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과 볼펜, 참 좋은 궁합입니다

아들 연필 깎으니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등록 2013.09.29 15:31수정 2013.09.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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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필 몽당연필이 볼펜대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 황주찬


연필을 깎습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잘 다듬어진 연필을 모나미 볼펜대에 끼웠습니다. 멋진 연필이 탄생했습니다. 칼로 연필 깎는 일도 새삼스럽고 볼펜대에 연필 끼워보기도 새삼스럽습니다. 둘째가 쓰레기통에 버린 연필인데 제가 멋지게 변신시켰습니다.


아들이 화려하게 변한 연필을 신기한듯 만져봅니다. 그리고 한마디 합니다.

"아빠 연필 한 자루 새로 생긴 것 같아요."

연필 한 자루가 탄생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 23일,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둘째가 연필 한 자루 달라며 제게 달려옵니다. 연필심이 부러졌다며 더 이상 못 쓰겠답니다.

집에 새 연필은 충분히 있습니다. 언제든 아들이 연필 달라고 하면 주면 됩니다. 하지만 둘째가 버린 연필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져 둘째가 버린 연필을 주워들었습니다. 둘째 말처럼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짧더군요. '샤파'라는 연필 깎는 기계도 붙잡지 못합니다.

샤파 '샤파'라는 연필 깎는 기계입니다. ⓒ 황주찬


연필 잘 다듬어진 연필들이 필통에 가지런히 누워 있습니다. 칼로 잘라낸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칼로 다듬은 연필은 나름대로 정감이 갑니다. ⓒ 황주찬


초등학교 시절 연필 한 자루,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당연히 둘째는 짧은 연필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연필을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은 참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소풍가서 보물찾기 하면 상으로 받았고 아버지가 먼 길 다녀와서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귀한 연필을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다가 몽당연필이 되면 작은 몸뚱이를 모나미 흰색 볼펜대에 끼워 악착같이 다시 쓰곤 했습니다. 소중한 기억이 떠올라 둘째에게 몽당연필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방법을 대충 설명했습니다. 반응이 시큰둥하더군요. 입으로만 떠드니 이해가 안 되나 봅니다.

하여, 몽당연필이 어떻게 변신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줬죠. 먼저, 두 가지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수명 다한 볼펜과 커터 칼입니다. 다 쓴 볼펜 한 자루 찾기,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몽당연필 부활시키려고 멀쩡한 볼펜 망가뜨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 되니 눈 크게 뜨고 찾았습니다.

섬세함 연필 꽁무니 자를 때 기술이 필요합니다. ⓒ 황주찬


준비물 수명 다한 볼펜과 커터 칼입니다. ⓒ 황주찬


연필 꽁무니 깎기, 옛 실력 녹슬지 않았네요

결국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몽당연필과 어울리는 볼펜 한 자루를 기어이 찾아냈습니다. 다음으로 몽당연필 꽁무니를 조금 도려내야 합니다. 연필 꽁무니 자를 때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순간, 매우 중요합니다. 자칫 연필 꽁무니를 너무 많이 깎아내서 볼펜대에 들어간 연필이 헐거워지면 잇몸에 붙은 이가 흔들리듯 연필이 흔들리게 됩니다.

당연히 글씨도 엉망이 되죠. 때문에 연필 꽁무니는 눈대중으로 적당히(?) 도려내야 합니다. 제가 연필 끝을 잘라내는 동안 둘째는 잔뜩 의심의 눈초리 날리더군요. 여전히 미덥지 못한 게지요. 둘째 눈을 의식하느라 특별히 신경써가며 커터 칼로 연필 꽁무니를 깎았습니다. 옛 실력, 녹슬지 않았더군요.

잠시 칼질 했더니 몽당연필 꽁무니가 잘 다듬어졌습니다. 연필 끝을 후후 불어낸 다음, 볼펜대에 끼워 넣었습니다. 다행히 서로 잘 맞물리더군요. 그제야 매섭게 바라보던 둘째도 눈에 힘을 풉니다. 몽당연필이 볼펜대 안으로 쏙들어가 흔들림이 없자 신기하다는 표정입니다.

글씨 둘째가 화려하게 변신한 몽당연필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공책에 몇 글자 써내려갑니다. ⓒ 황주찬


아끼는 마음... 더 예쁜 모습은 나누는 마음

의기양양하게 아들 손에 연필을 건넸죠. 둘째가 화려하게 변신한 몽당연필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공책에 몇 글자 써내려갑니다. 이윽고 저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보냅니다. 연필 한 자루 새로 생긴 기분이라며 기뻐합니다. 그 소리 듣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요즘은 모든 게 풍족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물건을 귀한 줄 모릅니다. 멀쩡한 옷은 싫증난다며 입지 않고 휴대폰도 유행 지났다며 수시로 바꿉니다. 또, 더 사용해도 아무 지장 없는 전자제품이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겹겹이 쌓입니다. 주택가와 아파트 곳곳에 주인 손을 떠난 물건들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사람도 쓸모없다며 마음대로 버리는 세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슴없이 내다 버리는 병에 걸린 듯합니다. 아끼고 다시 쓰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더 예쁜 마음은 그렇게 모은 마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입니다. 둘째에게 몽당연필 볼펜대에 끼워준 후 제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쓰고 아껴 써서 나눠 쓸 물건 참 많았습니다.
#몽당연필 #연필 #연필깎기 #사퍄 #모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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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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