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고향' 대구 사제들이 시국선언 나선 까닭

[나는 분노한다 22] 교구차원 첫 시국선언 앞둔 대구대교구 김영호 신부

등록 2013.08.14 11:45수정 2013.08.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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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영호 신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영호 신부조정훈

[기사 수정 : 14일 오후 1시 23분]

"옛날에 큰 바위를 깰 때는 깨고자 하는 자리에 정으로 구멍을 내고 그 자리에 나무를 꽂아요. 그리고 계속해서 물을 주면 큰 바위가 '쩌억'하고 갈라지죠. 100년이 넘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처음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부당한 우리 사회의 큰 바위를 깨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불법 개입을 규탄하는 천주교 신부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가운데 대구대교구 신부들이 100여년 만에 거리로 나온다. 대구경북에서 500여 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나서는 가운데 대구교구의 신부들도 함께 동참한다.

대구대교구 사제 102명과 안동교구 사제 100여 명,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회 수도자 70여명, 살뜨르 수녀회 수녀 44명 등 500여 명은 14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한다.

보수적 정서가 강한 대구에서 1911년 교구가 출범한 이후 개별적으로 전국적인 시국선언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교구 차원에서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교구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시국선언에 나서게 된 데는 국민들의 삶속으로 다가가는 열린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담겨 있지만,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을 바라보는 천주교 사제들의 엄중한 시대인식이 담겨 있다.

이번 대구교구의 시국선언의 선두에는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위원장인 김영호 알폰소 신부가 있었다. 김 신부는 대구교구의 사목국장을 지내고 정평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2011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토목공사를 비판하는 미사를 주도하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반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밀양 송전탑 설치 반대와 핵발전소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13일 오후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시국선언을 앞둔 김영호 신부를 만나 준비과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정원 사태는 민주주의 가치 뒤흔드는 도발행위"

- 대구교구에서 시국선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의미가 있나.
"안동교구는 박정희 유신정권 때부터 농민운동이 활발했고 미사나 시국선언, 집회 등을 능동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대구교구는 설립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적극적으로 시국과 관련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한다. 지난 2011년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각계각층의 신부들이나 신자들로부터 국민들의 삶속으로 다가가는 열린 교회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토목공사를 강행하면서 낙동강을 접하고 있는 대구교구도 그냥 있을 수만은 없어 강가에 가서 미사도 하고 집회도 했다.


그런 역량이 모아져서 이번 시국선언을 하게 되었다. 보수적인 교구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원칙과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고 외톨이로 남아 있다가 정평위가 시작되면서 결합하고 그 역량을 모아 시국선언을 한 것이다. 국정원 사태는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도발행위라고 생각해 국가와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 시국선언을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나.
"국정원 사태를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에 지난 7월 25일 부산교구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했고,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사제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봤다. 안동교구 정평위 권중희 위원장 신부님과 만나 대구교구와 안동교구가 함께 시국선언을 하자고 뜻을 모으고 문자와 메일을 통해 뜻을 알리고 서명을 받았다. 각 수도회 총장들에게는 편지를 써서 시국선언이 왜 필요하고 이 시대에 교회가 왜 나서야 하는가를 설득했다. 이에 각 수도회 총장들과 수녀회 원장들이 화답을 해주신 것이다."

-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참여하나.
"대구교구의 445명 신부님들 중 외국에 나간 분들을 제외한 380여 명 가운데 102명이 참여한다. 상당히 많은 신부님들이 동참하셨다. 안동교구는 66명의 신부님들이 참여해 100% 동참하셨고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회 수도자 70여 명과 안동교육수녀회 42명, 살뜨르 수녀회 44명, 대구가르멜수녀원의 봉쇄수녀 15명 전원이 참여하셨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않는 봉쇄수녀님들은 '직접 세상에 나오지 못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기도로 응원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주셨다. 모두 5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 시국선언 준비가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대구는 보수적인 정서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신부님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교구의 전통이나 분위기를 흐리는 좋지 않은 행위라는 비난과 민주당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반대 여론이 많아 힘들었다. 하지만 그 분들을 이해하고 설득하면서 많은 젊은 신부님들이 호응해 주셨다. 선배 신부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텐데 호응해주신 신부님들께 감사드린다. 시국선언을 준비하면서 사무처장 신부와 주교대리 신부님께 미리 말씀을 드렸고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그 분들이 충분히 납득시켜 주시리라 믿고 있다."

- 보수적인 신부님이나 신자들의 항의도 많았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반대하셨고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은 젊은 신부들이 나서는 것에 대해 탐탁지않게 생각하셨다.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영남지역 정서와 이제까지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온 대구교구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시국선언은 찬성과 반대, 긍정과 부정 그런 흑백 논리나 편가르기가 아니라 성경이 가르쳐준 것 위에서 복음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사제들은 정파적이거나 한 정당의 당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들이 복음에 합당한가, 위배되는가에 따라 가치판단해야 한다."

시국선언 장소를 새누리당 앞으로 정한 이유

- 시국선언문 제목이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 뿐이다'다. 상당히 강한 어조가 느껴지는데.  
"대구교구에서 처음 나서는 만큼 나름대로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할 거라면 명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국선언을 하는 장소도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하기로 했다."

 김영호 신부
김영호 신부조정훈

- 국정원 국정조사에 대해 어떻게 보나.
"새누리당이 국정조사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생트집과 국정원 비호로 요약할 수 있다.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에 자기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자기들의 본분을 제대로 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회의 역할이 많이 필요하다."

- 시국선언 이후 향후 계획은?
"9월 둘째 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정평위 위원장 회의에서 시국선언에 대한 보고를 하고 각 교구의 상황을 들은 뒤 천주교 차원에서 향후 계획을 논의한다. 그 결과에 따라 교구별로 보조를 맞출 계획이다. 교회에는 '사회교리'라는 가르침이 있다. 사회교리의 가르침 안에서 정치,경제, 인권, 복지, 생태환경, 평화, 민주주의 질서 등과 관련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불의한 모습을 보인다면 신앙인의 모습으로 항거하라고 가르친다.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놓치지 않고 사회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김영호 신부 #시국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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