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의 굴욕... 동양증권 CMA 탈출 러시

[현장] 동양그룹 위기에 투자자들 몰려... 금감원 "고객자산 안전"

등록 2013.09.24 16:41수정 2013.09.2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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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 영업부는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설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24일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 영업부는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설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김시연

저축은행 사태 데자뷰일까. 24일 오전 서울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 영업부는 아침부터 투자자 수십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교적 한산한 주변 은행 본점들과는 딴판이었다. 대부분 모기업인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 소식에 놀라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에 투자한 자산을 예금자 보호가 되는 예탁금이나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기려는 이들이었다.

딸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나왔다는 60대 여성부터 관련 뉴스를 보고 가슴이 뛰어 일이 손에 안 잡혀 나왔다는 40대 여성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서 20~30대 젊은 직장인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 대기인 수가 100명을 넘어서자 급기야 지점장까지 객장에 나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우린 저축은행과 달라"... "예금자보호도 안 되는데"

"500만 원 찾아가실 거 5000만 원 찾아가세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저축은행은 예금 받아서 대출한 게 잘못된 거지만 우린 한국예탁결제원에 예탁한 돈을 찾아오기만 하면 돼요. 한꺼번에 오셔서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저축은행 예금이나 증권사 예탁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천만 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지만 동양증권 CMA 상품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그룹 계열사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투자자들의 불신은 컸다. 그동안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된 5대 계열사 CP와 회사채 규모는 1조 5천억 원대, 투자자도 4만7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자보호가 안 돼도 동양증권은 무너지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동양(계열사) 채권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CP나 회사채까지 안전하다는 말에 한 투자자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CP는 만기 전에 해지하면 손실이 큰 데다 자칫 발행 기업이 부도가 나면 원금까지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이 곧 동양그룹에서 자금 확보 대책을 내놓을 테니 기다려보라고 진정시켰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때 '제2의 월급통장' 명성... '예금자 보호' 중단에 인기 시들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 여파로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동양증권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24일 오전 서울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 여파로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동양증권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24일 오전 서울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김시연

과거 CMA는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은행 정기적금 못지않은 높은 금리 탓에 '제2의 월급통장'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종금형 CMA의 경우 다른 투자 상품과 달리 최대 5000만  원까지 예금자 보호가 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 시초격인 동양종합금융(현 동양증권) CMA는 한때 잔고가 10조 원에 달했지만 연 3~4%대 금리가 2%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2011년 종금업 인가가 끝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하지만 종금형 대신 예금자 보호가 안 되는 RP(환매조건부채권)형이나 MMF(머니마켓펀드)형 등으로 갈아타면서까지 CMA 계좌를 유지한 투자자도 수십 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증권사 직원 권유로 수익성이 높은 CP나 채권 투자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들에게 최근 모기업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마침 이번 주 들어 금융감독원에서 동양증권 고객자산보호 점검에 나선 데다 '형제그룹'인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 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더 증폭됐다.

급기야 금감원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동양증권 등에 예치된 고객 자산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김건섭 금감원 부원장은 이날 "고객이 CMA 등을 통해 투자한 주식·채권과 예탁금은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증권금융에 각각 예탁·예치돼 있고 예탁 의무가 없는 ELS(주식연계증권)·DLS(파생결합증권)도 국공채·예금 등 안전자산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양증권이 모기업 자금줄 역할을 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만 엄격히 금지돼 있을 뿐 증권·보험·카드업에는 대기업들이 자유롭게 진출하고 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금융 산업이 모기업의 재정 성과에 좌지우지되는 건 큰 문제"라면서 "모기업 위험이 금융계열사에 전이되지 않도록 금산분리 원칙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 대표는 "한때 CMA를 많이 권했지만 펀드나 채권 투자 등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고 예금자 보호도 안 돼 문제 소지가 있다"면서 "지금은 CMA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양증권 #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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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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