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센터 병원 뒷산에서 내려오며 찍은 모습저 건물의 9층 어느 창문 안에 아내가 누워 있다. 나올 때는 숨이 막혀 갑갑하다가 살아날 것처럼 벗어나지만, 막상 나와 있다 보면 무슨 일은 없을까? 어디 또 아프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예정보다 늘 일찍 들어가던 병동.
김재식
부부싸움, 그리고 깊은 터널그런 중에 휴일이 왔다. 많은 건강한 사람들에겐 갖가지 계획들로 설레는 날, 우리 가정도 예전에는 이 날이 참 행복했다. 온 가족이 늦잠도 자고 가끔은 장도 보면서 외식도 하고, 반가운 사람들이 오거나, 아니면 보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하는 즐거운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모처럼 잠시 주사들을 떼어내고, 3층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난 뒤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울음을 누가 볼까봐 휴일이라 사람이 뜸한 1층 '약 받는 곳'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다. 대상없는 분노가 몰려온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보며 침묵에 잠기는데 온갖 장면들이 대형광고판처럼 기억 속을 지나간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입원했던 첫날의 고단함도 떠오르고, 가슴 위쪽에 관을 삽입해서 혈장교환을 몇 시간씩 끙끙거리며 한 것도 수차례, 그러는 와중에도 들이 닥친 재발, 마음이 우울하니 눈에 들어오고 보이는 것도 모두 비관적이다. 이런 슬픈 마음이 차올라오니 서러움이 또 울컥 한다.
"세상은 색안경을 쓰고 보면 같은 피사체도 달라 보인다. 빨간색 안경은 온통 빨갛게, 파란색 안경은 온통 파란색으로! 슬픔의 안경은 남들은 모두 행복한데 우리만 슬픈 것처럼 보이게 한다."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하나? 혼자 속으로 저울질을 해대는데 저기서 어떤 사복 입은 분이 우리에게로 곧장 오고 있었다. '이곳은 오늘 쉬는 약제 창구라 올 사람이 없는데...' 하는 사이 가까이 오셨다. 우리 담당 의사선생님이셨다. 아마도 지나다 구석진 자리에서 울고 있는 우리 부부가 눈에 보여 다가오셨나 보다.
"안녕하세요, 오늘 쉬시는 날인데 어떻게..."엉겁결에 인사를 했다. 황급히 눈물을 닦고 말없이 있는데 이런 저런 증상을 물어보신다. 묻는 분이나 대답하는 우리나 의례적인 빤한 대답을 하고 다시 침묵, 그러다 결국은 털어놓았다.
"솔직히 많이 힘들어서 좀 울었네요. 창피하게...""괜찮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치료과정을 버티면, 분명히 좋은 회복의 날이 올 겁니다. 힘내세요."우리 부부를 위로해준 '날개없는 천사'병원을 열손가락이 넘도록 여러 곳 다녔고, 더 심한 상태일 때도 겪었지만, 의사선생님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담당선생님은 비보험 비싼 항암주사비에 막막할 때 신경과에 배당된 사회복지비로 메워주시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혈액검사비도 자주 임상연구용으로 처리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