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대중·노무현 앞에 부끄럽지 않나

[게릴라칼럼] 대한민국에 다시 등장한 '십자가 밟기', 슬프다

등록 2013.09.10 15:56수정 2013.09.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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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내란음모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이 5일 밤 구속됐다. 앞으로 국정원의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해진 것은 2013년 대한민국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 다시 등장한 '십자가 밟기'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국정원 대선개입 청문회에서 "문재인을 찍었느냐"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의 다그침에 "십자가 밟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우문현답을 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한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쓰이지 않던 '십자가 밟기'라는 말이 다시 세상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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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을 싸잡아 종북으로 모는 새누리당의 이 같은 낙인찍기는 '이석기 사건'이 불거진 후 계속돼왔다. ⓒ 김지현


'십자가 밟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 것을 증명하는 방편으로 십자가를 밟고 가도록 강요한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와 일본 에도막부시대에  천주교 신자를 가리기 위해서도 사용됐다.

헌법 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기의 내면적 사상과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로 '침묵의 자유'라고 불린다. 직접적인 강제뿐 아니라, 충성 선서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상과 양심을 짐작하는 일도 금지된다.

그런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유신시대나 5공 군사정권 시절도 아닌 2013년 대한민국에서 이 십자가 밟기가 다시 등장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과 지식인은 철저하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진보당)을 지지하는지 않는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석기에 반대하지 않으면 모두 종복 세력으로 낙인찍기가 진행 중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지하로 숨어 들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석기 체포 반대 14, 기권 11, 무효 6… 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의원이 최소 31명"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정원, 이석기 발언 알고도 왜 100일간 침묵했나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던 날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국정원 녹취록에 나오는 총기발언 등에 대해 "일부 참가자의 개인적 농담 수준"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농담으로 총기 탈취를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농담으로 했는데 진담으로 들일 수도 있고, 거꾸로 진담으로 했는데 농담으로 들일 수도 있다. 문제의 5월 모임에서 그 발언이 진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부터, 있었다면 진담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다면 개인적 의견이었는지 집단적 결의였는지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녹취록이라는 텍스트만 보고 진담으로, 또 집단적 결의로 받아들여 내란음모의 결정적 증거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김재연 의원의 "모임 자체가 없었다"는 발언이나 이석기 의원의 "강연만 하고 갔다"는 발언 등 사실 관계 자체가 틀린 발언들이 의혹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명백한 실책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농담과 실제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정원 말대로 지하혁명조직이 총기 탈취와, 폭탄 준비를 결의했다면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흔한 비비탄총이나 밥솥폭탄 하나 안 만들고 놀았다는 것이 된다. 그런 혁명조직도 우습지만, 그런 혁명조직을 발견하고도 100일 동안 잡아들이지도 않고, 총 한자루, 밥솥폭탄 하나 못 찾아낸 국정원은 더 우스워지는 것 아닐까? 바야흐로 '농담내란죄'라는 죄목이 신설되야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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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에 이끌려 법원으로 향하는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이끌려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유성호


막걸리 보안법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대 농사짓는 시골 노인이 막걸리를 마시고 "남북 통일이 되려면 박근혜를 김정일에게 시집 보내면 된다…그렇게 되면 한민족이 공존공영할 것"이라고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살이를 했다. 그외에 여러사람이 술을 한잔 걸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갔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더 웃기는 일도 많다. 판자촌에 살던 사람이 자기집을 강제로 철거하러 온 철거반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말했다고 국보법 위반으로 입건되거나, "예비군 훈련이 지긋지긋하다... 수 틀리면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한 사람도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는 이런 막걸리보안법의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 지나간 옛일로 알았던 막걸리보안법의 시대가 2013년에 다시 재현됐다. 작년 자신의 트위터에 "제가 수령님 생각만 하면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만" 등 조롱 목적으로 북한 관련 글을 올리고,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 한 사람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1심에서 유죄,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현재 재판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은 막걸리보안법의 부활이자 농담내란죄 탄생을 알렸다. 현재 국정원이 공개한 내란음모의 증거는 녹취록이 거의 유일하다. 각종 언론에 밀입북과 북한 공작원접촉, 북한 공작금 수수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확인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내란음모만으로는 부족했든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에게 추가로 여적죄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적죄는 내란죄와 함께 형법상 가장 엄하게 처벌하는 외환죄 중 하나다.)

국정원에 매수된 프락치에 의해서 만들어진 녹취록을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100여명이 내란을 결의하고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일이 없는 것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동의?

그리고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국가보안법 밖에 없다. 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제7조고무찬양죄가 대상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번 이석기 의원의 체포영장에 찬성표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과 정의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정당들이다. 민주당이나 정의당은 내란음모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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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처리' 앞두고 의총 참석한 김한길-전병헌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가 나란히 참석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남소연


국가보안법 제7조(고무찬양)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UN 인권위, 국제사면위원회, 심지어 미 국무부까지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폐지 또는 개정을 권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정의당이 새누리당에 공조한 것을 두고 1980년대 5공군사정권 시절의 '민주정의당의 재창당' 또는 '민정당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연합하여 '새민주정의당'을 창당하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민주당이 배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있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민주당사에 두 전직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DJ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대통령 시절까지 평생 국보법 폐지를 신념으로 내세우며 "국보법은 이제 칼집에 집어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들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호언하는 정당이 내란죄와 국보법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치인 체포동의안에 찬성하고, 이들을 위헌 세력쯤으로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아무리 종북 낙인이 무섭지만, 자신들만 살겠다고 다른 정치인에게 십자가 밟기를 시키는 것은 민주와 정의라는 이름의 정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금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한명숙 전 총리를 정치적 사망선고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을 광장재판으로 매장하려 했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유포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이전 사건에서 피의사실을 유포한 자들이 '빨대'라고 한다면, 이 사건의 피의사실 유포는 '양수기(펌프)' 수준이다. 그런데 그 민주당이 반발은커녕 이를 사실로 단정하고 부화뇌동하고 있다.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모습이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죄 혐의는 치열한 법리논쟁과 더불어 진실게임을 통해 법정에서 밝혀질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십자가 밟기와 막걸리보안법이 부활하고,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로 회귀해버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목도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석기 #국정원 #내란죄 #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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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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