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외부세력은 경찰이다"

[인터뷰] 밀양 상동마을 김영자씨... "농토는 내 전부인데 제로될 판"

등록 2013.10.15 13:29수정 2013.10.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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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전(한국전력공사)은 우리를 법적으로 손발을 묶으려고 한다.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송전탑 공사 반대에 나서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외부세력이 아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핵발전소가 계속 지어진다는 것인데,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 경험하지 않았느냐. 밀양에서 외부세력은 경찰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김영자(57·여수마을)씨가 강조했다. 한전이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 주민 23명에 대해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에 냈던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이 지난 8일 받아들여졌는데, 김씨도 그 대상에 포함돼 있다.

a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 윤성효


김영자씨는 "어제 산으로 올라오는 곳에 법원에서 고시문을 부착한 모양인데 보지도 않았다"며 "주민들은 법원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해서 송전탑 반대 활동을 그만 둘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지만, 한전에서 요구했던 '간접강제금'(각 100만 원)은 기각했다.

"농사짓는 땅은 내 전부인데, 제로될 판"

김씨는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살고 있다. 올해 시어머니는 아흔 세 살. 요즘 남편은 주로 농작물 수확에 나섰는데, 김씨는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김씨는 1000여 평의 논에 비닐하우스를 하고, 5000여 평가량 감 농사를 짓고 있다. 시어머니는 10남매(아들 8, 딸 2)를 두었고, 김씨는 다섯 번째 며느리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돈으로 따지면 수억 원은 안 될 것이다. 농사 짓는 땅은 저한테는 인생의 전부다. 처음에 시집와서 고생도 참 많이 한 것 같다. 남의 논 두 마지기를 빌려 비닐하우스를 하면서 이만큼 일궜다. 얼마 안 되는 땅이지만, 그것은 제 인생의 전부인데 그 재산 가치가 제로(0)가 될 처지에 놓였다. 그러니 사람이 미치지 않을 것인가. 송전탑 반대에 나선 주민들은 다 같은 처지다. 자기 재산 모두가 없어지는데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겠나."

'외부세력 척결 궐기대회' 무산시켜


a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 윤성효


김씨는 지난 13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루 전날 밀양시청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 외친 탓이다. 밀양사회봉사단체협의회가 12일 이곳에서 '외부세력 척결 총궐기대회'를 열려고 했는데, 송전탑 경과지 주민 100여명이 몰려가 항의했던 것이다.

당시 밀양사회봉사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서너명씩 밀양시청 앞으로 다가오자 주민들이 다가가 "네 집 앞에 철탑이 들어서면 찬성하겠느냐"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집회 참석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은 놀라 달아나듯 물러났고, 결국 집회는 무산되었다.

이날 주민들은 농작물을 수확하다 말고 달려온 것이다. 장화를 신은 채 달려온 농민들도 있었다. 밀양경찰서는 이날 적극 항의했던 김영자씨를 집회 방해 혐의로 조사하고, 다른 주민 1명도 소환 통보해 놓았다.

"하루 전날 언론 보도를 보고, 밀양시청 앞에서 외부세력 척결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알았다. 주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달려갔고, 이성을 잃다시피 할 정도로 욕을 퍼붓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 날 욕을 하며 항의했는데, 경찰은 저하고 두 사람만 불렀다. 제가 송전탑 반대에 적극 나서니까 표적 수사라 본다."

김씨는 경찰이 조사할 때 '배후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느꼈다. 경찰이 조사할 때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집회를 왜 방해했느냐고 묻더라. 외부세력 척결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우리와 상관이 없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한테 외부세력은 대규모 공권력이다. 경찰은 집회 방해에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두 사람한테 전화를 받고 집회 방해하려고 가지 않았느냐고 경찰이 묻더라. 경찰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자고 하던데, 왜 보려고 하느냐며 따졌다. 그날 집회는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간 것이었다."

"고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어야 문제가 끝이라 했는데"

'외부세력' 주장을 반박했다. 김씨는 "그분들은 우리 주민들하고 연대 단체이지 외부세력이 아니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내가 죽어야 송전탑 문제가 끝난다"며 분신자살했던 고 이치우(당시 74살, 보라마을)씨 이야기를 했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밀양 송전탑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연대하는 시민단체도 특별히 없었고, 순전히 주민들만 싸우다시피 했다. 주민들의 고립감이 심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수 있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는 것을 보면 그 분들은 우리 주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두면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a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 윤성효


밀양 시민단체인 '너른마당'이 중심이 되어 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돕고 있다.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을 비롯한 너른마당 회원들은 주민들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너른마당 회원들은 다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일에 나서다 보니 자기 생활이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 분들도 주민들의 손을 놓고, 자기 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제2의 이치우' 어르신 같은 비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계삼 사무국장은 지난 8일 태풍이 닥쳤을 때 산 속에서 농성하고 있던 주민들을 설득해 하산하도록 했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소재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6번 철탑 아래에서 농성하던 주민 8명이 "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며 폭우 속에서도 비닐을 덮어쓰고 이날 저녁에 농성했는데, 이 사무국장이 달려가 설득했던 것이다.

"밀양에서 외부 세력은 경찰이다"

김영자씨는 "보수언론·단체에서 외부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연대단체"라며 반박했다.

"밀양에서 외부세력은 경찰이다. 지금 우리와 같이 싸우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이 나라를 걱정하는 연대단체다. 외부세력과 연대단체도 구분하지 못하느냐. 송전탑이 세워진다면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것인데, 이를 막아야 우리나라가 산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경험하지 않았느냐. 원전사고가 나면 그 지역·나라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것을 아는 사람들이 밀양에 와서 주민들과 같이 외치는 것이다."

김씨가 사는 상동마을과 이웃 동네인 금호마을 주민들은 요즘 산에 올라 경찰과 대치·충돌하기도 한다. 한전은 지난 2일부터 126번 철탑 공사를 시작했고, 바로 옆에 있는 125번 철탑 공사를 14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주민들이 요즘 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경찰이 진입로와 등산로를 가로 막고 있다. 주민들은 길도 없는 산을 헤매다시피 하면서 오르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경찰대원들이 더 많이 배치된 것 같다고 한다. 주민들이 가는 곳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고, 때로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대장은 '공사를 막는 것은 불법이고, 다 잡아라'고 하던데, 우리는 '다 잡아 넣어라'고 했다. 그런다고 가만히 있을 우리가 아니다."

a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 사는 김영자(57)씨는 송전탑 반대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 윤성효


김씨는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 1일부터 나흘 동안 산 속에서 단식했다. 몸도 아프지 않는데 경찰은 지난 2일 오후 김씨를 담요에 덮어씌워 병원으로 후송했는데, 그는 병원 응급실 의사로부터 '괜찮다'는 소견을 듣고 바로 퇴원했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남편이 감을 따는 일을 하고 있다"며 "날이 추워지기 전에 다 따야 하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김영자씨는 "지금은 밤이며 감, 벼 등 농작물 수확하기에 바쁜데, 왜 하필 농사철에 이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며 "수확을 마치고 나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서는 주민들은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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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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