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사계절
한국전쟁의 정치사회학을 시도하며 민중의 체험으로 전쟁의 의미를 캐물은 <전쟁과 사회>를 썼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독한 인간성 말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그답게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통계'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점을,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양심'을 가진 학자와 지성인으로서 호소한다.
"학살이나 국가폭력은 마치 암세포와 같이 그것과 전혀 무관한 구성원들의 정치·사회 의식과 도덕적 기반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7쪽)"학살과 국가폭력은 암세포"
그는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일과 맞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바로잡는 일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맞먹는다는 말은 국가 권력이 인간존엄성을 결코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자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위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록 '누더기'로 출발하자 군·경 출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끝자락이었던 2008년 1월 30일에는 뉴라이트연합 등 90개 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정협'(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이 "6·25전쟁 중에 발생한 양민 희생자 사건을 왜곡하면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반국가 행위자를 두둔한 점을 바로 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국군, 경찰을 학살자로 모독한 사진 전시회 즉각 철회", "과거사위 발표 민간인 희생사건은 왜곡 날조된 엉터리다", "좌파정권 산물 과거사정리위 정리하라"고 외쳤다.
노무현 "국가가 자행한 폭력" 사과... 수구세력 "왜곡날조"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 앞둔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위를 '국가'를 대표해 사과했다. 이에 앞서 제주4·3사건에 대해서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과 수구세력 중 누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했을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국가는 그 어떤 행위로도 국민의 존엄성을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기 학살은 인간존엄성을 훼손한 것이다. 당연히 국가 이름으로 사과해야 한다.
예로든 헌법이 1987년 개정 헌법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럼 제헌헌법을 보자.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고,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아이까지 학살... 대한민국 헌법 부정
'문경 석달동 학살사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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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24일 정오, 공비 토벌 명목으로 수색 정찰 중이던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명이 경북 문경군 산북면 산간 마을 석달동을 지나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마을 주민 전원을 불러내 사냥 연습하듯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다. 당시 학살로 마을 주민 136명 중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09.27 <시사인> "어린아이도 사냥 연습하듯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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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전쟁 학살은 헌법을 무시했다. 1950년 11월 8일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주민 70명은 국군에게 총과 칼로 학살당했다. 그들은 "무학이거나 국졸이었으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벽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아이들이 학살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김동춘은 경북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 추모비에 이런 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