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 떠 있는 천 개의 섬, 어떻게 하나

[서평]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록 2013.10.11 14:26수정 2013.10.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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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학교 3학년 26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외운다. 복도를 오가며 마주치는 학생들이 인사를 하면, 나는 거의 예외 없이 "그래. ○○아, 안녕" 하며 이름을 꼭 불러준다.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으니 이건 일도 아니다.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초임 시절, 이름을 외우기 힘들었을 때에는 그런 학생들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름을 알고 있어서 '○○아' 하고 이름을 부르면 대개 고개를 들거나 딴짓을 멈춘다.


그런데 이름을 몰라서 '야'나 '얘야', '너'로 불러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질 때가 많았다. 험악한 상황이 연출된 적도 몇 번 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몇 번 한 뒤, 아이들 이름을 반드시 모두 외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힘주어 실천했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한다. 내 자랑을 하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교사가 아이들과 맺는 관계의 색깔을 결정할 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할 때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해서 꺼내 놓는 경험담이다.

무관하거나, 공모하거나, 혹은 적대적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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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겉그림 ⓒ 따비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있는 엄기호의 신작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를 밤새 읽었다. 아프고 쓰라렸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용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 돼버렸다. 타자와 제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이것을 핑계로 남탓만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자책 때문에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이 마구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가 있었구나, 나의 깨달음과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크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느꼈다. 이 책에는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부제에 맞게 책에는 수많은 교사의 사례가 실려 있다. 나는 그 선생님들의 목소리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기본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며 눈을 마주치는 것이라고 한다. 수학이나 과목 과목은 특성상 국어 과목과는 달리 수행평가 등을 통해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바로 이 때문에 최 교사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1분단 뒤의 너 일어나라'고 하면 안 움직이던 학생들이, 이름을 부르면 10분은 버텨요. 이름을 불렀을 때 환해진 아이들이 많아요." (55, 56쪽)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는 실존적이어야 한다. '실존(exist)'은 '밖(ex)'에 '있는 것(ist)'이다. 내가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진정한 실존적 관계가 맺어진다.


저자는 교사와 학생 사이는 무관하거나, 적당히 공모하거나, 혹은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표출된 구체적인 양상이 수업 붕괴와 학교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그 수업 붕괴와 학교 폭력이 이름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생긴 폐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교사와 학생이 실존적인 관계를 맺지 않아서 벌어졌다고 하면 억지소리일까.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못지않게 교사와 교사 사이의 관계도 심각하다. 저자는 교무실을 '침묵의 공간'으로 규정한다. 침묵 속에서 동료 교사와 그 어떤 교육적 대화도 나누지 않는(못하는) 교사들이 가득한 교무실을, 저자는 "교무실에는 천 개의 섬이 떠 있다"는 비유로 묘사한다.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학교의 책임을 강조하는 교사는 내부의 적으로 취급된다

저자는 책임과 책무를 구별한다. 저자에 따르면, 책임은 도덕적이고 내재적이다. 반면에 책무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으로 객관적인 책임을 의미한다. 두루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전문성과 책무성을 강조한다. 언뜻 '아름답게' 들린다. 문제는 이 전문성과 책무성이 교사와 학생들의 진정한 발전과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국에서 책무성의 강조는 교사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획일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책무성이 곧 평가와 연결되어 책임 추궁을 의미했기 때문에 교사들이 움츠러들어 책임질 일을 안 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213쪽)

저자에 따르면, 책무성이 강조될수록 업무량은 증가하고 전시 행정식, 책임회피식 현재주의는 더 강화된다. 저가가 보기에 학교는 학생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공유해야 하는 책임의 문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학교의 책임을 강조하는 교사는 내부의 적으로 취급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저자는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두루 인용하면서 교사 집단의 현재를 진단한다. 저자가 보기에 과거에는 품행이 방정하고 성적은 좋지만 가난한 학생들이 교사가 되었다면, 경제위기와 더불어 점차 월등한 성적을 가진 중산층의 학생들이 교사가 된다. 이른바 '범생' 출신 교사들이다. 실제 내가 학교 현장에서 보고 겪는 상황과 크게 틀리지 않은 진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사가 된 이들은,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이 탁월하게 분석한 것처럼, 이미 엄격한 학교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강제적인 힘에 복종하는 주체들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 저자의 말마따나 긍정하고 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화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 된 것이다.

이들(이 책에서 소개하는 교사들-기자)이 보기에 후배 교사들이 더 체제에 순응하며 동료 교사들은 말문을 닫고 자기를 단속하고만 있다. 내가 만난 교사들은 동료 교사들을 만나더라도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얘기했다. (231쪽)

도대체 이 시대의 교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교사는 학교교육의 색깔과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그만큼 일이 중요하고, 진심으로 신경 써야 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는 '꼰대는 마찬가지'라는 냉소와 '당신만 교사야'라는 비난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간다. 학교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 분란을 일으킨다고 불온시되고, 가만히 있으면 네가 그러고도 교사냐며 힐난한다. 도대체 이 시대의 교사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천 개의 섬'이 돼버린 교사들은 외롭고 힘들다. 이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할까. 그러고 싶은 교사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다른 교사들은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로 인정하는 것에 관계의 출발이 있다고 말한다. 몰래 보충이나 자율학습을 빠져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그냥요'라는 대답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책에도 비슷한 예가 소개되어 있다. 그런 '그냥요'를 학생의 말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전달하는 것'이 아니다-기자) 이야기꾼으로서의 교사들도 강조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아직 그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어떤 것을 제안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이런 제안이 바로 조언이고 충고다. 조언과 충고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명령이나 강압이 아니라 이야기의 형식을 띨 때 비로소 들릴 수 있다. (309쪽)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에게 조언하거나 충고하는 교사상은 당연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은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이미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냉소주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에게 저자가 제안하는 이야기와 조언, 충고 등은 웃음거리조차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스스로를 교육노동자로 소개한다. 하지만 그저 노동'이나' 하고 급여를 받는 단순한 월급쟁이 노동자는 아님을 믿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사람의 내면과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이가 바로 교사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이야기나 조언, 충고 그 어떤 것도 상관 없다. 다만 '천 개의 섬'으로 떠서 부유하지 않으려는 다짐과 노력이 중요하다. 교사들이 외로운 '섬'으로 살기에는 그들 자신이 힘들고, 무엇보다 그들 때문에 상처 받고 아파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지음 | 메디치 | 2013. 9. 20. | 321쪽 | 1만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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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따비, 2013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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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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