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정지혜
사랑은 무엇입니까?연극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이다. 1997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았고, 전 세계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연극은 2004년 영국의 영화감독인 마이크 니콜스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작품은 스트리퍼 '앨리스'와 부고 전문 기자 '댄', 사진작가 '안나', 피부과 의사 '래리'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앨리스'와 '댄'은 우연한 사고로 서로를 마주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댄'은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앨리스'를 두고 사진작가 '안나'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의 설렘을 느낀다. '안나'와 '래리'는 '댄'의 사소한 장난에 의해 만나게 돼 결혼에 이른다. 멀어지는 '안나'에 대한 '댄'의 집착은 더욱 강해지고, '댄'에 대한 '앨리스'의 집착도 격렬해진다.
네 남녀의 엇갈린 관계와 열망은 사랑의 본질을 낱낱이 벗겨 내고 까뒤집어 놓는다. 사랑의 속성들은 무대 곳곳에서 비죽 튀어나온다. 이들은 상대에게 끝없이 '진실'을 요구한다. '그 사람하고 잤어?', '그 사람 사랑해?' 그에 대한 대답은 뻔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확인'은 사랑의 속성 중 하나다. 이를 테면, '자기야, 나 사랑해?'라는 질문처럼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무하려는 것이다. 극중 인물들 역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이러한 일이 있었지만 우린 여전히 사랑하잖아'라는 식이다. 이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확인된 진실을 부정하려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던진 진실의 조각들은 결국 사실이라는 날카로운 파편으로 되돌아온다. 작품은 사랑에 있어 진실만이 능사가 아님을 은연중에 피력하고 있다.
연극 <클로저>의 대사는 바람에 뒤채이는 가을 낙엽처럼 쓸쓸하게 허공을 맴돈다. 말들은 낙엽이 스스로 원하는 위치에 추락할 수 없듯 상대의 진심에 가 닿지 못한다. '앨리스'와 '댄'은 이별하는 날 이러한 이야기를 나눈다. '날 사랑은 했던 거고?', '언제나 널 사랑해.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싫어', '나보다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알아', '근데 왜 사랑만 가지곤 안 되는 거야?' '앨리스'의 물음은 사랑에 눈먼 '댄'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언젠가 그의 가슴에 착지할 날을 기다리며 부유할 뿐이다.
'래리'와 '안나'도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각각 '앨리스'와 '댄'과의 관계를 서로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숨이 턱턱 막힌다. 감정에 복받쳐 정돈되지 못한 말들은 서로에게 비수를 내리꽂는다. 진심은 되물음과 억지 속에서 사장된다. 대사는 사랑이 어긋나는 순간들을 섬세하고 포악하게 포착하고,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한다. 작가 패트릭 마버는 그 주고받는 대사 속에서 사랑이 걸친 아름다운 포장지를 거칠게 끌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