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강아지 보모', 이거 장난 아닌데요?

테리와의 하루...어린 아이 키우는 것과 똑같네요

등록 2013.08.18 17:55수정 2013.08.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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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난감도 싫다는 테리의 멍한 모습 ..

장난감도 싫다는 테리의 멍한 모습 .. ⓒ 정현순


"테리야 화장실 가서 쉬 하자."


화장실에 있는 테리의 쉬하는 장소에 데리고 갔지만 녀석은 눈만 말똥말똥 거리면서 내 눈치만 보는 듯했다. 얼마동안을 기다렸지만 테리는 쉬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난 테리를 야단칠 수가 없었다. 개들은 사람의 목소리에 아주 민감하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그런 테리를 보고 나도 기다리기가 지쳐 테리를 제 집으로 다시 넣고 문을 잠갔다. 내가 그대로 풀어주면 그동안 습관이 잘 들었던 것이 헷갈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무리 개이지만 좋은 습관에 혼동을 주면 안 되기도 하고. 그동안 딸아이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게 훈련시키기가 힘들었던 점을 능히 알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3번을 되풀이 한 후에 테리는 겨우 볼일을 보았다. 하여 마음껏 뛰어 놀라고 거실에 풀어주었다. 그런 자유의 시간을 2시간 정도 누리고 다시 제집으로 들여보냈다.

혼자 남은 테리, 마치  제주인을 찾아 다니듯 이방저방으로

며칠 전, 딸아이가 시댁에 간다고 하면서 테리를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할머니 할아버지, 테리에게 양파껍질, 초콜릿 등은 주면 절대 안 돼" 손자들의 신신당부도 이어졌다.


그동안 4박5일의 여름휴가도 테리를 데리고 갔고, 자주 가는 캠프 등도 늘 함께 했지만 이번에는 시댁에 가야 하기에 우리 집에 맡기게 된 것이다.  테리도 나를 자주 보아온 탓에 그다지 낯가림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딸아이 집에 있다가 우리 집에 오니 여러 가지로 낯설 수밖에.

게다가 제 주인마저 가버렸으니 테리는 다른  날보다 무척이나 의기소침 해보였다. 딸아이 가족들이 모두 가고 나와 단둘이 낯선 환경에 남게 되었다. 테리는 마치 자신의 주인을 찾아다니듯이 이방 저방, 베란다. 주방 등 구석구석을 조용조용히 다니면서 살피기 시작했다. 사료도 잘 먹지 않고 어디 한군데 차분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었나보다.


그런 어린 강아지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평소대로 라면 대소변을 화장실에 있는 대소변 통에 했을 텐데 거실 아무 곳에나 싸는 것은 물론, 먹은 것을 토하기까지 했다. 녀석은 토한 것때문에 야단 맞을까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난 야단을 치지 않고 "테리야 네 주인이 많이 보고 싶어서 토했구나"하곤 토한 것을 치웠다. 테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 곳에나 볼일을 본 것과 토한 것을 치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테리가 지난 3월초에 딸아이 집에 온 후 떨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나보다.

a 마치 삐친듯이 테리의 요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 ...

마치 삐친듯이 테리의 요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 ... ⓒ 정현순


밤이 깊어가고 잠자리에 들려고 거실에 이불을 폈다. 그런 모습을 본 테리는 한쪽구석으로  가더니 한동안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현관문 쪽만 뚫어져라 웅시 하고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저를 데리러 주인이 올 것만 같았나보다.

하지만 그날 하룻밤은 우리 집에서 자야하니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버려진 유기견들이 생각났다. '몇 달 키우지도 않았는데 저러는데 몇 년씩 키운 개를 어떻게 길에 버리는지 모르겠다.' 테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 거려보았다.

난 테리를 달래서 테리의 집으로 들여보내고 테리의 집을 마주보고 자리에 누었다. 그제야 테리도 안심을 했는지 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다행히 잠을 자면서는 끙끙거리거나 짖지는 않았다.

그렇게 잘 자나 싶었는데 새벽 3~4시경에 "엄마 테리가 킁킁 거려. 뭐가 이상한가봐"하며 아들아이가 나를 깨운다. 다른 때와는 소리가 다르게 들려나보다. 나도 놀래서 "테리야 왜?"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순간 갑자기  전날 토한 것이 생각나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가 하고 사료를 몇 개 손에 들고 집안에 디 밀면서"자 테리야 배고프니?"하니 정신없이 받아  먹는다. 바로 그거였다. 난 바로 개집의 문을 열어 테리에게 사료를 주었다.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테리는 저녁에 건드리지도 않았던 사료와 물을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말못하는 개 돌보기,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여

사료 통을 깨끗이 비우고는 어그적 어그적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래 테리가 배가 많이 고팠구나"하곤 잠시 등을 토닥거린 후  테리를 다시 집으로 들여보냈다. 배가 불러서인지 그때부터 테리는 아침까지 잘 잤다. 그런 것을 보면 강아지도 아기들 키우는 거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가족, 반려동물이란 말도 나왔겠지.

말 못하는 테리도 손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어디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딸아이가 말해주었듯이 아침에도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테리도 꼼짝 않고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 얼른 문을 열어주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자고 하니 밤새 참아서인지 볼일을 보았다. 꽤나 많은 양이었다. 하룻밤 우리 집에서 잘 자서였을까?  전날보다 표정도 밝아지고 훨씬 활발해졌다.

장난감을 던져주면 뛰어가서 물어오고 장난도 걸어오기도 하면서. 전날에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잭 러셀 테리어 종인 테리는 겁도 없고 활동량이 많은 개로 같이 산책을 나가면 가만히 걷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대부분은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할 정도이다. 그런 개가 전날 그렇게 얌전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주인의 몫이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주인이 저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저녁 무렵 딸아이가 테리를 데리러 왔다. 현관문의 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들은 테리는 어느새 현관으로 뛰어 나가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오줌을 질금질금 지리면서 주인에게 안긴다. 무척이나 기다렸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주인과 해후상봉을 한 후 테리는 제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건강하게 제집으로 돌아가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들아이가 집에 돌아와 테리가 보이지 않자 "엄마 개 키울 수 있어요? 그럼 내가 한 마리 사줄게" 한다. "아니 나 못 키워. 집안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마당이 있으면 어떻게 한번 키워 보고도 싶은데 실내에서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무척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말을 못하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먹을 것을 잘 챙겨주어야 하고, 때에 맞추어 예방주사도 맞추어야 하고, 하루에 한 번씩 산책도 시켜주어야 하고, 목욕도 시켜주어야 하고, 이빨도 닦아 주어야하고, 대소변도 잘 가리게 해주어야 하는 등 등 때맞추어 돌봐주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개 한 마리를  키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을 한명 키우는 만큼 정성과 사랑이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리의 1닝 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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