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이혜영씨가 엄마 이혜영씨를 찾습니다

1985년 6월 부산 구호병원에서 출생... 싱글맘에 청각장애 있었던 친모

등록 2013.08.17 19:07수정 2013.08.1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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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조사결과, 우리나라 부패가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이자 지난 10년 중 최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에 비해 최소 두세 배 더 부패한 국가로 평가되었다. 우리나라 부패는 저개발국가를 제외하면 아시아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업부패와 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서는 아시아 2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이것은 다 원전비리와 4대강으로 국토를 망가트린 이명박정부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반부패기관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가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며 국민소득을 떨어지게 한다고 한다. 부패가 많이 발생하는 사회에서, 공무원은 뇌물을 요구하고 받는 것이 익숙하다. 만약 공무원이 보통 뇌물을 잘 받는다면, 아동밀매나 해외입양사업과 관련해선 뇌물을 안 받을 것이라고 추정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청렴한' 해외입양이 이뤄질 확률은 얼마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동세탁>의 저자 스몰린 교수는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싱글맘에 대한 낙인찍기가 아동유기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고 진단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우리나라가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심각한 부패 때문에 해외입양 세계 3~4위(누적 1위)의 수치스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부연하고 싶다.

a  이혜영, 입양 전 한국에서

이혜영, 입양 전 한국에서 ⓒ 이혜영

이런 입양과 부패와의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지난 11일 미국 입양인 이혜영씨를 만났다. 이씨는 1985년 6월 22일 새벽 6시 30분 부산시 서구 구호병원에서 친모 이혜영씨의 딸로 태어났다(엄마와 딸의 이름이 같다). 친모 이혜영씨는 당시 25세였고, 싱글맘으로 청각장애가 있었다.

출생 당시 이혜영씨는 등 아래쪽에 점이 있었고 배꼽 위에 흉터, 발가락이 벌려진 기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혜영씨가 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이틀 후 친모 이씨는 "한 달 조산한 딸을 키울 능력이 도저히 안 됩니다"는 말을 남긴 채 구호병원을 떠나 잠적했다.

그 후 딸 이혜영씨는 구호병원이 있었던 부산의 모성원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으로 보내져서 한동안 머물렀다. 당시 고아원 원장이 친모이름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해(1985년) 9월 4일, 생 후 3개월이 채 안 된 혜영씨는 모성원의 요청으로 대한사회복지회 부산지부를 거쳐 6일 후인 9월 10일 서울에 있는 한 가정에 위탁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0년 12월 18일, 5살이 갓 넘은 혜영씨는 미국 미네소타주로 입양됐다.


한국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5살에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혜영씨에겐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런 현상은 해외입양인들에게 자주 일어나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울 때 생존본능으로 과거를 망각하는 기억상실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여간 시간이 흘러서 혜영씨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자 양부모는 그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 후 양부모는 혜영씨에게 한국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한국동포들이 운영하는 한국문화 체험캠프 프로그램에 보내곤 했다. 

a  이혜영, 입양 전 한국에서

이혜영, 입양 전 한국에서 ⓒ 이혜영

다른 많은 해외입양인들처럼, 백인 양부모와 함께 백인동네에 살며 백인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학교에 다녔던 혜영씨는 동네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혜영씨는 더욱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혜영씨의 양부모가 색맹(color blind)이었던 것. 그래서 그들은 황인종인 혜영씨가 백인종 공동체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갖가지 수모와 차별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과 왕따를 당해 생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양부모와 전혀 공유 할 수 없었던 혜영씨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극진한 양부모의 사랑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혜영씨는 자기가 버림받은 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혜영씨는 양부모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양부모도 혜영씨를 잘 챙기고 보살폈다. 그러나 그런 양부모의 정성과 무관하게 혜영씨는 본 적도 없는 친부모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혜영씨는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매일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다고 한다.

혜영씨 양모는 미네소타주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설계 일을 했고 양부는 환경관련 일을 했다. 지금 혜영씨는 마이클코어스 라는 미국회사에서 일한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미국에 있는 다른 한국입양인들의 친부모 찾기를 도와준다. 또 미국 노숙여성들 쉼터와 환경문제에 관한 자원봉사도 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엄마

혜영씨가 불현 듯 자기를 낳아준 한국친모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0년 전. 언제부터인가 미네소타주의 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한국에 있는 친모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본 적도 없는 엄마였지만, 혜영씨는 자기와 이름이 같은 친모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 

그래서 혜영씨는 10년 전 인 2003년, 해외입양 보내진 지 13년 만에  친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모국을 방문했다. 당시 혜영씨는 자기 생애에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기뻤던 이유는 당시 자기가 도움을 주었던 다른 해외입양인들이 모국에서 친가족을 찾았기 때문. 혜영씨는 그들의 재회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무척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혜영씨는 친모를 찾을 수 없었다. 이때 혜영씨는 크게 좌절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그때 만큼 큰 절망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친모는 찾지 못했지만, 한국이 무척 좋았다는 혜영씨. 그는 이후 한국을 자주 방문하리라 마음 먹었단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간 뒤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랬던 혜영씨가 지난 7월, 10년 만에 다시 가까스로 모국을 방문했다. 이번에도 친모를 찾고자 자신이 태어난 부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 곳을 발이 닳도록 찾아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도 꿈에 그리던 친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친모를 못 찾고 곧 한국을 떠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무겁네요"라며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을 쉬었는 혜영씨. 결국 그는 지난 12일 친모를 찾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a  이혜영, 내가 엄마를 찾을 수 있다면 마침내 내 마음은 평안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이혜영, 내가 엄마를 찾을 수 있다면 마침내 내 마음은 평안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 김성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모국을 떠나는 혜영씨에게 친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난 항상 엄마를 사랑했어요. 엄마, 내게 아름다운 삶을 주어서 감사해요. 내가 엄마를 찾을 수 있다면 마침내 내 마음은 평안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한국정부의 해외입양정책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내 모국, 한국을 생각하면 맘이 찢어질 정도로 괴롭네요. 난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나마 풍족하고 아름다운 삶을 누렸어요. 그러나 항상 알 수 없는 슬픔, 고통, 공허함을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한국정부의 해외입양정책과 관련하여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가 잘 안 되네요. 한국정부에 대해 애증의 감정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자는 그럼 한국정부가 아닌 기자와 같은 일반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해외입양제도를 끝내기 위해 우리 함께 일 합시다. 어른들이 아이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아이를 해외입양 보내는 것은 아이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해외입양은 아이의 행복과 건강한 정신적 발달을 위해 결코 좋지 않습니다."

끝으로 기자는 한국 내 해외입양기관에 근무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 입양인들이 친가족을 찾고자 할 때 파편처럼 부서진 부분적인 정보가 아니라 전체적인 정보를 주세요. 우리는 해외입양을 경험하지 못한 당신들과 같은 인간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뿌리인 부모가 누구인지 알권리를 가진 것처럼, 우리 해외입양인도 우리 뿌리인 친부모님에 대해 알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친부모님을 알권리는 인간의 기본권리 입니다. 나는 해외입양인도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혜영 씨는 지난 12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 입양인 이혜영씨나 그녀의 친모 1960년생 이혜영씨를 아시는 분은 '뿌리의집'(02-3210-2452)로 연락 바랍니다.
#이혜영 #입양 #김성수 #뿌리의집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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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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