌정사의 최대 오욕 중 하나인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들었던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야당 무시 전략, 그게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김기춘 실장은 옛날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야당에게 뒷문을 열어주면서 '데리고 가는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굴종적 여야 관계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는데 정작 이번 인사를 통해 김기춘 실장이 2인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2인자로서 막후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요.
5일 신임 비서실장에 임명되자마자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뒤 곧장 민주당 천막당사를 방문해 김한길 대표를 만난 것도 실은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가 어느 선까지 양보를 원하는지 견적을 내고자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한길 대표를 만나 정부 여당이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려고 갔다는 거지요.
자,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만 무시하는 것일까. 500명으로 출발한 촛불이 한달 새 3만 명으로 불어났는데도 국정원 선거개입의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유신헌법을 만든 아버지 세대의 정치인을 신임 비서실장에 앉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헌법과 중앙정보부의 조작간첩사건들, '우리가 남이가' 지역감정 유발로 인한 대선개입 등등 과거 공작정치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용함으로써 국민들 앞에서 '이쯤하면 막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곧 '소프트 유신'이 온다고들 입을 모읍니다. 1970년~80년대 민주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고 납치하는 방식으로 해온 공안통치를 '하드 유신'이라고 한다면, 21세기 고급 인력을 데려다 놓고 댓글을 달며 여론조작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소프트 유신'을 준비 중일 거라는 거지요.
딱딱하냐 부드럽냐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신시대'로 회귀한다는 게 핵심 포인트입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등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박근혜 정부의 '소프트 유신'으로 무너진다면 그때 우리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김기춘 발탁, 촛불 민심은 어떻게 반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