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의 표지
윤근혁
이날 토론회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제자로는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완익 변호사(전 친일재산조사위 사무처장)·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나섰다. 토론자로는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 그리고 내가 참여했다. 이들 모두 역사청산 문제에 대한 법률 및 역사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이재승 교수는 '홀로코스트 부인과 역사왜곡'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역사왜곡은 특이집단의 이상행동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병증으로 다뤄야 한다"며 "정치적 증오와 내면적으로 깊이 연결된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폈다. '문제의 발언'을 두둔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증오적 표현'이 '홀로코스트(제노사이드) 부인'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특정한 역사관의 주장자를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끊임없는 표현의 문화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발제 말미에 홍 의원이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한 몇 가지 소견을 밝혔는데 유익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우선 이 법률을 위반한 자의 전형(典型)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또 그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는 자칫 상징적인 입법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법안 명칭과 달리 침략전쟁이나 단체 처벌 방식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점, 재일 친일인사인 오선화씨 등 외국인에 대한 처벌문제, 형법상 명예훼손과의 차별성 그리고 친일인사 기념물 조성행위 등도 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완익 변호사는 제헌헌법 부칙 101조에 근거해 반민법이 제정됐고, 또 2005·2006년에 각각 제정된 친일규명특별법과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이 각각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사례를 들어 법안 제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럼에도 장 변호사 역시 명예훼손의 경우 현행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며 '역사적 날조행위'가 명확하지 않은 점 그리고 학문이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위헌적 요소가 크다며 "법 제정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폈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한용 실장은 "독재자를 국부나 민족지도자로 미화하고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우고 나아가 교과서와 같은 공적 자료에 이들을 미화해서 기술한다면 우리 범죄의 망각·은폐를 넘어 범죄의 재구성에 해당한다"며 "한국사회가 성취하고 합의한 공공적 가치관과 성과마저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박 실장은 또 "과거사 청산은 우리사회의 갈등이나 자학적 요소라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로 나아가는 자랑스런 역사"라고 평가하고는 보수진영 일각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를 '역사쿠데타'로 규정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박경신 교수는 신중론에 무게를 뒀다. 박 교수는 "일본침략을 정당화, 부인 또는 사소화하는 발언을 처벌한다면 북한 남침을 정당화, 부인, 사소화 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규제를 제시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반민족 '행위'의 처벌과 반민족 '발언'의 처벌은 다르다"고 지적하고는 법안을 추진할 경우 '행위'에 대한 처벌로 좁혀 '학살피해자에 대한 차별 및 혐오금지법'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일제 때 제정된 모욕죄·명예훼손죄·진실명예훼손죄·협박죄·업무방해죄 등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폐지를 촉구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나는 "'역사적 관점' 운운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통념과 상식 그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까지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므로 국민적 합의의 틀 속에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폈다. 나는 친일작가 김완섭씨가 독립운동가들을 폄훼한 행위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벌금 750만 원)을 받은 사례를 들어 '표현의 자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적극 입법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법안 제정, 관용과 표현의 자유 두고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