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법'으로 재벌 총수일가 사익편취 막겠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공정거래법 시행령 후퇴를 보며

등록 2013.09.27 18:03수정 2013.09.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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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10대 그룹 총수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지난 7월 2일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금지하는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운용에 필요한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9월 초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앞서 새누리당 정책위 등 국회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관한 시행령 개정 계획을 보고했는데,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공정위 안을 대폭 완화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관련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쟁점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총수일가의 지분이 있는 회사를 대상으로 사익편취행위의 유형에 해당하는 거래 등을 하는 경우 규제를 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도 총수일가의 지분율과 사익편취행위로 간주하지 않는 거래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대상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인 총수일가 지분율과 관련하여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 20% 이상인 비상장회사를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은 그 기준을 상장회사 40%, 비상장회사 30%로 규제 대상을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총수가 있는 43개 기업집단 1519개 계열사 중 공정위 안을 적용할 경우 상장사 30개, 비상장 178개 등 총 208개(13.7%)가 규제의 대상이지만, 새누리당 요구안을 적용할 경우 27개사가 줄어든 상장사 15개, 비상장사 166개 등 총 181개(11.9%)가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 기준에 따른 규제 대상인 회사라 하더라도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조금만 조정하면 규제를 벗어날 회사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회사기회유용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현재 총수일가 지분율이 43.4% 정도인데 3.4% 정도만 정리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지 않게 된다.


상장회사 40%, 비상장회사 30% 기준은 총수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지분율의 일부 조정만으로 규제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므로, 공정위 안 수준까지 기준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일감 몰아주기 금지행위의 유형, 즉 사익편취 행위의 유형에 대해서도 이견 차가 심하다. 사익편취 행위의 유형으로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사업기회 제공', '합리성이 없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있는데, 특히 쟁점이 되는 것은 합리성이 없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정위 안은 연간 내부거래 매출액 50억 원 미만, 내부거래 비중 10% 미만을 적용 제외하기로 하였으나 여기에 새누리당이 각각 200억 원과 20%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 안을 적용할 경우 위의 208개 대상회사 중 80개가 제외되며, 새누리당 안을 적용하면 95개가 제외된다. 결국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적용을 받는 회사는 총 113개사 내지 128개사 미만으로 더 축소된다.

셋째, '상당히 유리한 조건'과 관련하여 공정위는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으로 연간거래 총액이 50억 원 미만인 경우 법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으나, 새누리당은 7% 미만으로 연간거래액 200억 원 미만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적용할 경우 개별적인 거래에 있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회사들이 최대 21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완성된다 하더라도 규제대상 회사는 최소 92개에서 최대 128개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대상회사의 6.1%~8.4% 수준으로 극히 일부분이다. 이런 규제를 가지고 어떻게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더기 법안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핵심법안이었으나,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 당시 재계의 우려를 수용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과잉입법론' 시그널에 힘입어 새누리당 주도로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법안의 형태로 통과되었다.

사익편취 규제를 공정거래법 제3장(경제력집중의 억제)이 아닌 제5장(불공정거래행위 금지)에 신설함으로써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명분도 놓쳤고, 제5장의 적용을 받기 위한 경쟁제한성 요건의 충족 여부에 대한 법 해석상의 불확실성만 남겼기 때문이다. 또, 개정안 곳곳에 적용대상 범위를 축소하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열거해 놓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에 공정위의 집행의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성패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실제 공정위는 법개정 이후 시행령의 보완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운용의 묘를 살릴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그러나 법개정에 이어 또 다시 재계와 이를 그대로 수용한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무력화 시도는 공정위의 집행의지마저 흔들고 있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공정거래법 제3장에 신설되었다면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뿐만 아니라 모든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에 대해 적용될 수 있었으나, 제5장에 신설되면서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으로 대상범위가 한정되었고, 총수일가의 지분율 요건이 추가됨으로써 208개 회사로, 다시 내부거래금액과 비중에 따라 그 대상범위가 120여개도 안 되는 수준, 경우에 따라 90여개 남짓한 회사만 적용 받는 특례규정 수준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공약사항이었다고 믿기 힘든 수준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마무리 발언 논란 등에 비추어볼 때, 일감 몰아주기 규제완화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여기에 새누리당의 적극적인 눈치보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재계에서 항상 주장하고 있는 '투자 활성화' 내지 '경제 살리기' 명분이라는 레토릭이 자리하고 있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근절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재계의 민원을 정부와 여당이 적극 수용하고 있는 점은 심히 우려할 만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천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고 공언해왔는데, 재벌총수일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친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두고 공약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일감몰아주기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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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는 소액주주 권익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부의 재벌·금융정책 감시 등 1997년 이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활동을 보다 전문화하고 발전시키려는 경제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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