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스쿠터 가기 불편하다고 안 가면 안 고쳐지겠죠?"

[강남역 주변 장애인용 경사로 실태조사 ②] 장애인과 동행취재 해보니...

등록 2013.08.19 09:34수정 2013.08.19 09:34
3
원고료로 응원
지체장애 2급인 강대생(50)씨를 만나기로 한 시각은 지난 14일 오전 9시였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한 강씨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장애인리프트가 말을 듣지 않아 관계자 4명이 와서 도와줬어요. 출근길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전철을 3대나 놓치기도 했고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날 강씨와 강남역 주변 장애인용 경사로 동행취재를 하면서 자주 들었던 소리는 '쿵, 턱'이었다. 장애인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그가 도로 턱을 지날 때 나는 소리였다.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점포의 경사로를 넘거나 좁은 이중문 사이를 통과하지 못할 때도 그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강씨는 5cm의 턱도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강씨를 만나기 전 기자는 강남역 11번 출구부터 신논현역 5번 출구까지 대로변에 있는 점포들의 입구 높이와 경사로 길이를 줄자로 재고 다녔다. 줄자로 재면서 가까이 들여다보니 알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에게 강남역 주변 번화가는 '가기 불편한 곳' 혹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저런 경사로는 올라갔다가 뒤로 넘어질 수도 있어"

 강대생씨와 A프랜차이즈 카페 입구에 들어가 봤다. 이 카페는 경사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곳이었다. 강씨는 스쿠터의 힘으로 경사로를 올라서려고 했지만 이중문 사이의 간격이 좁아 결국 카페이 들어가지 못했다.
강대생씨와 A프랜차이즈 카페 입구에 들어가 봤다. 이 카페는 경사로 규정을 지키지 않은 곳이었다. 강씨는 스쿠터의 힘으로 경사로를 올라서려고 했지만 이중문 사이의 간격이 좁아 결국 카페이 들어가지 못했다. 신원경

강남역 10번 출구 앞의 대로변부터 동행을 시작했다. 번화가라 도로를 잘 정비해 둔 편이었다. 그러나 도로 이외의 가게에 들어가는 데는 큰 불편이 따랐다. <오마이뉴스>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강남대로변(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의 도로변)의 점포 86곳 중 33곳은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우리 건물에는 장애인 올 일이 없다고요?)

경사로를 설치했다 하더라도 규정(높이가 1이라고 하면 경사로의 밑면의 길이는 높이의 12배여야 한다)을 지키지 않은 곳은 6곳이었다. 장애인 출입구가 따로 있거나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춘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건물을 뺑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경사로 규정을 지키지 않은 A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 높이는 10cm였는데 경사로 길이는 20cm로 완만하지 않았다. 스쿠터의 힘으로 경사로를 넘었다 싶으면 입구가 이중자동문으로 되어 있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중문 사이의 간격이 좁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카페에서 나오던 한 아주머니는 "못 들어갈 것 같다"며 "뒤로 돌아가면 출입구가 하나 있는데 거기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알려줬다. 강씨는 "이런 경사로에서 장애인전동스쿠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인데 휠체어나 전동휠체어는 뒤로 넘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전동스쿠터가 보급되기 전애 일반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강씨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경사로 규정을 지키지 않은 B은행 입구에 가봤다. 높이 28cm에 경사길이 81cm로 경사로의 경사가 심한 곳 중 하나였다. 강씨는 "저런 경사로는 올라가다 뒤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며 "있으나 마나 한 경사로"라고 말했다.

"아주 낮은 턱들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장애물"

 강남역 주변 대로변을 강대생씨와 함께 동행취재했다. 사진은 강씨가 강남대로변을 지나는 모습.
강남역 주변 대로변을 강대생씨와 함께 동행취재했다. 사진은 강씨가 강남대로변을 지나는 모습. 신원경

몇 칸의 계단을 올라서야 입구에 들어갈 수 있는 점포가 많았다. 기자의 키(168cm)를 훌쩍 넘는 높이에 점포 입구가 있기도 했다. 강씨는 "돌아서 가는 것은 일상이다"고 말했다. 이날도 경사로가 아예 없는 점포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그나마 건물 뒤로 돌아갔을 때, 입구가 있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점포에는 출입할 수 있었다.

