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있어도 지리산이 다시 그리워

[지리산 종주 ④]장터목~ 천왕봉 일출~중산리로 하산

등록 2013.08.10 14:32수정 2013.08.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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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모두가 일출광경을 향해 서 있다.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모두가 일출광경을 향해 서 있다. ⓒ 이명화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그 활홀함이여

오전 2시 정각에 깨어났다. 화장실 가면서 바라본 새벽하늘엔 여전히 별이 총총. 맑은 날씨를 주시려나보다. 바깥바람을 쐬고 다시 누웠으나 맨송맨송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2시 30분쯤 되자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들리더니 단체로 온 사람들인지 여러 사람이 일어나 짐을 꾸리는 모습이 희미한 어둠속에 보인다. 한참을 소리를 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아 누웠다가 3시 반쯤 벌떡 일어나 배낭을 천천히 꾸린다. 남편도 일어난 모양인지 문 입구에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오전 4시. 하늘엔 여전히 달과 별이 쏟아진다. 정확히 4시 5분에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사위는 아직도 깜깜하다. 밤하늘엔 야윈 달이 창백하고 별빛이 아련하게 반짝인다. 먼 산자락 아랜 사람 사는 마을 불빛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장터목산장 옆으로 난 급경사 돌밭 길을 오르는데서부터다. 헤드랜턴 불빛으로 길을 더듬어 걷는 길에 구상나무, 분비나무들도 검은 실루엣으로 어둠속에 서 있고 앞뒤로 불빛들이 반짝인다. 우리처럼 천왕봉일출을 보기 위해 잠을 반납하고 새벽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a 지리산 장터목의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

지리산 장터목의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 ⓒ 이명화


급경사 계단 길을 겨우 올라서면 완만한 평지길인 제석봉일대에 이른다. 새벽하늘의 별빛이 이마 위에 있다. 별을 보며 호젓이 걷는 새벽길... 마음 깊이 담아 본다.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다. 달과 별들이 까만 새벽하늘에 박혀 있다. 아, 별바다가 펼쳐진 하늘을 우러러보며 걷는 이 기쁨... 아래 세상에서는 결코 맛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나흘간의 긴긴 장정에 지친 탓인지 남편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자꾸만 뒤로 처진다. 일출 장관을 보기 전에 여명의 하늘과 풍경, 시시때때로 변하는 천왕봉 일대를 두루 보고 싶은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걸음을 맞추려고 앞서 걷다가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면서 맞춰 보려하지만 인내를 요한다. 나 먼저 간다고 말하고 천왕봉을 향해 가볍고도 너끈하게 바윗길을 올라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힘들게 걷다가도 천왕봉 정상만 가까워지면 없던 힘도 솟아나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결국 내가 먼저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a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새벽길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새벽길에서. ⓒ 이명화


천왕봉에는 먼저 온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정상 바위 일대에 가득하다. 모두들 천왕봉 일출을 기대하며 해가 떠오를 동녘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하늘가는 붉게 물들고 주변 산 능선들이 점점 또렷해지는가 하면 운무가 깔린다. 아주 천천히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더니 혓바닥 끝만 한 어린 햇덩이가 머리를 내민다. 점점 더 조금씩 드러난다. 황홀한 일출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멋진 일출 광경을 사진에 담고 동영상으로 담는가하면 누구에겐가 급히 전화를 하고 동영상에 담아 전송을 하기도 했다. 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오늘의 아침 해,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감동의 물결이 전신을 휘감았다.


지리산에 있어도 지리산이 다시 그리워

a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 이명화


해가 떠오르고 난 후 사람들은 저마다 천왕봉 표시석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앉아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을 마주하고 바위틈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피해 앉았다가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에야 천왕봉에서 사진을 찍었다. 기나긴 지리산 종주가 끝났다. 이제 중산리로 하산할 일만 남았다.


종주 첫날은 여유 있게 노고단대피소까지만 올랐지만 둘째 날부터 한없이 걷고 힘들고 지쳐서 이제는 종주는 그만해야지 하고 생각했건만 어느새 그 맘 싹 사라지고 벌써부터 지리산이 그리워진다. 사실, 지리산을 여러 번 올랐지만 아직도 난 지리산을 다 모르고 지리산의 구석구석을 다 가보지 못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며 해발 1300~1900m의 능선 자락을 따라 숱한 고봉준령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힘에 겹도록 걸었지만 애증인지 애정인지 아직도 지리산의 안팎을 다 모르는 나는 아직도 지리산이 궁금하다.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지리산은 언제나 사람을 반하게 만든다.

a 지리산... 천왕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 이명화


돌아서면 다시 그립게 만드는 지리산, 천왕봉을 마지막으로 일별하고 하산 길에 내려서면서도 다시 뒤돌아본다. 지리산에 있어도 지리산이 그리운 것은 무슨 병인고.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역시 길고 길다. 올라 온 만큼 내려가는 길이다. 가파른 경사 길에서는 걸음의 속도가 나지 않고 발도 지쳐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중산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1시 5분이다. 3박4일의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a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면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하면서... ⓒ 이명화


산행수첩
넷째 날(2013. 8. 3(토): 총 9시간 걷다.
장터목대피소(4:05)-천왕봉(5:15)-일출(5:36)-천왕봉에서 하산(6:15)-개선문(7:10)-로타리대피소 보이는 바위 위에서 휴식(30분)-로타리대피소(8:50)-아침식사 후 출발(10:20)-망바위(11:00)-삼거리(11:50)-칼바위(12:05)-중산리 야영장(12:35, 탁족함)-중산리탐방지원센터(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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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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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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