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앞둔 싱글녀들의 풍경

등록 2013.09.27 18:15수정 2013.09.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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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금강산건봉사 경내의 개개인마다 기증하여 피우는가을장미
장미금강산건봉사 경내의 개개인마다 기증하여 피우는가을장미이영미

명절이 지나고 이제 9월도 며칠 안 남았다. 외국의 친지를 방문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 그녀가 엊그제 청주에 들렀다.  나와 나이차가 좀 있는 분인데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간 것 같이 젊어보인다. 그래서 전에 보다 활기가 있고 예뻐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너무 좋아한다.


그러면서 몇 만 원 하는 보톡스 몇 대와 몇 십만원 하는 팔자주름 없애는 무언가를 받았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한 술 더 떠, 동안인 내 얼굴도 손보아야 할 곳이 생겼다며 보톡스와 필러를 권했다.

나는 생각도 안 해봤다며 웃어 넘겼지만, 연예인과 일부계층만 하는 줄 알았던 시술이 이제는 미용개념으로 서민층에도 자리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안 좋다는 느낌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강물 위를 흘러가는 부초들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보톡스 한 대 안 맞고 있는 그대로 노년을 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안 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한 말로 인해 신경 쓰면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조대 거북이 모양으로 광개토왕릉이라고 해당지자체가 말하는 하조대
하조대거북이 모양으로 광개토왕릉이라고 해당지자체가 말하는 하조대이영미

낙산일출 작은 생명들이 큰 평화를 얻기를 ..
낙산일출작은 생명들이 큰 평화를 얻기를 ..이영미

명절 즈음해서는 평소에 내게 지난 추억의 이야기를 잘 하는 분이 찾아 와서 참 반듯하게 생긴 멋진 커플 한 쌍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뭔가 마음에 작심을 한 모양이었는데 실천하기에는 망설임이 있어서 내 응원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 사진들 좀보세요!"
"우와! 넘 잘생긴 선남선녀네요."
"이 사진들 이제 버리려고요."
"그러세요. 버리는 게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거예요. 홀홀히!"


20년 전에 사별했던 그녀와 서로 알고 지낸 지, 3년 후에야 나는 그녀가 싱글이 된 원인이 남편의 자살 때문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자살 이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홀했던 그 무엇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 자책과 함께 알코올이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러다 우연히 간 봉사 현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뿌리를 내렸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와 만났다. 술을 잘 먹는 그녀와 술을 먹지 못하는 나이지만 중년의 싱글만이 느끼고 자연과 더불어 힐링하고자 하는 공통분모로 인해 친해졌다.

떠나는 사람들은 전광석화 같은 본인에게 찾아온 우울함, 복잡함, 또는 생에 대한 홀홀함 등을 이유로 세상과 안녕을 고하지만, 그 가족들은 오래오래 그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 더불어 가슴에는 큰 돌멩이를 안고 살아야한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을 적나라하게 내보내거나 아는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자살예방가이드 교육참석을 강조할 때 숨쉬기 힘들다고, 악몽에 잠을 거의 못 잔다고 하였다. 나는 자살예방교육이 있을 때 구체적으로 자살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불참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불참함으로써 이상하게 여길 사람들의 눈조차 두려워했다.

전나무숲길 스님들이 쓸고간 빗결이 살아있는 숲길
전나무숲길스님들이 쓸고간 빗결이 살아있는 숲길이영미

영광의 상사화 영광의 어느 절에 핀 상사화
영광의 상사화영광의 어느 절에 핀 상사화최영순

그녀를 안 지 7년이 다되어 가는 이즈음에 그녀는 비로소 자살한 남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진들을 내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여행을 함께 가주기를 요청했다.

그래서 주말에 그녀와 함께 길을 떠났다. 길이 막힐까봐 새벽 2시에 떠나 쉬엄쉬엄... 때로는 밤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아 깜박등을 켜기도 했다. 우린 다섯시 반에 전나무 숲에 도착했다. 차안에서 따스한 모포를 덮고 잠깐 눈을 붙이고 전나무 숲길을 걸었다. 스님들이 부지런히 비질을 한다. 비질한 흙결을 따라 걷자 뭔가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뜨기 전, 한결 가지런해진  숲길과 오솔길을 몇 번 왕복했다. 그 길에서 본 잔잔히 미소짓는 산꽃들로인해 웃을 수 있었다. 말없는 힐링을 자연의 곳곳에서 느꼈다.

물에 비치는 다리와 등불의 그림자에서, 맑으면 있는 그대로의 삶도 곱다는 것을, 그리고 어두운 습기가 가득한 구름을 헤치고 바다와 함께 하기에 더욱 장관스러웠던 동해의 일출을 보면서 참 잘 떠나왔다고 다독였다.

중년의 싱글녀들의 삶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중년의 싱글들 뿐 아니라 싱글노년들도 점점 많아진다. 모두 저마다 다른 색깔의 상처를 안고 나름대로 열심히 걸어간다. 사무치도록 외로운 길도 있고 끔찍한 폭력의 늪을 건너온 사람들과 수차례의 암수술을 받으며 투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한 번씩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아무리 여름 수박과 가을 홍시가 달고 맛있다고 해도 불시에 엄습하는 외로움의 무게는 당사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어쩌면 걸어온 길보다 걸어야 할 길이 더 외롭고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보톡스의 힘을 빌려서라도 활기를 찾고 싶어하고, 또 어떤 이는 죽은 남편의 흔적도 애써 지우고, 또는 독거노인의 목욕봉사 등 나름대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애쓰는 걸 거다.

자고나면 잎들이 하나 둘 씩 곱게 물들었다가 소리 없이 떨어진다. 물들어 가는 잎처럼 우리의 삶의 색깔도 그렇게 물들었다가 어느 한 순간에 떨어질 것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일 수록 소리없이 떨어진다. 특히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할때면.   

영광에 다녀왔다는 15년을 한결같이 연구실에 나오는 제자가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잎이 떨어져야 꽃이 피고 꽃이 떨어져야 잎이 핀다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사화사진이다. 듬성 듬성 한 개씩 핀 상사화는 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무리진 것은 처음이고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외로운 상사화도 이렇게 함께 피니 장관이라 사이좋은 동사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혼자 사는 싱글들도 비록 상사화처럼 사무친 그리움들을 각각 안고 산다 하더라도 더불어 여럿이 함께 하며 생의 강을 간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중년의 싱글녀 #아름다운 노년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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