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것이, 이번 사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슨 잡범처럼 돼버렸다" "적어도 내란음모 정도는 되어야만 진보 내지 혁명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식으로 돼버렸다. 이건 좀 비이성적인 상황이다"
권우성
-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서 진보당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광역당과 지역위원회까지 전 당 조직이 이미 투쟁본부 체제로 전환되었고, 웬만한 결정을 투쟁본부 중앙회의에서 결정토록 중앙위를 통해서 의결을 마쳤다.
- 이번 달부터 구속된 이석기 의원 공판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변호인단을 대규모로 꾸렸다.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법리적 싸움을 해나갈 것이다. 시민단체들과 대책위가 꾸려진 상황이다. 묘한 것은 검찰기소 시점이 완전히 변곡점이다. 기소 전에는 많은 분들이 대책위에 들어오기를 주저하시기도 하고, 대책위에 들어와서도 '진보당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탄압은 부당하므로 대책위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다가 기소되고 나니까 오히려 '이거 정말 아무것도 없네? 그러면 프락치에 의한 녹취록 말고 아무것도 없다는 거 아냐? 진짜 이상한데?'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대책위에 참여하신 분들도 그렇고, 이미 참여하신 분들도 그렇고, 오히려 '반격'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방어할 때가 아니라 반격을 해야 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건도 그렇고,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도 그렇고, 국정원 국면전환용이라는 게 너무 빤한 수 아니냐, 그렇다면 오히려 반격을 해서 국정원의 숨은 의도와 검은 속셈을 드러내야한다'고들 얘기한다."
- 이번 공동 변호인단에 민변 차원에서는 결합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느 정도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가."그럴 수 있다. 사실 다들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인가. 재미있는 것이, 이번 사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슨 잡범처럼 돼버렸다. 국가보안법 위반은 한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돼버리고, 적어도 내란음모 정도는 되어야만 진보 내지 혁명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식으로 돼버렸다. 이건 좀 비이성적인 상황이다."
- 민주당도 사건 초기부터 진보당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지난해 당내 경선 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그랬다. 원래 '종북'이라고 그전부터 공격을 해왔는데 거의 잘 안 먹혀 들어가다가 지난해 5월 1일 조준호 당시 진상규명위원장이 낸 보고서가 나오면서 진보 또는 민주·중도 쪽에서 '부정 집단'이라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했다. 이를 정권과 공안기간이 '종북' 프레임으로 집중적으로 치고 들어온 것이다.
나중에는 이게 경선 부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는 게 아니라 '종북' 여부로 바뀌어버렸다. 저들 프레임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프레임으로 넘어갈 때 '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가장 손 놓고 있던 집단 중 하나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이때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서, 내가 보기에는 민주당이 이때부터 뒷걸음질 쳤다. 야성이 소진돼가는 상황이었다라고 본다."
"국정원의 반전카드... 비밀지하조직에 아이들 데리고 오나?"- 진보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규정했다."국정원이 (댓글공작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고 나서 국회 국조특위가 합의됐을 때, 국회에 파견 나온 국정원 직원들이 굉장히 긴장했다. 저도 여러 차례 (국정원 담당 직원에게) '특위 어떻게 임하실 거냐, 상황을 어떻게 보시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는 국정원이 자기 조직이 축소되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지더라. 그러니 여러 반전카드를 준비한 것이다.
