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들이 을지전망대에서 강행군으로 피로에 지친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다.
이영주
숙소에 도착하면 각자 방을 배정 받고, 차에서 짐을 내린 뒤 씻고 저녁을 먹는다. 다음으로 저녁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초반은 각 조 구호, 마니또 선정, 자신에게 편지쓰기 등 친목위주였고 후반부는 세대별 모임, 강연, 초청인사, 조별 평가토론회가 이뤄졌다. 이런 프로그램은 매일 치러졌다. 다음날 일정이 4시에 시작되는 만큼 대원들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걷기에 몸이 익숙해지면서 새벽 3시45분에 일어나기도 했다. 대장정 실무를 담당하는 스태프들은 더욱 분주했다.
이들은 매일 회의를 진행해 갔으며, 대장정단이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정리했다. 숙소는 마을회관, 초·중학교, 수련원 등지였다. 요즘은 여름이라도 따뜻한 물로 씻는 경우가 많은데 대장정 기간에 온수가 나오는 숙소는 고작 3번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찬물이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익은(?) 몸에 차디찬 물을 끼얹는 순간에도 나름 용기가 필요했다. 찬물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무섭다며 덜덜 떨던 대원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성대원들은 여성대원들에게 샤워시설과 조금 더 쾌적한 잠자리를 양보했다.
여성대원들이 화장실 등을 전전하며 씻을 때 남성대원들은 수돗가에 천막을 치고 해결했다. 사실 고백하면 이 부분은 실제로 목격하진 못했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다. 한번은 민통선 안쪽 어느 마을회관에서 여장을 풀었는데 여성대원은 1층, 남성대원은 2층이었다. 다음날 전달할 내용이 있어 2층 남성숙소를 갔는데 대리석 바닥에 은박지를 깔아 침낭을 덮고 노숙한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들의 신사도에 감탄했다.
나중에 친해진 어느 남성대원은 "이건(숙소, 씻는 장소·순서 등) 역차별이다"라며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강원도 화천군 해산령을 넘을 때였다. 해산령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초 출발 시 대원들의 걸음 속도는 시속 4km 정도였다. 속도는 점점 빨라져 나중에 6~7km까지 속력을 내기도 했다.
그날도 속도가 빨라진 같은조 대원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 부근 몇 개의 벤치에 앉아 가볍게 정담을 나눴다. 배식이 시작될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몇 방울 떨어지던 빗줄기는 갑자기 폭우로 변해 억수 같았다. 스태프들은 우천을 관망하다 대원들에게 우의를 나눠줬고, 남성대원들과 천막을 치고 식사할 자리를 마련했다.
그날 대원들은 우의를 챙겨 입고 빗소리를 음악 삼아 선채로 밥을 먹었다. 땅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 처음엔 쭈뼛쭈뼛 앉지도 서지도 못했으나 나중엔 틈만 나거나 엉덩이 하나만 부지할 공간만 눈에 띄어도 일단 철퍼덕 앉고 보는 대원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철원평야를 지날 때도 비가 반겨줬다.
이번은 천둥과 번개까지 가세해 대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가히 토네이도를 연상케하는 날씨에 추위까지 겹쳐 우리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방해했다. 대원들은 길가 창고 옆에서 황제펭귄처럼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기대고 있었다.
길가 창고 옆에서 황제펭귄처럼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