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이 '상나라 사람'에서 '장사하는 사람' 된 사연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8] 商

등록 2013.08.20 16:48수정 2013.09.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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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商 상(商)자는 제정일치 사회였던 당시 중요한 신사(神社) 건물의 모습을 본 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商)자는 제정일치 사회였던 당시 중요한 신사(神社) 건물의 모습을 본 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漢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북공정'처럼 중국고대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중에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 있다. 이에 따르면 상(商, Shāng)나라는 BC1600년경에 건국되어 BC1046년까지 약 550년간 지속되었다. 하(夏)나라 마지막왕인 걸(桀)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주(紂)'왕이 목야전투에서 주(周) 무(武)왕에게 패배하면서 14대 31명의 왕이 재위했던 상나라는 막을 내렸다.

상나라는 은(殷)나라로도 불리는데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에서 발굴된 도읍지 유적인 은허(殷墟) 때문이다. 상나라는 특이하게 수도를 최소 여덟 차례 이상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은허에서 발견된 유적을 분석하면, 상나라를 세운 상족(商族)은 높은 기단을 쌓아 제사를 지내던 전례(典禮) 건축물을 중심으로 성곽 형태의 넓은 주거지를 형성했다.

상(商)자의 갑골문 형태가 바로 제정일치 사회였던 당시 중요한 신사(神社) 건물의 모습을 본 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도읍을 여러 차례 옮겨 다니다 보니 상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각 지역의 특산물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고, 또 그것을 이용해  물물교환이나 장사를 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래서 '상나라 사람'이 곧 '장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추측이다.

상인(商人)이라는 말이 '상나라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가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전환된 데에는 마지막 왕이었던 폭군 주왕의 악행 또한 무지할 수 없다. 주왕은 무희 달기(妲己)와 방탕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날을 보내고, 숯불을 피워 달군 구리 기둥 위에 기름을 바르고 죄인으로 하여금 맨발로 그 위를 걸어가게 하는, 잔인한 포락지형(炮烙之刑)의 폭정을 일삼았다.

<시경(詩經)>에도 기록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은나라의 실패를 거울삼아야 한다는 '은감(殷鑑)'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봉건제도를 실시한 주나라는 극악한 과오가 많은 상나라 백성들에게는 분봉을 해 주지 않았다. 봉토를 지급받지 못한 상나라 사람들은 주로 전통적인 가내수공업을 통한 면직물 생산이나 장사를 통해서 생계를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폭군 주왕의 악행에 미운 털 박힌 상나라 사람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상인이었으며,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 봉건사회에서 상인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송(宋)대 이후 급성장한 상인 계급도 막강한 전통질서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상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더딘 근대화로 인한 혹독한 후과를 경험한 후에야 뒤늦게 시작되었다.
#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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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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