우리 사건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국정원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결정타가 사실 채동욱 총장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채 총장은 중수부장 출신이라서 팩트(fact, 사실)에 의해서만 수사하고, 수사에서 나온 사실에 근거해서만 움직이는 데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원세훈 지시말씀'을 보면 명백하게 선거개입 정황이 드러난다.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 관련 인터넷 댓글 작업도 했다. 이건 공직선거법 위반인데, 이걸로 기소하는 순간 검찰도 '채동욱 멋있다'고 난리 났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의 국정원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불법선거 요소가 확정판결 나버리면, 현직 대통령의 정통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총장이 선거법으로 기소를 한 거다. 검찰 수사 원칙에서 보면 맞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채동욱 전 총장이 전설적 영웅이 됐다. 동시에 곧바로 잘릴 운명에 놓여있던 거다. 그것이 9월에 와서야 드러났다. 이렇게 됐을 때(선거법 기소가 됐을 때) 첫 번째 타격을 받는 건 박근혜 정부지만 또 하나는 국정원 아닌가. 그러니 채동욱을 날릴 카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걸 급하게 터트린 게 아닌가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회합 녹취록 내용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다. "충격을 주는 내용이다. 회의록을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전쟁, 핵무기, '폭파' 같은 이야기가 막 나오니까 다들 놀랄 수밖에 없다. 저는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점에 대해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경위야 어떻든 저희의 불찰이다'라는 말을 꼭 했다. 그런데 다들 '왜 사과 안 했느냐'고 한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펼치며) 회의록과 관련해 잠시 말씀을 드리면, (회합에) 아이들이 온다. 비밀 지하조직에 아이들이 오는 경우 있나. (다른 페이지로 넘기며) 이건 '급진적 경향이 좋은 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겨서) '결전성지'라고 했는데, 마리스타 수녀원이 있는 절두산 성지에 왔다는 이야기를 국정원에서는 결전성지에 왔다고 쓴 것이다."
- 녹취록에는 폭파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 폭파 관련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 한 참가자가 '예비검속 피해야 한다, 폭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잡혀가서 죽는 게 더 문제다'라고 말한다. 또 '개별적으로 저장소 어떻게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 한 조 한 사람만 좀 얘기가 나왔는데, '무기 기술습득 그랬는데 뜬 구름이었다'고 말한다. 이게 <한국일보> 녹취록 보면 '참가자 웃음'이라고 나온다. 이정희 대표가 이걸 보고 '농담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 거다.
이날 모임은 실제로 정세강연이었고, 강연 중에서 일부 과격한 발언이 나온 것도 있지만, 참가자들이 그 자리에서 '그것은 안 되는 거 아니냐, 불가능하다, 반전·평화(운동)을 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전체 흐름이었다. 이석기 의원도 '개량주의, 공산주의 잡사상 많은데 이를 척결해야 한다'고 하는 발언을 했다. 공산주의 척결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어떻게 동조하는 것인가. 국정원 시각에서 푼 녹취록인데도, 여기에도 '급진주의 경계'와 '공산주의 척결'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총 갖고 다니지 말라'고 한다. (이 의원이 발언했다는) 철탑 폭파도 얼마나 웃긴 이야기냐면, 'A라는 철탑이 있다고 치자, 예니까 사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철탑을 폭파하라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부적절한 표현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오히려 정반대 내용의 발언은 왜 균형 있게 실어주지 않는가. 우리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까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너무한 것 아닌가. 국정원은 원래 그런 집단이니까, 공안기관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집단이니까 그런다고 쳐도, 적어도 언론은, 주변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녹취록을 잘보고 애기했으면 좋겠다."
- 문제는 이런 얘기가 나온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왜 철탑을 예로 들어서 설명을 해야 했는가. "부적절한 표현이 없는 건 아니다. 내용 중에 정말 저 내용을 다 이야기했는지는 법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북한이 핵개발 성공했다, 인공위성도 쏘고 그랬다, 그 기술이 대단한 것이다'라는 표현은,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죄가 될 수 있다. 객관적 팩트를 이야기해도 잡혀가는 세상이다. 그러면 도대체 대한민국에는 사상·표현·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것인가.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실제 독재·기득권·비리 집단하고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을 폭력으로 없애려 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합법적 절차에 의해서 한다. 그들의 행위가 문제됐을 때는 해당 범법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두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진보 진영에서조차 진보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실 매카시즘 속에 갇혀 있다. '종북' 프레임이라고 하는 것이 그 점에서 아주 위험하다. 최소한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