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김종신
백범 김구 선생의 당시 나이 17세인 1892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실시된 과거에 응시했다. 오랫동안 글공부를 하며 집안을 멸시하던 양반들을 압도하고 평생의 한이었던 상민이란 굴레를 벗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 과거를 치를 동안 먹을 좁쌀을 등에 지고 주막에도 들지 못하고 아버지 지인의 집에서 숙소를 정해도 희망은 부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관매직이 판친 부패한 조선의 과거 시험은 형식뿐이었다. 시험도 보기 전에 이미 장원을 비롯한 합격자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심혈을 다하여 장래를 개척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인데, 선비가 되는 유일한 통로인 과거장의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내가 시(時), 부(賦)를 지어 과문6체(科文六體)에 능통하더라도 아무 선생 아무 접장 모양으로 과거장의 대서업자에 불과할 것이니 나도 이제 다른 길을연구하리라 결심하였다."선생은 더 이상 과거 공부에 미련을 버리고 풍수와 관상을 공부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선생은 석 달 동안 두문불출하고 자신의 얼굴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부귀한 좋은 상은 없고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상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과거장에서 겪은 좌절 이상의 비관에 빠진 선생. 그런데 <마의상서>에서 운명을 바꾸는 한 구절을 선생께서는 만났다.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이 글귀에서 선생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제부터 밖을 바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후 선생은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없는 천하고 흉한 관상을 가진 백범 김구 선생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도 죽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우리 가슴속에 살아 계신다. 백범 선생처럼 관상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관상이 아니라 심상(心相)이 제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자동차 안 룸미러를 비롯해 엘리베이터 등의 거울을 만나면 누런 이를 모두 드러내고 씨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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