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대 덕분에 한나절 잘 보냈다

[섬진강변 두계마을 이야기 10]

등록 2013.09.11 17:21수정 2013.09.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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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본 사람은 손이 가려울 거여. 그랑게 장갑을 두 개 끼고 토란대를 뜯어 갖고 껍질 베껴서 말려. 말려서 해묵으면 맛있응게."  


송정댁 할머니가 자분자분 일러준다. 그제야 보니 마을 여기저기 담벼락 같은 데에 토란대를 세워놓았다. 지금이 토란대를 말릴 때인가 보다. 그렇게까지 일러주시는데 안 하면 미안해진다.

a  드디어 생긴 내 토란밭.

드디어 생긴 내 토란밭. ⓒ 김영희


나는 커다란 토란잎이 보기 좋아서 언젠가 한 번 토란을 심어 보리라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이번 봄에 토란을 두 줄 심었다. 토란을 심어 놓고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더니 고랑의 풀도 매어 주어야 하고 잔잎이며 밑에 누렇게 된 잎은 뜯어 주어야 한다. '북도 돋아야 한다'며 아랫집 김씨 아저씨가 나를 보기만 하면 성화지만 웬만한 일은 생략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얌전하신 송정댁 할머니 말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토란대 뜯어와. 여기서 말리게." 

그러잖아도 찜찜한데 정자에 앉아 같이 놀던 하동댁 할머니가 내 토란 밭쪽을 본다.

"뜯어갖고 조금 시들어진 담에 베껴야 해." 
"그래요?" 
"하먼. 싱싱한 토란대를 어치케 벳긴단가."


정자 옆에 서있는 느티나무도 알 일을 나는 처음 듣는다.

하여 다음날 아침에 큰 마음 먹고 토란밭으로 가서 풀을 베고(풀이 너무 자라서 호미로 매지 못하고 낫으로 벤다) 토란대를 뜯었다.


"토란대 말릴라고?"

밭에 가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자 상당히 기특하다는 듯 한마디씩 한다.

a  밭에서 뜯어다 부려 놓은 토란대.

밭에서 뜯어다 부려 놓은 토란대. ⓒ 김영희


토란잎을 뜯고 나서 연일 비가 줄줄 오더니 웬일로 반짝 날이 갰다. 날이 좋으니 여기저기서 경운기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모두들 논으로 밭으로 가는 것이다. 나도 무언가 일을 해야할 것 같다.

'아 참 토란대를 벗겨야지.'

뜯어다가 부려놓고 잊어버렸던 토란대가 생각난다. 그런데 토란대를 보니 한심하다. 이것을 언제 벗기나. 시장에서 말린 토란대를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벗기는 것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에라 혼자서는 심심한데 정자에나 가지고 가서 벗길까.

a  토란 벗기기 딱 좋은 곳

토란 벗기기 딱 좋은 곳 ⓒ 김영희


토란대를 핑계 삼아 시원한 정자에 앉아 놀기가 절반이다. 여기저기 주위를 본다. 아 정말 좋다.

"토란대 벗기요?" 

밭에서 오는 이장댁 얼굴이 벌겋다.

"토란대는 딴 지 나흘 만에 벳기면 잘 벳개져. 졸졸 통째로 벳개져."

나흘, 이제 제대로 알았다.

"이거 적(전)부쳐 묵으면 맛있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망태기에서 굵은 가지 네 개를 내놓는다.

"아이고, 가져가서 잡수셔요." 
"아, 먹어봐. 소금하고 마늘 좀 뿌려서 적(전)부쳐. 목말라서 나는 집에 가야겄네."

웬 횡재?가 아니라 공연히 정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등치는 것 같다. 위에서 또 동네 아주머니가 내려와 정자에서 잠깐 걸음을 쉬며 웃고 가고 멀리 전 이장 부부가 일하는 것이 보인다.

a  두계마을 패션.

두계마을 패션. ⓒ 김영희


조용한 정자에 있으니 문득 개울물 소리가 귀에 가득 찬다. 물소리 속에 물소리가. 또 물소리가 들어 있다. 이 마을에서는 물도 일을 한다. 논에서 밭에서 일을 하고 난 물이 여기저기서 개울로 흘러 들어간다.

a  논에서 일한 후 농수로로 흐르는 물

논에서 일한 후 농수로로 흐르는 물 ⓒ 김영희


잠깐 정자 밑 개울로 내려가 본다. 물이 참 맑기도 하다. 이 물이 저 아래 섬진강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처럼 볕이 난 오후, 토란대 덕에 한나절을 잘 보냈다.

a  정자 옆으로 흐르는 개울

정자 옆으로 흐르는 개울 ⓒ 김영희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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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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