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밭에서 김용운씨가 포도를 보며 웃고있다.
이정희
지난달 28일 이른 아침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황간역에서 김용운(56)씨를 만났다. 그의 차를 타고 20여 분 들어가자 그가 귀농해 터를 잡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 금천리 마을이 보였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는 벌써 밭일을 하고 온듯 보였다. 하루 일과를 몇시에 시작하는지 묻자 그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 나가고, 지면 들어와 잡니다"라고 설명했다. 시간을 숫자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농부의 시계는 숫자가 아닌 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스스로 가난한 농부라 소개한 김씨는 '먹을거리의 뿌리를 찾아 자급자족 생활'을 꿈꾸며 5년 전 귀농을 선택했다. 그는 2008년 퇴직 후, 서울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상주로 내려왔다.
귀농 전 그의 직장은 '땅 밑'에 있었다. 그는 26년간 서울지하철공사 2호선의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반평생 봉급쟁이로 살아온 그는 퇴직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귀농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명예퇴직을 포기하고 '땅 위'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지을 생각이다" 일손을 도울 겸 김씨가 가꾸는 밭을 찾았다. 그는 2000여 평의 밭에 포도, 고추, 배추, 무, 토란, 옥수수, 감자, 감 등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자급자족을 하고 있는 김씨가 이날 거둬들인 작물은 고추와 포도였다. 새빨갛게 익은 고추가 줄기마다 가득했다. 올 여름 고추만 4번째 수확이라는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밭에서 달달한 냄새가 났다. 고추밭 바로 옆, 익을대로 익은 포도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도밭으로 자리를 옮긴 김씨는 바로 포도 한 송이를 따더니 맛을 보라고 권했다. 그는 "크게 농사를 안 짓고, 내가 지을 수 있을 만큼만 한다. 농약도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쓰고, 자연의 순리대로 깨끗이 키웠으니 (안 씻고) 그냥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기농 포도를 수확하고, 박스에 담고, 택배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혼자 전 과정을 처리했다. 그는 "포도 한 송이 참 쉽게 먹지만, 포도를 따기 전까지 30번 정도 농부의 손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건을 넘길 때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지인을 상대로만 판매하고 있었다.
중간 상인에게 안 파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작목반에 소속되면 편하게 팔 수 있지만, 도매업자에게 밭떼기로 팔아 경매로 값을 매길 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크게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다"며 "가난해져도 내 손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지을 생각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