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국정원 직원이 나에게 왔다면...

대학생이 바라 본 '내란예비음모죄'

등록 2013.08.30 11:55수정 2013.08.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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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8일 하루 국정원의 내란예비음모죄와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서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만일 그들이 나에게 온다면 어떨까.

나에겐 지금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낼 수백만 원의 돈이 계좌에 있다. 그렇다면 <계좌서 수백만원의 돈 입금 발견>이란 기사가 뜨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의 회의를 가진다. 그렇다면 <혁명조직 결성해 매주 내란음모>란 기사가 뜰 테고 또한 그간 학생회 행사로 학생회실에는 물총, 비비탄총, 다트, 식칼 등의 간단한 식기도구와 가스 버너 등이 있다. 그렇다면 <조직모임에 이미 총기, 화기 등 구비해 놔>라고 기사가 나갈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국정원의 내란예비음모의 증거 중 하나인 '혁명동지가'. 나도 새내기 때 동아리 방에서 돌아다니는 오래된 민중가요 책에서 이 노래를 본 적이 있다. 나아가서 동아리 회장일 적에는 동문 모임에서 '요즘에 새로 꽂힌 노래'라며 이 노래를 수십 명 앞에서 부른 적도 있다. 그렇다면 난 이때 돌이킬 수 없는 얼마나 무서운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 방 벽에는 여름농활 가서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손수건을 목에 묶은 채 찍힌 단체 사진도 있다. 그렇다면 <붉은 수건을 목에 두른 북한 복장 기념 사진 발견>이란 기사가 나올테고, 예술 관련 학생회를 하는 내 책꽂이에선 <방에서 혁명가요, 북한 찬양 가요 다수 발견 수사 중> 이란 기사가 나올 것이다. 이 밖에 얼마나 많은 기사거리가 나의 가로세로 두 팔 정도의 작은 방에서 쏟아져 나오게 될까.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다 보면 가끔 내가 쓴 기사의 헤드라인이 편집부에서 눈에 더 잘 띄도록 손질되어 나가기도 한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기사의 헤드라인은 '클릭을 유도하게끔' 씌여진다는 것이다. 헤드라인의 한 줄에는 사건에서의 '왜'나 '어떻게'가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무엇이'만이 들어있다. 이런 기사들이 전방위에서 쏟아지게 된다면 '무언가' 냄새를 풍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주변 친구, 가족들의 반응이 어떨까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안타깝기는 하지만 맞는지 아닌지는 조사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 "쟤 그럴 줄 알았다. 북한으로 보내라", "어머 저런 사상을 가진 애가 학생회를 하고 있었다니" 라는 반응을 보일까? 그때에도 우선 의심을 가지고 '팩트'부터 따지고 볼까?

'내란음모', '총기', '혁명조직' 등의 자극적 단어들 속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국정원 내란예비음모죄에 엮인 사람들이 불과 하루 전에는 처음부터 '뿔' 달린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말이다.


* 독일인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First they came'이란 시를 첨부한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First they came)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덮쳤을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때
아무도 항의해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석기 #국정원 #내란예비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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