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세월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백성들이어야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96) #25. 귀향 ③

등록 2013.12.09 10:42수정 2013.12.09 11:18
1
원고료로 응원
a

38도선 제2차세계대전의 전승국인 두 강대국 미소는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으로 갈랐다. 우리 겨레에게 원한의 38도선은 한국전쟁 뒤 또 다른 비극의 휴전선으로 바뀌었다(1951. 4. 3.). ⓒ NARA, 눈빛출판사


알찬 수확

2007. 3. 10. 04: 45.


마침내 제3차 한국전쟁 관련 기록물 수집 일을 모두 마무리하였다. 이번 3차 수집 결과물은 모두 546컷이다. 대부분 한국전쟁 사진들이지만, 미군이 인민군과 중국군에게 노획한 각종 문서 파일 73컷도 담았다. 이 자료들은 우리나라 사람, 특히 전후 세대들에게 지난  한국전쟁을 바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실을 전한다. 1960년 4·19 민주혁명은 한 장의 사진으로 잔뜩 성난 민심이 폭발했다. 1960년 3월 15일에 시행된 정부통령선거에서 당시 자유당 정권은 3인조 9인조 등 기상천외의 방법을 동원하여 대대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그러자 그날 밤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 도중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행방불명되었다.

그 뒤 27일 만에 김주열 학생은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주검으로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이 광경을 한 용기 있는 기자가 보도하여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곧 최루탄 박힌 김주열 학생의 사진은 백성들의 성난 가슴에 불을 지른 불씨로 마침내 4·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간밤에 나는 그동안 수고해 준 고동우 선배와 어린 시절 따랐던 김준기 아저씨와 함께 이별파티로 볼티모어 항 맥줏집에서 게 요리를 즐긴 뒤 자정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곧장 잠자리에 들었으나 눈이 말똥말똥했다. 그동안 무리한 작업과 여독이 겹쳤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은 비행기에서 자면 될 테지.'


나는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불을 켜고 노트북에 저장된 자료와 아카이브 용지에 연필로 요약 기록한 캡션을 일일이 대조하며 '한국전쟁 사진 설명'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일을 모두 마치자 새벽녘이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책 맨 뒤에 부칠 후기까지도 미리 썼다.

a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005. 12.). ⓒ 박도


'끝나지 않은 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먼동과 함께 북위 38선 일직선에서 울려 퍼진 야포의 포성과 탱크의 캐더필러소리로 시작한 한국전쟁은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구불구불한 새로운 원한의 휴전선에서 포성이 멎었다. 3년 남짓 지루하게 계속된 한국전쟁은 끝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나지 않은 전쟁' '잠시 쉬는 전쟁'으로 일단 그 막을 내렸다.

한국전쟁으로 빚어진 피해는 피아 150만 명의 전사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낳았고,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양산했다. 그리고 그 포성이 멈추자 한반도 전역은 초토화로 도시와 마을은 온통 잿더미였다. 그리고 반세기가 훌쩍 지나갔다. 그때 길거리를 헤매던 전쟁고아들이나 혹독한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들은 고령층이거나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이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전쟁을 체험한 일부에게만 가물가물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3차에 걸쳐 70여 일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자료실에서 마치 광맥을 찾는 탐사자로 연일 눈에 핏발을 세우며 문서 상자를 훑었다. … 이번 제3차 한국전쟁 기록물 검색 작업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기분 좋았던 장면은, 전란 가운데도 설날을 맞아 한복으로 예쁘게 설빔을 차려 입은 소녀들이 동네 마당에서 널뛰기놀이를 하는 장면이었다. 구김살 없는 그들의 표정이 어찌나 맑은지 전란을 겪는 소녀들의 모습 같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백성들이기에 전후 잿더미를 딛고 오늘의 번영을 이루어낸 듯하다. 새삼 우리 겨레의 강인한 저력을 확인케 하는 사진이었다. …

이번 제3차 방미는 시차부적응과 피로누적으로 여느 때보다 매우 힘들었지만 그런 가운데도  검색 중, 좋은 사진이나 문서를 발견하여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자료를 입수하는 순간은 월척을 낚은 강태공의 손맛보다 더 좋았다.

