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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박나무의 열매 하얀 함박나무꽃의 열매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가을비에 더욱 산뜻해 보인다. ⓒ 김민수
초여름 피어나 활짝 웃던 하얀 함박꽃에서 이런 열매가 열린다는 것은 기적이다. 함박꽃잎이 떨어지고 이젠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꽃이 진 자리에 이렇게 멋들어진 열매가 꽃잎도 가지지 못했던 색감으로 익어간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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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홍 열매 자잘자잘 작은 열매들이 붉게 익었다. 꽃을 피웠을 때에는 저 붉은 빛을 어디에 숨겼었을까? ⓒ 김민수
가을에 익어가는 열매치고 기적이 아닌 것이 어디있을까? 그들은 그 색깔을 어디에 숨겨두고 있다가 인생의 끝자락에 내어 놓는다. 꽃이 필 때 가장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열매가 익어갈 때 또한 아름답다.
그들의 꽃 피고, 열매맺고, 익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도 감탄할 줄 모른다면 메마른 가슴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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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두화 열매 꽃은 엄청나게 많이 피건만 열매는 이렇게 달랑 두 개다. 다른 것들도 그닥 열매를 많이 맺니느 못한다. ⓒ 김민수
현대인들은 이들을 바라볼 겨를 없이 몰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뒤쳐지고, 오로지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누군들 메마른 가슴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큰 맘먹고 의도적으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이 거대한 경쟁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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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접초 풍접초의 꽃술에 앉은 비이슬, 가을비에 풍접초가 힘겨워 하는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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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의비름 하늘의 별인냥 피어난 꿩의비름, 별마다 물방울 보석으로 단장하고 있다. ⓒ 김민수
풍접초와 꿩의비름은 보랏빛이다. 풍접초는 나비를 닮았고, 꿩의비름은 별을 닮았다. 비오는 날에는 별은 떠있으되 보이지 않고, 나비는 날 수 없다. 보랏빛 꽃색깔만 닮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도 닮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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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꼬리와 노린재 노린재가 범꼬리에 앉아 가을비를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 김민수
노린재가 이렇게 예뻐 보일 수도 있구나 싶다. 겁도 없이 호랑이꼬리에 앉아 가을비를 피
하지도 않고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노린재, 대담한 놈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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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봉선과 등에 등에가 물봉선 속에 들어가 꿀을 먹으며 비를 피하고 있다. ⓒ 김민수
가을비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물봉선의 꽃잎이 짓물렀다. 꽃등에 한 마리가 물봉선 하나를 차지하고 비를 피한다. 비만 피하는가 살펴보니 그 사이에 꽃술에서 꿀을 딴다.
꽃잎을 우산 삼아 꿀을 따는 등에, 완벽하게 자연과 동화된 삶이다. 인간의 삶도 본래 그러했을 터인데, 이젠 자연을 떠나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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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기장과 비이슬 개기장에 맺힌 비이슬, 이슬 한 방울 보다도 작은 씨앗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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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기장 개기장이 가을비를 머금고 늘어질대로 늘어져 있다. ⓒ 김민수
풀마다 가을비를 온 몸에 모시고 한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개기장의 작은 씨앗들마다 저보다 더 큰 비이슬을 하나씩 매달고 힘겨운듯 서있다. 그들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꺾어버릴만큼 비이슬은 잔인하지 않으며, 작은 바람에도 그들을 털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힘겹게 하려는 비이슬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쉬며 가을 정취를 잠시나마 맛보고 가려는 비이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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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쑥부쟁이 수줍은 듯 피어난 미국쑥부쟁이, 그러나 내년엔 몇 배나 더 넓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 김민수
몇 해 전부터 유난히 많이 보이는 미국쑥부쟁이다.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만은 한해가 다르게 이 땅을 점령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국주의의 속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을비가 내렸다. 그들을 만나고 있을 때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노린재는 당당하게 가을비를 맞이하고, 꽃등에는 지혜롭게 가을비를 피하고, 꽃들은 저마다 비이슬로 자신들을 장식한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가을은 더 깊어질 것이다. 이 깊어지는 가을에 잠시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쉼의 시간을 가지면 정말 뒤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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