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표지
위즈덤하우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동서고금의 인물 열네 명의 삶을, 그가 평생 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고 그 책의 영향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도 주인공 중 한 사람이다. 정조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다. 내가 정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좋아해 늘 책을 가까이 했으며,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책에서 사람의 도리와 삶의 길을 물었던 왕이기 때문이다.
정조는 평생 암살 위험을 느끼며 살았던 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정조 스스로 "옷을 벗지 못하고 자는 때가 몇 달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로 세손시절부터, 그리고 등극한 후에도 늘 암살 위험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정조 재위 1년째인 1777년 7월 28일 밤에도 정조가 책을 읽고 있던 경희궁 존현각에 자객이 침투한다. 이날의 사건을 <정조실록>은 '도둑이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암살을 목적으로 자객이 들었던 것이란다. 정조가 책을 읽으며 깨어 있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 그런데 13일 후에 자객이 다시 침입하다가 잡힘으로써 미수에 그쳤던 그간의 암살 계획이 모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게 한 홍계희의 손자 홍상범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왕의 아버지를 죽이는 일에 가담했으니 자신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다는, 즉 정조의 정치적인 보복을 두려워해 암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정조가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자객의 침입에 대비해 잠 못 자고 독서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조에게 책읽기는 학문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무기였던 것이다. 나아가 정조에게 책은 삶의 길, 즉 바람직한 군주의 길을 묻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정조가 미래로 가는 길에는 탕평이 있었다. 신하들 주장의 잘잘못을 명백히 가리는 원칙으로 탕평을 추진했다. 당파를 떠나 올바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옳지 않으면 내친다는 입장이었다. 탕평은 요즘말로 표현하면 '소통' 및 '대통합' 정책이다. 정조는 "방에 특별히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고 쓴 액자를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면서 나의 끝없는 교훈으로 삼아오고 있다"고 부르면서 탕평을 좌우명으로 삼았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서경>은 정조에게 소통과 통합의 정치를 이끌게 했다. 정조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했고 심지어는 반대파의 우두머리와도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이 시대의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정조는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었고, 자신은 세손 시절뿐 아니라 왕위에 있으면서도 암살위협에 시달렸다. 소통을 몸소 실천하기에는 쌓인 울분이 너무나 많았던 정조였지만 미래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조의 소통노력이 더욱 값지고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에서 내가 정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인물들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반적인 경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보다는 바람직한 통치자로 제대로 서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복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의 사사로운 사정보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우선해 자신과 반대에 있는 사람들과도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탕평'은 <서경>의 '치우침이 없고 당파가 없으면 왕의 앞길이 순조롭고, 당파가 없고 치우침이 없으면 왕의 앞길이 평평할 것이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정조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니 책을 즐겨 읽기는 하나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실천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면, 아니 <서경>의 이 탕평을 만나지 않았다면 반대 입잘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올바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탕평이 과연 가능했을까?
정조는 <오경백편>을 펴냈다. <오경백편>은 정조가 직접 <서경>, <주역>, <시경>, <춘추>, <예기>에서 중요한 내용 99편을 추리고 주자의 저술 두 편을 더해서 만들었다. <오경백편>은 정조가 생각하는 오경의 요약본인 셈이다. <오경백편>의 <서경>편을 보면 <서경> 중에서도 소통에 힘쓰고 정치를 주도력으로 이끌었던 임금에 관한 내용만 가려 뽑았다. 정조 스스로 어떤 임금이 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조실록>에는 <서경>이 90여 번 언급되었으며, 과거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었다. 그만큼 정조에게 <서경>은 중요한 경전이었다. -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에서<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가 평생 읽었다는 책과, 책과 연관된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떤 책을 읽은 인물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인물이 읽었던 책에 대한 지식까지 넉넉하게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경>의 어떤 부분들이 정조로 하여금 평생동안 <서경>을 붙잡게 했을까? 그리하여 이처럼 <오경백편>까지 펴내게 했을까? <서경>은 과연 어떤 책일까?
정조가 평생 곁에 두고 읽었으며 옛사람들이 즐겨 읽었다는 <서경>은 그러나 내겐 참 낯선 책이다. 사서오경 중 하나로, 중국의 여러 왕들의 말과 행동을 공자가 정리한 책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서경>은 이 정도로만 기억 속에 있으리라. 이런지라 이 책을 통해 정조를 만나는 동시에, 한국인들이 세종과 함께 좋아하는 정조를 가능케 한 <서경>의 중요 부분들을 접할 수 있음은 무척 큰 수확이랄 수 있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고전들은 <서경> 외에 <역사란 무엇인가> <맹자> <사기> <논어> <시민의 불복종> <통치론> <이기적 유전자> <침묵의 봄> <그리스인 조르바> <일리아스> 등. 책에 대한 설명으로만 이야기를 이끌지 않고 그 책을 즐겨 읽었으며, 즐겨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정조가 <서경>을 통해 탕평을 꽃피웠던 것처럼 주인공의 삶과 맞물려 녹여 들려주기 때문에 책을 통해 만나는 고전들이 훨씬 친근하게 와 닿는다.
세종은 조선 초기 번영을 이끌었고, 정조는 후기에 '조선판 르네상스'를 열었다. 2009년 2월에 정조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가 공개되었다. 약 4년간에 걸쳐 보낸 297통이었다, 정조가 욕을 하는 대목도 나오고 심환지와 정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조를 지시하는 부분도 있다. 정조가 편지를 읽은 뒤에는 없애라고 명령했는데도 심환지가 남겨두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편지가 공개되자 정조가 반대파 인물과 짜고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는등 말이 많았다.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구절을 보고는 정조의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조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며 독살의 배후 인물로까지 의심받는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사실을 통해 어리석은 군주와는 다른 정조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 불통의 권력자는 반대 세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는 닫고, 말도 섞지 않으려 한다. 반면에 정조는 반대 세력조차 소통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에서 정조의 이야길 읽다보면 복수의 칼날을 선택하는 바람에 자신 역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만 했던 인물들이 스치곤 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소통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종종 '과연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마도 '쇼'에 불과한 듯한. 상대방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며 스스로 선택한 소통 차단으로 인한 분열과 대립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정조의 소통을 위한 노력과 그를 가능하게 한 <서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이 책이 더욱 남달리 읽히는가 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 명사, 그들이 만난 고전
임영택.박현찬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유하기
정조와 <서경>, 소통 능력은 리더의 최고 덕목이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