 -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지울 수 없는 이미지 3> 241~243쪽 발췌

후기조차도 다 마치자 시침이 4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날이 새면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뒤 오후 1시 20분 덜레스공항에서 이륙하는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이번 3차 작업에는 북한 측 자료도 찾아볼 수 있었고, 노퍽의 맥아더기념관 사진도 살펴볼 수 있었기에 1, 2차 작업 때보다 질적으로 훨씬 알찬 수확이었다. 특히 내셔널아카이브에서 찾은 한 장의 사진이 빌미가 되어 어린 시절에 철없이 '인민군' '괴뢰군'이라고 놀리면서 따랐던 김준기 아저씨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언젠가 나에게 앞으로 좋은 글감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더운 물로 몸을 닦은 뒤 침대에 쓰러졌다.

a

전란 중이지만 설빔을 차려입은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들이 마을 공터에서 민속놀이인 널뛰기를 하고 있다(1953. 2.). ⓒ NARA, 눈빛출판사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오전 10시 정각, 고동우는 약속대로 숙소 문을 두드렸다. 나는 끝까지 성의를 다해 주는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같이 일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다시 올 때도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럼요, 건강이 허용하는 한 돕지요."
"이번에 펴낼 한국전쟁 사진집은 <지울 수 없는 이미지  3>란 이름으로 발간할 것입니다."
"저도 이 일을 도운 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럼요, 고 선생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지요."
 "자, 그럼 체크아웃 하러 가시죠."

우리가 계산을 마치자 숙소 지배인은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See you again."

나도 그동안 익힌 서툰 영어로 답했다.

"See you."

숙소에서 덜레스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김준기였다.

"박 선생, 지금 어디야요?"
"지금 막 덜레스 공항으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내레 지금 뉴욕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이시요. 뉴욕 농문옥에 긴한 사정이 있어 공항에 가디 못해시오(못했어요). 안녕히 가시라요. 우리 지배인이 곧 공항으로 갈 거야요. 조그마한 선물 하나 보내니 꼭 받아가시라요."
"웬 선물까지? 아무튼 고맙습니다. 부디 해외에서 건강하십시오."

a

유엔군 피난 수송선(LST)에 오르고자 몰려든 피난민들(흥남, 1950. 12. 19.).. ⓒ NARA, 눈빛출판사


덜레스공항

우리가 덜레스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장에 이르자 용문옥 김영옥 지배인이 공항출국장 어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이거 줍디다."
"감사합니다. 아버님에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 전하겠습니다. 사실은 아버님이 벌써 뉴욕 용문옥에 가셨어야 할 건데 박 선생님 때문에 워싱턴에 오래 계셨다 아입니까. 박 선생님 덕분에 저도 아버님이랑 오래 지내 좋았습니다."
"그래요?"
"네, 그럼 잘 갑시데이. 워싱턴에 오시면 용문옥으로 또 오이소, 박 선배님!"
"감사합니다."
"지는 점심 때라 한창 바쁠 시간이기에 먼저 갑니데이."

영옥은 공항청사 체크인 카운터 앞까지 따라온 뒤 작별인사를 하고 먼저 떠났다.

"용문옥 김준기 회장은 아주 용의주도한 분이에요. 한국인으로 뉴욕과 워싱턴 한복판에서 아무나 성공 못하지요."
"아마도 인민군으로, 포로로, 국군으로, 38 따라지로, 남 다른 고생을 한 덕분이 아닐까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요즘 한국이 차츰 뜨고 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지난 세기에 남다른 수난의 세월을 겪은 때문일 것입니다. 그 수난의 세월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백성들이어야 다시 역사에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고동우는 체크인을 한 뒤 나에게 좌석티켓을 건넸다.

"저는 이제 곧장 탑승라운지로 가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그럼, 박 선생! 안녕히 가세요."
"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나는 그를 가볍게 포옹한 뒤 탑승라운지로 향했다. 고동우는 그때까지 출국장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덜레스공항 탑승구에서 인천행 여객기에 올랐다. 기내 좌석에 앉자 오랜 여독 탓인지 곧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a

마을의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미군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기다리고 있다. ⓒ NARA, 눈빛출판사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아무에게도 악을 갚지 말라"

AD

AD

AD

인기기사

  1. 1 동네 뒷산 올랐다가 "심봤다" 외친 사연
  2. 2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3. 3 1심 "김성태는 CEO, 신빙성 인정된다"... 이화영 '대북송금' 유죄
  4. 4 채 상병 대대장 "죗값 치르지 않고 세상 등지려... 죄송"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