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상사화영광의 어느 절에 핀 상사화
최영순
그녀를 안 지 7년이 다되어 가는 이즈음에 그녀는 비로소 자살한 남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들을 내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여행을 함께 가주기를 요청했다.
그래서 주말에 그녀와 함께 길을 떠났다. 길이 막힐까봐 새벽 2시에 떠나 쉬엄쉬엄... 때로는 밤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아 깜박등을 켜기도 했다. 우린 다섯시 반에 전나무 숲에 도착했다. 차안에서 따스한 모포를 덮고 잠깐 눈을 붙이고 전나무 숲길을 걸었다. 스님들이 부지런히 비질을 한다. 비질한 흙결을 따라 걷자 뭔가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뜨기 전, 한결 가지런해진 숲길과 오솔길을 몇 번 왕복했다. 그 길에서 본 잔잔히 미소짓는 산꽃들로인해 웃을 수 있었다. 말없는 힐링을 자연의 곳곳에서 느꼈다.
물에 비치는 다리와 등불의 그림자에서, 맑으면 있는 그대로의 삶도 곱다는 것을, 그리고 어두운 습기가 가득한 구름을 헤치고 바다와 함께 하기에 더욱 장관스러웠던 동해의 일출을 보면서 참 잘 떠나왔다고 다독였다.
중년의 싱글녀들의 삶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중년의 싱글들 뿐 아니라 싱글노년들도 점점 많아진다. 모두 저마다 다른 색깔의 상처를 안고 나름대로 열심히 걸어간다. 사무치도록 외로운 길도 있고 끔찍한 폭력의 늪을 건너온 사람들과 수차례의 암수술을 받으며 투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한 번씩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아무리 여름 수박과 가을 홍시가 달고 맛있다고 해도 불시에 엄습하는 외로움의 무게는 당사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어쩌면 걸어온 길보다 걸어야 할 길이 더 외롭고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보톡스의 힘을 빌려서라도 활기를 찾고 싶어하고, 또 어떤 이는 죽은 남편의 흔적도 애써 지우고, 또는 독거노인의 목욕봉사 등 나름대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애쓰는 걸 거다.
자고나면 잎들이 하나 둘 씩 곱게 물들었다가 소리 없이 떨어진다. 물들어 가는 잎처럼 우리의 삶의 색깔도 그렇게 물들었다가 어느 한 순간에 떨어질 것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일 수록 소리없이 떨어진다. 특히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할때면.
영광에 다녀왔다는 15년을 한결같이 연구실에 나오는 제자가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잎이 떨어져야 꽃이 피고 꽃이 떨어져야 잎이 핀다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사화사진이다. 듬성 듬성 한 개씩 핀 상사화는 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무리진 것은 처음이고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외로운 상사화도 이렇게 함께 피니 장관이라 사이좋은 동사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혼자 사는 싱글들도 비록 상사화처럼 사무친 그리움들을 각각 안고 산다 하더라도 더불어 여럿이 함께 하며 생의 강을 간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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