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추천서? 교사는 분노한다

[교사의 주장] 대필과 표절 원인은 입학사정관제인데...

등록 2013.09.11 19:19수정 2013.09.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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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자마자 '추가된' 업무가 있다. 수시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이 쓴 자기소개서(아래 자소서)를 교열해주고, 드물게 추천서를 써주는 일이다. 3학년 담임교사도 아닌데다 2학기 수업 준비로 나름 분주한 때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더욱 바빠졌다.

방학 직후 추가된 업무, 고3 학생들의 추천서 쓰기

 2010년, 수능을 100일 앞둔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수능을 100일 앞둔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학 직후 기껏해야 하루 한두 개에 불과하던 것이 수시모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하루 평균 열개가 훌쩍 넘는다. 아예 애교 섞인 메모지와 함께 자소서 출력물을 책상 위에 놓고 가는 아이들도 있다. 귀찮고 힘들긴 해도 3년 동안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또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엿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그들이 며칠 동안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을 자소서를 읽다보면 더러 아쉬운 점이 있다. 학교 안팎에서 체험한 다양한 활동을 글로 옮기는 데 무척 서툴다는 것이다. 막상 마치 면접관인양 마주 앉아 적힌 내용을 물어보면 느끼고 깨달은 바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답하는데, 정작 자소서를 읽어서는 그런 느낌이 나질 않는다.

제한된 글자 수에 연연해 중언부언하거나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사여구를 끌어 쓰려다 보니 되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고3 수업이 문제풀이 위주라 글 쓰는 훈련이 거의 돼 있지 않은 데다 익숙하지 않은 '문어체'로 바꾸려다보니 생긴 부작용으로 보인다. 하긴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틀린 경우가 적지 않아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자소서 한 편을 꼼꼼하게 챙겨 읽고 코멘트를 달아 조언을 하자면 족히 30분은 넘게 걸린다. 대개 점심시간에 찾아오다보니 밥 먹는 시간마저 빼앗기기 일쑤다. 그나마 자소서는 써온 글에 첨삭하는 것 정도니 시간을 빼앗길지언정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다. 문제는 다짜고짜 부탁해오는 추천서 쓰기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교사 추천서는 자소서와 함께 필수적인 제출 서류다. 대학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얼마나 반영하든 수험생 입장에서는 학생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수시모집과 입학사정관제 전형 비율이 시나브로 늘어나면서, 2학기 고3 담임교사의 가장 고된 업무가 바로 '추천서 쓰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국어 전공할 걸..." 괜한 소리가 아니다

추천서 쓸 게 두려워 학년 초 고3 담임교사 맡기 꺼려진다는 경우도 여럿 봤다. 물론, 추천서를 반드시 담임교사가 써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동료 교사조차도 응당 추천서는 담임교사의 몫이라 여긴다.


명색이 대학에 제자를 뽑아달라고 당부하는 글인데, 추천서를 대충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1, 2학년 때 학생부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마치 경찰 수사하듯 다양한 '소스'를 충분히 챙겨야 한다.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했는지, 상담 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심지어 수업 시간에 어떤 버릇이 있는지조차 다 추천서의 글감이 된다.

'소스'가 많다고 제대로 된 추천서가 나오는 건 아니다. 아이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도록 글로 잘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이 자소서를 쓰는데 쓰다 고치기를 반복하듯, 담임교사도 부탁 받은 추천서 한 장 쓰느라 애먼 컴퓨터 자판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한 동료 교사는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에서 국어를 전공할 걸 그랬다'며 추천서 쓰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로 일기를 쓴 이후 그 어떤 글도 써 본 적이 없다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장애물은 또 있다. 나름 아이의 특성을 정확히 기술하려 해도 '소신껏' 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심상 도저히 추천할 수 없는 '공부만 잘 하는' 아이도 있고, 남다른 경험이나 교내외 활동이 전무하여 뭘 써주고 싶어도 써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인 관점에서 적어주자니 표현이 두루뭉술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과 교육부의 준비 부족으로 생긴 부작용, 왜 교사가 뒤집어쓰나

고3 교실의 모습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자마자 '추가된' 업무가 있다. 수시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교열해주고, 드물게 추천서를 써주는 일이다.
고3 교실의 모습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자마자 '추가된' 업무가 있다. 수시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교열해주고, 드물게 추천서를 써주는 일이다.서부원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허점을 눈치 챈 몇몇 '노련한' 아이들은 추천서에 기입할 요구 사항을 적어서 담임교사를 찾아온다. 교사 입장에서야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자를 원하는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스스로 무뎌지는 것이다.

