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 vs. '식사', 외국인에게 뭐부터 알려주지?

[서평]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

등록 2013.09.06 08:32수정 2013.09.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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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어른들이 주로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투인가에 따라 어린 아이들의 말 쓰임새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에서 주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말을, 어떤 말투로 쓰는가에 따라 우리말의 쓰임새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다.


내 이름은 '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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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 ⓒ 하우출판사

고기잡이 배는 다른 업종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들 외국인 선원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 하나는 '야 인마'란다. 함께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버젓한 이름 대신 '야 인마!'라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 인마'와 함께 비교적 일찍 배우는 것은 수많은 한국 욕이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욕을 들으며 일하는지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는 "육지에 사는 한국인들보다 한국 욕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사람들까지 적잖이 있을 정도다.

'야 인마'로 불리는 외국인들에게는 셀 수 없이 들었던 '야 인마'나 욕들이 대표적인 한국어가 될 것이고, 한 가정의 가장을 '야 인마'로 부르거나 깔보는 한국인들이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모습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야 인마'라는 호칭 대신 이름만이라도 불러줬다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기분 좋을 말을 썼더라면, 아니 기본만이라도 갖춰 말했다면 그들이 과연 '야 인마'와 우리의 욕들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고, 대표적인 한국어로 기억할까?


이전에 인권과 노동이 주제인 르포집 <벼랑위의 꿈들>(정지아 씀, 삶창, 2012년 펴냄) '내 이름은 야 인마 입니다'란 글에서 이렇다 할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 '야 인마'나 우리 욕들을 가장 먼저 배운다는 이야길 읽으며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부터 외국인에 대한 체계적이며 바람직한 우리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제대로,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까?


"진지 드셨어요?"보다는 "식사하셨어요?" 먼저 가르쳐야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조현용 씀, 하우출판사 펴냄) 는 이런 물음에 명쾌하게 답해준 책이다. 동시에 우리말의 현실과 제대로의 쓰임새들을 들여다보게 한 책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이것이 정말 많이 쓰이는 건가?', '학생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건가?'라는 생각들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주어진 교재만 따라서 가르치지만 그 방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재는 변화가 없지만 한국어는 변화가 있거든요. 변화의 흐름에 맞게 어휘와 표현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줄임) 요즘에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고민하는 장면은 이런 겁니다. "밥 먹었어?"의 존댓말은 뭐예요? 제가 어릴 때는 다 "진지 드셨어요?"라고 표현을 해야 맞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요즘에 사람들을 만나보거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진지 드셨어요?"라는 장면이 별로 안 나와요. 요즘에는 거의 "식사하셨어요?"지요.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오히려 한국어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에서)

저자는 우리나라에 이렇다할 한국어 교육 관련 학과가 거의 없던 1994년부터 한국어 교육과, 한국어 교육인 배출에 힘써온 조현용 교수. 이 책은 우리말 학자로 그간 <우리말 깨달음 사전> <우리말, 가슴을 울리다> <한국인의 신체 언어> 등 우리말 관련 글들을 꾸준히 써온 저자가 한국어 교육 일선에 있는 '한국어 교육인들'에게 강의한 것을 모은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효율적인 한국어 교육 방법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대체적으로 많이 듣는 말, 그러니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생활과 소통에 꼭 필요한 말부터 우선 가르치자는 것이다.

예전에는 '밥'이나 '나이', '이름'의 높임말로 '진지'나 '춘추', '함자' 등과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쓰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식사'나 '연세', '성함'과 같은 말들이 더 많이 쓰인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말들을 우선 가르친 다음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 당사자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에 따라 순차적으로 좀 더 많은 우리말을 가르치자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어 교재에 엽서 보내기 또는 편지 쓰기와 같은 과제들이 나와 있다면 사용 빈도, 시대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것들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새로 교재를 개발하고 수업 내용을 조직할 때는 가능하면 최근 학생들이 많이 하는 것들을 중심적으로 하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내봐라.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내봐라"하면 학생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컴퓨터를 활용해서 이메일을 보내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활동을 학생들에게 시키면 재미있게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라. 우편엽서를 보내라 하면 잘 안하죠. 실제로 응용할 일도 별로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과제 제시에도 사용 빈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에서)

그리고 이처럼 시대의 흐름과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가르치자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어 교육 현장 경험과 그동안 만나온 외국인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방법들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와 함께 겹받침 문제, 표기와 발음, 사람을 지칭하는 어휘, 사람과 물건에 따른 어휘, 뜨거운 것을 먹으며 그 반대에 해당하는 '시원하다'는 표현을 하는 우리말의 독특한 쓰임새, 버릇이나 온돌, 숟가락, 재미 등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문화에 따른 어휘들 말 쓰임새, 문화 교육 관련 제안 등 우리말 배우기에 꼭 필요한 것들을 4장에 걸쳐 이야기한다.

'한국어 교육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우리말 교육은 중요

사실 이런 책은 특정인들을 위한 책 정도로 지레짐작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이 책의 저자를 다른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지 않았다면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책 정도로 지나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한국어 교육인'이란 특정인들만을 주요 독자로 한 듯한 느낌의 책제목이 조금 아쉽다. 독자의 범위를 이처럼 한정하지 않는 제목이었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나 같은 경우 외국인과 특별히 접촉할 일이 없는데도 이 책이 매우 설득력 있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야, 인마' 이야기를 읽은 후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으나 막연했던 우리말 교육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막연함이 해소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말 관련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의 생활에서 외국인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외국인들의 비중이 높아졌다. 우리말을 쓸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늘어났으며, 저자와 같은 특정인들만이 아닌 일반인들의 우리말 교육이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나를 통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내 앞의 외국인에게 무슨 말부터 어떻게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좋을까. 나를 통해 한국인들과 우리나라를 어떻다고 인식할 외국인들에게 어떤 한국인, 어떤 한국을 보여줄까?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는 가장 바람직하며 효율적인 방법들을 알려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 한국어는 세계에서 13위에 해당되는 언어라고 합니다. 정확한 수치라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13위 정도가 맞는 숫자인 것 같습니다. 13위이면서 사용 인구는 보통 7천 700만 명 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7천 700만 명이라는 숫자에는 남한의 숫자가 북한의 숫자가 기본적으로 포함되겠죠...(줄임)...우리가 실제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를 생각할 때,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재외동포지요. 재외동포의 숫자를 한국어를 사용하는 숫자에 포함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재외동포 중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잘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재외동포들에게 한국어를 더 많이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한국어를 사용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맞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에서)

이 부분도 덧붙여야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리말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나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말이다. 이처럼 우리말의 주인인 우리들이 우리말의 위상을 위해 해야 할 일, 우리들이 간과하기 쉬운 우리말 관련 이야기들도 풍성하게 읽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덧붙이는 글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조현용 (지은이) | 하우출판사 | 2013-08-08 | 7,000원

한국어 문화 교육 강의

조현용 지음,
하우출판사, 2013


#한국어 #우리말 교육 #우리말 #한국어 교육 #이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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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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