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없어도 내 주머니에서 이자가 나간다고?

[서평] 마르그리트 케네디 <화폐를 점령하라>

등록 2013.09.01 09:59수정 2013.09.0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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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를 점령하라 ⓒ 아포리아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25일 등록·미등록 대부업체(사채)들 금리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평균 이자는43.3%였고, 일부 미등록 업체 경우 연 100%도 있었다. 이들만 그런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도 각 카드사 별로 다르지만 20%내외다.

현금서비스가 대부업체 이자율과 같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서민들이 현금서비스와 사채에 한 번 발을 내딛는 순간 헤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특히 아래 기사 제목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연리 3,000% 넘는 사채 이자...자영업자 자살도! 2012.05.17 -<YTN>
2100% 고리…협박 시달린 채무자 자살사이트에 2012.10.31-<SBS>
불법대부업자 특별단속 결과…4000%넘는 초고금리업자도 2013.05.28-<매일경제>

상상이 안 간다. 배보다 배꼽이 커다는 말이 무색하다. 사채와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는 정말 '빚'이 한 푼도 없는 사람들은 내 주머니에서는 이자가 한 푼도 나가지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단다. 빚이 없어도 내 주머니에서는 이자가 나간다.

빚이 없어도 내 주머니에서 이자가 나간다고?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 이들이 있겠지만, 그렇다. 독일에서 지역 화폐 운동과 국제보충화폐운동(무이자 은행 등) 전문가이자 독일 하노버 대학 교수를 지낸 마르그리트 케네디 (Margrit Kennedy)는 빚이 없어도 내주머니에서 이자가 나간다고 말한다.

케네디는 <화폐를 점령하라>(아포리아)에서 내지 않아도 되는 이자가 우리 주머니에서 어떻게 매일 새어나가고 있는지 예를 들어 증명한다. 이어 돈과 절대 결별할 수 없는 일상에서 지금 주어진 불평등한 화폐 시스템에 종속되어 계속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지 따져 묻고, 이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대안과 해법을 찾아나선다.


"사람들은 이자란 대출을 했을 경우에만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여긴다. 당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믿음이 거짓임을 사회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가격은 이자를 포함하고 있다. 가령 생산자는 상품을 만들기 위하여 기계 구입비, 관리비, 서비스 제공만큼의 노동임금을 지불하여야 한다. 이러한 비용을 위해 대출을 하고 이자를 지불했다면 생산자는 이자를 포함하여 가격을 결정할 것이다"(51쪽)

그에 따르면, 1980년대 독일 국민이 쓰레기 수거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중 이자가 12%였고, 생수가격에는 38%, 정부 보조 주택 임대료에는 77%가 이자 비용을 포함시켰다.

특히 2006년 독일 한 가구가 일상 생활품이나 서비스에 지출하는 평균 이자부담률은 40%였다. 한 마디로 단순하게 계산하면 독일 국민들은 소득 3분의 1을 이자로 낸 것이다.

내가 산 물건, 버린 쓰레기에도 이자가 포함?

내가 산 물건, 내가 버린 쓰레기 수거비용에도 이자가 포함됐다니. 놀랍지 않은가? 자본은 이렇게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본은 우리 삶 곳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자는 곧 돈이다. 이를 달리 부르면 '화폐'다. 빚을 지지 않아도 내 주머니에서 수입 3분의 1이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가?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말을 들으면 '속 터진다.' 은행은 "당신이 맡긴 돈은 당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은행이 말한 '당신'은 피땀흘러 번 몇 만원, 몇 십만원씩 매달 넣는 서민이 아니라 금융소득 최상위 10%인 소수 부유층일뿐이다.

"이곳저곳에 숨겨진 이자때문에 독일인의 80%는 자신들이 받는 금리보다 이자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 나머지 20%의 독일 중 10%는 금리 수익과 이자 비용이 동일하며, 충분한 부를 가진 10%만이 유일하게 금리 수익이 이자 비용보다 높다. 최상위 10% 계층 대부분은 90% 사람들의 이자에서 거둬들인 수익으로 다시 금융 투자를 하여 재산을 늘린다. 2007년 독일 소수 부유층은 매일 6억 유로가 넘게 주머니를 불렸다고 한다"(52쪽)

결국 서민들은 자신이 얻은 쥐꼬리 이자로 최상위 10% 금융소득 배불려주는 일에 땀 흘리고 있는 셈이다. 누구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그것은 독일 예"라고. 하지만 "이는 비단 한 사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주목해야 할 만한 이슈"라며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는 금융 시스템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각성을 지적하였지만 대안을 찾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는 글쓴이 말에 속 터질 수밖에 없다.

잠깐 손해가 두려워 붕괴를 막는 기회 놓치지 말아야

그럼 최상위 10%에게는 마냥 좋은 일일까? 이자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붕괴 속도는 빨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007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를 잘 알고 있다. 돈으로 돈을 벌다가 당했다.

