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경인가도를 지날 때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마을사람들(1950. 9. 27.).
NARA, 눈빛출판사
양심남 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두 사람에게 명령을 내렸다.
"야, 안 되가서. 이러다간 우리 셋 모두 당할 것 같아. 너덜은 총조차 없으니께 맞서 대적할 수도 없디. 지금부터 내레 멩넝한다. 내레 총을 가디고 밖으로 나가 산 아래로 후다닥 뛰어내레 가믄 토벌대 아새끼들이 나를 집중적으로 추격할 거야. 기때까디 동무들은 잠자코 요기에 숨어 있다가 토벌대 아새끼들이 나를 추격하느라 산 아래로 모두 사라지믄 기때 산꼭대기로 튀어라.""아닙네다. 대장님! 우리도 대장 동무와 항께 아래로 뛰겠습네다.""야, 기건 말도 안 돼. 자살행위야. 기러구 셋 다 요기서 이대루 죽을 순 없어야. 배가 정원초과로 침몰할 때는 나이 순으로 먼저 뛔내리는 게 바른 순서고, 거게 사회의 정의야.""안 됩네다, 대장 동무. 거(그) 총 이리 주시라요.""내레 만주에서, 왜놈들이 물러간 뒤에두 장개석 군대와 수십 차례 전투를 치루구두 살아난 놈이야. 내레 설사 지금 죽는데도 하나도 억울치 않아. 내레 아들 둘, 딸 하나가 잇어. 기러구 내레 독전대장 하믄서 도망치려는 우리 조선인민군 동무들 수태 죽이거나 혼냇디. 내레 이 전장에서 죽어야 돼!""아닙네다. 대장 동무.""사람은 죽을 때가 있디. 내레 요기서 죽어야 더승에 가서 갸네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디. 내레 요기서 비겁하게 투항하여 포로수용소에 갈 수는 없어야. 기게 내레 최소한 낭심(양심)이고, 자존심이야."다시 앞 계곡에서 토벌대의 확성기가 울렸다.
"너희들은 독안 든 쥐다! 너희들 생명이 아까우면 총을 버린 뒤 손을 들고 빨리 뛰쳐나오라. 이제 약속시간은 지났다. 다시 마지막으로 3분간 시간을 주겠다."금세 약속시간이 지났다. 다시 확성기 소리가 났다.
"지금 즉시 동굴밖으로 나오라.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하나, 둘, 셋 ….""야, 개수작하디 말라 쌍!"남 대장은 동굴 안에서 맞받아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다시 총탄이 빗발치듯이 동굴 언저리를 때렸다.
희생"야, 이 국방군 괴뢰새끼들아! …"남 대장은 그 말을 소리지르며 후다닥 동굴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러자 동굴 언저리를 둘러싸던 토벌대들이 남 대장을 추격하며 총을 마구 난사했다. 남 대장은 계곡 아래로 비호처럼 뛰어내려 가면서도 순간 순간 뒤돌아보며 따발총을 난사한 뒤 다시 뛰어내려갔다. 그 총에 토벌대들이 여러 명 쓰러졌다. 대부분 국군 토벌대들은 남 대장을 추적했다.
마침내 남 대장은 넙적다리에 토벌대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한 아름이 넘는 전나무에 몸을 숨긴 채 추적해 오는 토벌대를 조준 발사했다. 그의 사격술은 대단했다. 만주 벌판을 누비던 신묘한 빨치산 사격술로 토벌대들 예닐곱이나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는 중과부적으로 온몸에 총알을 벌집처럼 맞은 채 땅바닥에 큰 대자로 엎드렸다.
"사격 그만!"토벌대장이 명령했다. 곧 추적 토벌대가 남 대장의 사망을 확인하고는 거적으로 둘둘 말아 들쳐메고는 동피골 어귀로 내려갔다. 잠시 후 동굴 언저리가 조용해지자 준기와 윤성오는 동피골계곡 능선을 타고 호령봉 정상으로 줄달음을 쳤다. 윤성오는 다리에 파편 상을 입은 탓으로 다소 절름거렸다. 그들이 숨을 헐떡이며 막 호령봉 칠부 능선쯤 오를 때 길목 바위 뒤에서 갑자기 국군토벌대 다섯 명이 튀어나오면서 총구를 그들 가슴에 겨누었다.
"야, 손들어!""야, 이 괴뢰군 새끼들아! 손 번쩍 들어."준기와 윤성오가 꼼짝없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지.""우리가 너희들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토벌대 엠원소총 개머리판이 두 사람을 마구 짓이겼다. 그때 준기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