정상적인 추천서라면 객관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되 교사의 주관적인 글이어야 한다. 그런데, '소신'을 피력했다가 자칫 제자에게 불이익이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제출하기 전에 아이에게 되레 추천서를 검열 받는 황당한 일마저 벌어진다. 하긴 교사 추천서를 아이와 학부모가 작성해 어투만 살짝 바꿔 제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하니 그 정도쯤은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준비하는 대학과 교육부가 모를 리 없다. 그들이 자소서와 함께 굳이 교사 추천서를 요구하는 까닭은 결국 아이들의 잠재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취지야 백번 공감하더라도 학벌구조 등 왜곡된 교육 현실 속에서 적용이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는 시행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곧, 추천서의 부실 문제는 예상된 제도상 '허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와중에 지난 달 말, KBS 뉴스를 통해 '못 믿을 교사 추천서'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방송됐다. 기사에 따르면, 대필과 표절로 점철된 믿지 못할 추천서들이 대학 측에 제공되고 있다며, 그로 인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고3 담임교사들을 마치 입시 비리에 연루된 '범죄자'인양 내몬 것이다.

"이제 누가 고3 담임을 맡으려 하겠나. 학생부도, 추천서도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차라리 이참에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아예 폐지하는 게 어떤가? 대학과 교육부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인데, 그에 대한 책임은 전부 수험생들과 고3 담임교사더러 지라는 것 같아 분노를 느낀다."

뉴스를 접한 현직 고3 담임교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모든 게 추천서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즈음 전국 대부분의 고3 교실은 파행적으로 운영된다. 교실은 자소서와 추천서가 필요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경우로 양분된다. 기한 내에 많게는 20여개의 추천서를 작성해야 하는 고3 담임교사에게도 교과 수업은 사치다. '소스'를 얻기 위한 상담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때다. 그야말로 2학기 고3 교실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제2 외국어 등 일찌감치 1학기에 종강된 '기타 과목'들은 말할 것도 없고, EBS 수능 교재로 문제풀이를 하는 일부 과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업은 자습시간으로 운영된다. 고3 수험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개학날 치르고, 불과 몇 주 뒤 기말고사가 이어진다. 수능 준비에 '올인'하도록 하는 나름의 배려인데, 수시모집이 시작되는 9월 초면 사실상 고3 학사일정은 끝난다.

입학사정관제 전형 문제점, 보완 먼저 하시라

입학사정관제 등 다양한 입시 전형 방식은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6학기가 아닌, 5학기 체제로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와 함께 학교교육을 입시 전형에 철저히 종속시켜버렸다. 예컨대, 학교 내에 각종 경시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영어논술반, 수리탐구반 등 이른바 '스펙 쌓기'형 동아리만 넘쳐난다. 풍물반이나 댄스반 등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자꾸만 우리 교육 현실을 빗댄 것처럼 들린다. 백년하청이라며 손 놓을 게 아니라면, 기본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과 교육부가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취지만 되뇌며 일부 수험생과 교사들의 일탈 행위를 꾸짖을 게 아니라, 학교 현실을 감안한 제도적 보완책을 우선 고민해야 한다.

누구 말마따나 '뱁새가 황새를 따라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된 미국을 마구잡이로 따라하려다 보니, 제반 '환경'은 무시하고 '제도'만 베끼려다 생긴 폐해다. 일례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40명이다. 별도의 추천서는 고사하고, 학생부의 행동발달상황이나 교과학습발달사항 따위를 기록하는 것조차 버겁다.

이렇게 하소연하며 교원을 확충해달라고 소리를 높이면, 교육부나 교육청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 수가 급감하는 추세이니 얼마 안 있어 OECD 국가 평균치에 근접할 것이라고 답변한다. 십수 년 전 초임 시절 때와 직접 비교해보니 학급 당 학생 수 변화가 있긴 했다. 달랑 세 명. 농어촌 학교의 경우 격감했을지 모르지만, 도시에서는 별반 변화가 없었던 거다.

교사 추천서의 대필과 표절 문제가 기사화하면서 그렇잖아도 질타 받는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학교교육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담고자 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최소한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문제점에 대한 심층 분석이 뒤따라야 했다. 몇몇 고3 담임교사들 손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 #교사 추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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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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