우리는 특히 1997년 IMF로 말미암아 지독한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10%대 90%가 아니라 1%대 99%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극최상위 1%는 금융소득을 통해 더 배를 불리겠지만, 언젠가는 파괴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화폐를 점령하라>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화폐 시스템은 자연 성장 곡선에서 벗어나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중략)복리 이자로 성장속도가 점차 빨라져 곡선 후반에 다다르면 거의 수직 형태를 보인다. 이런 변형 성장을 갖는 자연 유기체는 결국 파괴된다. 동일한 결론이 화폐 시스템에서도 예견된다. 복리 이자에 기반한 금융자산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두 배가 넘게 증가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붕괴할 것이다. 이자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붕괴는 더 빨리 될 것이다."(38쪽)

은행에 통장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고, 보험도 하나 정도 다 들어 있다. 내가 이자를 많이 받고, 배당을 더 많이 받으면 다른 이들이 더 손해(부채)를 보는 것이 '금융자산'이다. 잠깐 보는 손해가 무서워 현재 화폐 시스템을 유지하면 "우리는 결국 금융자산과 함께 침식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우리에게 탈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케네디는 경고한다. 모두가 붕괴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이제 그 방법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케네디가 제시한 대안은 "화폐를 점령하라"다. 최상위 10%가 90% 이자까지 가로챈다는 것을 안 우리는 그럼 이제 10%가 가져간 이자를 빼앗아 우리 것을 되찾자는 소리를 들리겠지만, 이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화폐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이렇게 화폐를 점령하면 민간 은행이 갖는 신용의 기능을 제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화폐 발행 과정에도 관여할 수 있다. 극소수에게 독점된 부를 모두에게 분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케네디 논리다.

"화폐를 점령하라"

그럼 이것이 가능한가? 그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도 이런 예가 있다고 말한다. 스웨덴 JAK은행과 '디머리지 제도(Demurreage)'다. JAK은행은 대출에 이자를 전혀 부과하지 않는다. 당연히 저축에 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저축을 하면 신용이 쌓이고 쌓인 신용으로 대출을 받는 원리로 신용이 금리와 이자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확대하여 말하자면 내가 금리 없는 저축을 하여 다른 누군가는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훗날 필요할 때 나는 이자 없이 대출 을 받을 수 있다."(72쪽)

디머리지란 "물건을 내리는 의뢰인이 약정된 기간 내에 하역을 완료하지 못한 경우에 초과 정박 기간에 대하여 선박 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뜻"하는 것으로 "다음 사용자가 기다리지 않고 화물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발된 시스템"이다. 한 마디로 디머리지는 정체된 화물선의 회전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를 경제 시스템 도입하자는 것이 케네디 주장이다.

이를 경제 시스템에 응용하면 디머리지는 내가 돈을 주머니나 은행 당좌 계좌에 꽁꽁 묶어 두어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 지불해야 하는 소액의 수수료이다. 디머리지 수수료는 보관된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환불되어진다. 직접 환불되지는 않지만 은행에서 부과하였을 경우에는 은행 수수료 감액을 통하여, 정부의 경우에는 세금 감면을 통하여 환불된다. 디머리지 앞에서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수수료를 내더라도 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은행을 통하여 단기 혹은 장기 대출로 다른 사람들이 바로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할까? 만약 후자로 결정하고 은행에 입금하면 돈이 계좌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순환될 것이다. 은행 역시 계좌에 들어온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 즉시 대출하지 않으면 디머리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아래 돈은 이자 원리라는 인센티브가 없이 순환될 수 있다."(79쪽)

디머리지 시스템 근본 목적은 "금리를 통한 공짜 소득(단순히 자산이나 돈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에 일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을 방지하는 것"이다. 복리 이자를 통해 부를 끝없이 축적하려는 소수 부유층은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90%에게 부를 재분배하게 된다. 부유층으로부터 사회 대다수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일까지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화폐'

특히 케네디는 새로운 화폐 도입을 주장한다. 기존 국가의 화폐나 법정 화폐와 공용되는 '병용 화폐', 한 번쯤을 들어본 '지역 화폐', '교육 화폐', '건강 화폐' 따위다. 갈수록 의료비는 늘어난다.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돈 없는 사람은 건강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건강 화폐는 "홈케어나 조기 건강 검진과 같은 예방 차원의 의료 활동을 향상시키려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현재 보험제도는 병이 든 후, 병원비가 목적이지만, 건강 화폐는 병든 후, 의료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방 차원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는 감소하고,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건강 화폐를 양도할 수 있다. 보험 회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건강 화폐이다. 10% 최상위 부유층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케네디 생각은 다르다. "지속 가능한 화폐는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간다"고 단호 말한다.

지속 가능한 화폐는 가격에 숨겨진 이자를 제함으로써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회 구성원의 소득을 두 배로 향상시킨다. 물론 나머지 10퍼센트 구성원에게도 혜택이 주어진다.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에 그들의 돈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화폐는 우리에게 지역 공동체와 환경, 후손에게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함께 골고루 잘 살자. 내 배만 불리면 당장은 좋겠지만, 결국 망한다. <화폐를 점령하라>가 주는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화폐를 점령하라>마르그리트 케네디 지음 ㅣ 황윤희 옮김 ㅣ 아포리아 펴냄 15000원

화폐를 점령하라 - 99%의 화폐는 왜 그들만 가져가는가

마르그리트 케네디 지음, 황윤희 옮김,
생각의길, 2013


#화폐 #금융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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