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보낸 짧은 휴가 "신선놀음이네"

대둔산 골짜기에서 만난 진기하고 아름다운 풍경들

등록 2013.08.31 18:50수정 2013.08.3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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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구름에 감싸인 골짜기와 산 풍경 ⓒ 이승철


"우와! 저 구름에 싸인 산들 좀 봐? 이곳이 이승이야 천국이야?"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산골의 아침풍경이 가히 선경이네, 선경"
"선경이라? 그럼 우리들이 지금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건가?"

일행들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지난 8월 15일 아침이다. 전날 밤 도착하여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산책길에 나선 참이다. 오랜만에 맛본 산골의 아침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상쾌했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에 우뚝 솟아 있는 대둔산 줄기가 뻗어 내린 전북 완주군 운주골짜기에서다. 주변의 산들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골짜기는 깊었다. 서울 중부지역과는 달리 가뭄이 심하다고 했는데 골짜기엔 그래도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라! 저 트럭 좀 봐? 저게 몇 년도에 나온 차량일까?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트럭이 아직도 운행되는가 보네"

길옆의 가파른 산자락은 곧게 자란 나무들을 벌목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지런하게 자른 목재들을 잔뜩 실은 트럭이 경사진 언덕길에 세워져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1950년대쯤에나 운행되었을 것 같은 아주 낡은 트럭이었기 때문이다. 트럭의 주인이나 운전자가 없어 차량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오래된 낡은 차량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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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낡은 트럭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가파른 산자락의 벌목현장에서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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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잡는 피서객들 ⓒ 이승철


"저기 보이는 산굽이까지 걸어볼까? 오늘 아니면 이런 길 언제 또 걸어보겠어?"
"좋지! 이런 길은 아마 신선들도 좋아했을 거야, 허허허"

골짜기를 따라 걷는 일행들의 얼굴 표정이 상큼함으로 넘쳐난다. 골짜기 물가 한편으로는 물놀이 피서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이어서 아직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물가 둑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둑길에 노랗게 피어있는 어른 키만큼 크게 자란 꽃나무들은 달맞이꽃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앞에 보이는 골짜기 너머로 솟아난 산을 감싸고돌던 안개구름이 골짜기까지 퍼져 내린다. 달맞이꽃 너머로 바라보이는 산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자 길가 밭에서 일하는 나이 들어 보이는 농부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엄두도 못내요, 그래서 아침저녁 햇빛이 없을 때만 잠깐씩 밭에 나와 일합니다."

농부부부는 들깻잎을 따고 있었다. 낮에 시장에 내다 팔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있는 논에서는 벼이삭이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풍요롭다. 아직 한낮의 햇볕은 따가웠지만 어느새 가을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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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된장국과 김치 세 가지 조촐한 아침 밥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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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하지만 정다운 골짜기의 생일파티 ⓒ 이승철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하다. 아침상 반찬은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부인이 담가온 열무와 파김치, 그리고 고구마잎줄기 김치였다. 친구부인의 음식솜씨가 좋아 특별히 부탁한 김치들이다. 그런데 더욱 입맛을 당기는 것이 호박과 감자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였다. 끓는 냄새가 매우 특별했기 때문이다.

"자! 기대하세요. 이게 바로 저 앞 냇물에서 잡은 다슬기를 넣고 끓인 다슬기된장찌갭니다"
"다슬기된장찌개? 언제 그런 걸 구해놨지요?"
"구하긴요, 아침에 산책 나갔을 때 우리들이 잠깐 동안 직접 잡은 거예요."

역시 알뜰한 아내들이다. 남편들이 아침산책을 하는 동안 아내들은 흐르는 냇물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아온 것이다. 집주인이 알려줘서 물에 들어가 보니 오염되지 않은 골짜기여서인지 다슬기가 많더라는 것이다. 다슬기된장찌개라, 처음 먹어보는 진기한 음식이다.

"히야! 정말 맛있다 맛있어. 우리들이 오늘 신선놀음 하는 것 맞네, 이렇게 맛있는 김치와 된장찌개까지 허허허허"

남편들의 감탄과 칭찬에 아내들이 더욱 좋아한다. 아내들은 이곳에서 머무는 2박3일 동안 또 한 번 더 다슬기 요리를 맛보여줄 것이라며 기대를 부풀게 한다. 아침을 먹고 밖에 나오자 햇볕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야말로 머리털 벗겨 질만큼 따갑다. 물가 시원한 그늘 밑에서 쉬며 모처럼 친구부부들과 나누는 부담 없는 이야기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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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의 아침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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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이 피어있는 아침풍경 ⓒ 이승철


"응, 나다, 여기 대둔산 골짜기에 왔는데 참 좋다. 생일은 무슨, 이곳에서 이렇게 친구들이랑 쉬는 것이 제일 좋은 거지. 고맙다"

전화 받는 친구부인의 통화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바로 그날이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친구부인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점심은 생일파티상입니다. 자, 당장 생일케이크 사러 갑시다."
아내와 일행의 부인들이 당장 케이크를 사러가자고 나섰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면소재지로 차를 몰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대둔산 정상이 구름에 휘감겨 있는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생일케이크와 술, 고기를 곁들인 골짜기 물가 생일파티는 조촐했지만 즐거움이 가득했다. 평소 수줍음이 많아 애정표현이 서툴렀던 친구가 친구들 눈앞에서 부인에게 멋진 키스를 해준 것도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름답고 멋진 골짜기에서 신선놀음 같은 시간을 보낸 지난 여름휴가는 참 좋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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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휘감긴 대둔산 정상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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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이삭이 영글어 가는 벼논풍경 ⓒ 이승철


#대둔산 #신선놀음 #생일파티 #다슬기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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