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한국 현대건축물', 어디에 있을까?

[서평] 건축가 조한의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등록 2013.10.04 10:41수정 2013.10.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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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표지.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표지.돌베개
어릴적 살던 집이든 잠깐을 지낸 집이든, 이사를 가게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한다. 잠시나마 지내면서 정들었던 공간을 떠나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렇듯,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물이나 공간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낸 시간만큼 다양한 기억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먼지 쌓이듯 쌓여가기도 한다.

공간의 규모를 조금 키워서 보면, 자신이 살던 동네나 도시의 모습이 아른거릴 수도 있다. 정 든 거리와 건물, 시장이나 공원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삶의 기억은 곧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간에 축적되는 것인 셈이다.


여기에 그런 생각과 기억을 담은 책이 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한국의 도시 서울을 담아낸 책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의 이야기다.

건축물에 얽힌 서울의 기억들

저자 조한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자신이 어릴적 거닐던 곳의 기억을 더듬으며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의 첫머리를 열고 있다. 대학시절 작업실이 있던 홍대 거리의 변화를 과거의 풍경과 비교하면서 기록한 부분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홍대'하면 흔히 클럽 문화와 노랫소리가 가득한 거리를 떠올리지만, 저자가 주로 활동하던 1970년대에는 철길을 따라 크고 작은 건물들과 함께 저렴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글은 홍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는 저자의 젊은시절 놀이터와 같았던 공간인 낙원상가, 세운상가, 고속버스터미널 등 서울의 구석구석 자세한 장소의 설명과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건물과 주변풍경의 조화를 짚어보거나 역사적 의미를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건축가로서의 고찰이 엿보인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인사동 쌈지길, 서촌 옥류동천길의 모습은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그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과거 문학인의 삶이 녹아 있는 윤동주 문학관과 이상의 집도 거론되며, 과거와 현재·미래의 콜라주라고 부르는 '선유도공원'도 언급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였던 충정아파트의 모습과 역사도 알아볼 수 있으며, 영화 <남영동 1985>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통해서는 독재정권 당시 민주투사들에게 고문을 행했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대공분실의 좁은 복도와 엇갈린 문, 작은 창과 문을 열면 보이는 빈 벽. 모두 취조와 감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공간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소통없이 지어진 서울시 청사, 광화문 광장의 아쉬움

저자는 장소와 건물에 대한 자신의 추억뿐만 아니라 특정 건축물에 대한 아쉬운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서울시 청사'이다. 이 건물은 완공되기까지 7년간 약 3000억을 투입했지만 실제로 지난 2월 전문가 100명이 선정한 '최악의 한국 현대건축물'로 뽑히기도 했다.

서울시 신청사는 '최악의 건물'이 아니라 '최악의 과정'이라고 해야 맞다. 서울시 청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형태적인 것도 아니고 친환경적이냐 아니냐도 아닌, 시 청사가 만들어진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본문 336쪽 중에서)

발주처는 공모전을 통해 좋은 설계안을 뽑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까맣게 잊은 듯 마치 설계 회사를 뽑는 자격시험처럼 공모전을 취급하고, 설계 회사는 한 술 더 떠 설계안보다는 로비에 더 힘을 쓰는 모양새를 보였다. (중략) 그러자 또 다시 그해 9월, '성냥갑'을 조금 비튼 안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역시 랜드마크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여론의 질타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중략) 결과적으로 서울시가 시민 및 관련 단체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3년의 시간과 함께 시민의 소중한 세금까지 낭비한 셈이 되었다.(본문 338쪽 중에서)

당초의 완공 예정보다 3년의 시간과 1000억 원의 예산을 더 들여서야 모습을 드러낸 서울시 청사는 적법하게 진행된 공모전의 결과를 무시하면서 참여자와 시민을 희생자로 만들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시간과 돈을 크게 낭비하면서 건축물 자체도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린 사례라며 저자는 건축가로서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는다.

이어서 광화문 광장에 대한 아쉬움도 적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의해 뒤틀어진 광화문의 축을 기반으로 설계된 광장의 구조는 시각적으로나 역사적 맥락에서 불편하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위압적인 자태로 내려다보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사대주의를 드러내는 설계이며, 정작 광장을 사용할 시민의 입장이 아니라 전시 행정의 결과물이자 관료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들으니 이제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듯하다.

기억을 담는 공간, 공간을 담은 기억

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서울의 오밀조밀한 모습을 저자는 자신의 책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 조한이 탐구한 서울은 자신의 꿈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겨있는 곳이자, 동시에 다양한 사건과 역사가 스며있는 장소들의 집합인 셈이다.

독자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도시의 유명한 건물과 거리는 그 자체로도 각각의 사람들에게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더불어 작고 소소한 풍경들은 커다란 서울 안에서 '나만의 공간'이 되어줄 어떤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을 담는 공간을 발견하면서 그 공간을 담아낸 기억을 갖는 일. 어쩌면 그런 것들이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는 것의 한 귀퉁이인지도 모른다.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은 그런 점을 잘 포착하여 적어내려간 책이다.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응축되는 곳은 어느 글이나 사진 속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어느 건축물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그 곳을 다시 찾을 때에는 그 시절의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서울의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의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다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씀 | 돌베개 | 2013.08. | 1만6000원)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건축가 조한의 서울 탐구

조한 지음,
돌베개, 2013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건축 #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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