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풀막진 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껄떡이 고개입니다.
임윤수
다시금 절을 찾아가기 위해 산길을 걷다보니 중학생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싫어 그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과목을 어깃장을 놓겠다는 심보로 일부러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봤자 나만 손해 보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걸 알고는 그 과목을 다시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60년이 넘게 절엘 다니시던 어머니도 아주 가끔은 절에서 속이 상하시는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보고 다니지 스님보고 절에 가냐'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산바람에 땀 식히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옹달샘 물에 갈증 축여가며 걸었습니다. 파란 낙엽을 주워 문질러 보고, 도토리까지 주우며 40여 분을 걸었습니다. 가풀막지게 놓인 나무 계단을 디디고 껄떡이 고개도 올라섰습니다. 이제 혼자만 걸어야하는 좁은 길로 접어듭니다. 좁기만 한 게 아니라 왼쪽은 80도쯤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 낭떠러지 길입니다.
오욕칠정을 넘나들며 희희낙락거리던 마음 경건히 추스르고, 너털거리며 걷던 발걸음 단정하게 챙겨 걸으라는 듯 안전 줄까지 늘여져 있는 조심스런 외길입니다. 타박타박,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조신한 발걸음으로 내딛다 보니 어느새 대전과 충북(옥천)으로 나뉘는 행정구역 표시 능선을 넘어섭니다.
이쪽 길이 저쪽 길과 맞닿아 있고,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 뿌리와 줄기에서 맞닿아 있으련만 이쪽은 대전 저쪽은 충북으로 나뉘고 이건 대전 나무고, 저건 충북 나무로 분류될 거니 '길도 길이 아니고, 나무도 나무가 아닌' 불이가 사바세계에선 엄연히 존재한 다는 걸 확인하게 하는 경계의 순간입니다.
사바의 경계를 넘어 들어가는 구절사능선을 넘어 갸름하게 비탈진 산길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저만큼에 구절사 일주문이 보입니다. 두 사람 정도가 겨우 함께 걸을 수 있는 산길을 한껏 차지 해 기둥을 세우고, 황토색 기와를 이은 일주문에는 '식장산 구절사'라고 써진 한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인연이 닿는 대로 불사한 일주문이겠지만 절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고, 절 살림의 규모를 가늠하게 할 정도로 소박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몇 걸음 더 걸어 들어가니 동여맸던 안대를 푼 것처럼 눈앞으로 탁 터진 전망이 환하게 펼쳐집니다. 기세등등하게 추녀를 치켜 올리고 있는 고택 처마 밑에 들어선 제비집처럼 수십 길 낭떠러지 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 구절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