강씨는 "턱 없이 바로 가게에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턱이 없는 점포에 접근해봤다. 걸리는 것이 없으니 확실히 괜찮았다. 동행취재를 하는 동안에는 기자가 문을 열어줬지만 혼자 다닐 때는 주로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답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더 붐비기 시작했다. 행인과 강씨의 전동스쿠터가 부딪힐뻔한 순간도 몇 번 있었다. 강씨는 인도에 사람이 많아서 다니기 불편할 때는 "차라리 차도로 다닌다"고 말했다.

"특히 핸드폰을 보면서 걷거나,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들은 나를 잘 보지 못하고 부딪힌 적이 많아요.(웃음) 차도가 위험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으니까요."

강씨의 가족은 모두 장애가 있다. 소아마비로 아내(48)는 지체장애 3급, 첫째 수진이(17· 여)는 지체장애 4급, 둘째 민석이(14·남)는 지체장애 2급이다. 강씨의 두 아이는 "혼자 걸을 수는 없지만 누가 부축해주거나, 옆에 손잡이가 있으면 조금씩 걸을 수는 있는 정도"라고 한다.

"비장애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아주 낮은 턱들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운동화 앞쪽이 굽보다 먼저 닳는 편이에요. 발이 턱에 항상 걸리니까요."

복잡한 곳은 잘 다니지 않는다. 사람 많은 곳도 웬만하면 피한다. 좁고 경사가 심한 곳은 가지 못한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집 근처다. 아이들과 바람을 쐬러 갈 때 가끔 넓은 공원이나, 청계천, 경복궁, 창경궁 등에 가는 정도다. 버스도 불편해서 잘 타지 않는다. 아주 먼 곳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한 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곳은 장애인전동스쿠터를 이용한다. 아이들 등하교도 이 전동스쿠터로 책임진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왼쪽에는 점포 입구에 접근하는 계단이 보인다. 경사로가 없는 가게는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은 강씨가 강남대로변을 지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에는 점포 입구에 접근하는 계단이 보인다. 경사로가 없는 가게는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은 강씨가 강남대로변을 지나고 있는 모습이다. 신원경

처음 장애인단체들 쪽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대부분 "그곳까지 나가서 복잡하게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이 많았다. 강씨도 처음에는 인터뷰를 망설였다. 하지만 강씨는 "언론 인터뷰를 승낙한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서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게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불편하다고 느끼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어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장애인 편의 보조 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항의해서 학교가 건물 내에 손잡이나 경사로를 만들기도 했죠."

강씨는 "오래된 건물은 경사로나 장애인 편의 시설이 진짜 없다"며 "도로가 울퉁불퉁한 동네도 전동스쿠터가 자꾸 덜컹거려서 다니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간이 좁거나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해서 잘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강씨는 기자에게 "그래도 이렇게 언론에도 나가고 하면 경사로 문제도 변화가 있지 않겠냐"며 "중증장애인들은 도로나 가게에 가는 것이 더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사항들이 잘 개선되어서 어디든 큰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동행취재를 마치고 전철을 타기 위해 강씨와 강남역 10번 출구로 이동했다. 10번 출구 뒷편에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승강기가 있는데, 당시 점검 중이라 이용할 수 없었다. 점검 관계자에게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1시간 정도 있어야 한다"며 "대각선에 승강기가 하나 더 있으니 거기로 가시라"고 말해줬다.

"자주 있는 일이에요. 승강기가 역에 하나밖에 없을 때는 정말 막막하죠."

직선거리로 봐서는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이동했다. 하지만 꽤 돌아가야 했다. 전철 입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니 지하도로로 건너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남대로변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강남대로변을 지났다. 11번 출구를 지나쳐 거리를 지나고 횡단보도를 한 번 더 건넌 후 다시 거리를 지났다. 결국 15분 정도 후에야 또 다른 지하철 승강기에 도착했다.

가게든 도로든 지하철이든 장애인들에게 쉬운 곳은 없었다.

 강남역 주변 점포들의 장애인용 경사로 설치 현황
강남역 주변 점포들의 장애인용 경사로 설치 현황고정미

덧붙이는 글 신원경·유정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강대생 #장애인협회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