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화순 잇는 옛길, 가을에 걷기 딱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 34] 전남 화순 너릿재 옛길

등록 2013.10.23 18:43수정 2013.10.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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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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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전망대에서 보이는 화순. ⓒ 신원경


광주에서 화순 가는 길. 화순에서 광주 가는 길. 광주를 가기 위해, 화순을 가기 위해 사람들이 걸었던 길. 그 길이 바로 너릿재 옛길이다. 너릿재는 고개다. 1971년 너릿재 터널이 완공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화순과 광주를 오가기 위해 넘었던 고개다. 너릿재는 만연산과 안양산, 그리고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을 따라 형성돼 있다. 광주와 화순군 안내 설명에 따르면 너릿재 옛길의 유래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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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과 광주를 오갈 수 있는 너릿재 옛길. ⓒ 신원경


"너릿재는 해발 240m의 고개로 광주와 화순 읍내를 잇는 가장 중요한 교통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넘나들었는데 1519년 기묘사화때 조광조가 유배지(화순 능주)로 가던 길에 지났다고 한다. 또한 1894~95년 사이 겨울에 동학농민군이 너릿재 동쪽 화순 이십곡리 입구에서 집단학살 당했고, 1947년 여름에는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광주시내로 진출하려다 미군과 경찰에게 저지당하며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너릿재는 원래 소로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로 바뀌었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깊고 험한 너릿재를 넘던 사람들이 산적이나 도둑들에게 죽임을 당해 판, 즉 널에 실려 너릿너릿 내려온다고 해서 너릿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길이라 처음 온 곳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익숙했다.

이쯤에서 쉬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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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중간에 있는 쉼터에 앉아 걷기를 쉬었다. ⓒ 신원경


19일 광주 동구에서 출발해 너릿재 전망대까지 올랐다. 길은 차도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돈돼 있었다. 혼자 걷는 이가 종종 있었다. 조용히 혼자 걷기 좋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화순이 보였다. 너릿재 터널도 보이고, 그 터널을 통과하는 차들도 보였다. 또 전망대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 2그루가 있었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고개가 완전히 꺾였다. 그 큰 느티나무 그늘이 품고 있는 의자에 아빠가 누웠다. 그리고 10분정도 낮잠을 잤다. 아빠는 자다 일어나서는 "시원하고 적당히 조용하고, 공기가 좋아서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혼자 이곳저곳 둘러봤다. 쉼터로 통하는 길도 가봤다. 쉼터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아빠 말대로 조용하고 시원했다. 그러다가 상상이라는 것도 해봤다.

'옛 사람들은 이쯤에서 쉬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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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전망대에 있는 300년 된 느티나무. ⓒ 신원경


'떨어지는 잎도 보았겠지'

가을이라 나무에 잎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햇살이 더 깊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길 중간쯤 시가 한편 적힌 바위가 있었다.

<햇살이 산 속으로> – 손광은

산빛을 따라/넘어오는 소리가/햇살처럼 모이고/사는 일이 있었던가
출렁이는 물결처럼/흩어진 햇살이 뛰어 다니듯/바람소리처럼/그늘이 소리내어 밀리듯/햇살이 산 속으로 스며 듭니다
살아 있는 저 소리처럼/저녁놀이 어스름 속으로/빨려듭니다
산빛을 따라/사는 일이 있었던가/밀어 내고, 밀어나가고,/햇살이 산 속으로 스며 듭니다.

햇살이 스며든 숲을 자세히 보는 데 내 앞으로 잎사귀가 하나가 떨어졌다. 우연히 떨어지는 잎사귀를 두 번 더 봤다. 잎이 떨어지는 계절에 오기 딱 좋은 길이었다. 또다시 상상했다.

'옛 사람들도 가을에 이 길에서 떨어지는 잎을 봤겠지?' 

옛길 끝자락엔 문화공간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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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는 만연산, 무등산 등과 연결되어 있다. ⓒ 신원경


너릿재에 오르면 무등산국립공원 안내지도가 나온다. 무등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수레바위 3.1km, 도덕산 3.1km, 만연산 4.8km, 장불재 7.4km. 아래에 차를 두고 산에 오르는 등산객도 있었다. 다음에 장불재 코스 도전~! 미리 예약하고 왔다.

옛길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 특이한 문화 공간을 만났다. 바로 '소아르 갤러리(soar area)'다. 여기에는 갤러리, 아트샵(Art Shop), 식당, 커피숍 등이 널찍한 공간에 함께 있었다. 방문객들을 위한 '컬쳐라운지(culture louge)'도 있었다. 빨갛고 까만 쇼파의 배열이 특이했다. 라운지 옆 공간에는 소아르 갤러리 대표이기도 한, 조선대 미대 조소과 조의현 교수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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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르 갤러리의 모습. ⓒ 신원경


북유럽 예술가들이 직접 디자인한 생필품들을 파는 아트샵에서는 특이한 무늬나 모양의 머그컵들이 눈에 띄었다. 갤러리에는 '이매리 전시'가 한창이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다음달 15일까진데, 소아르 갤러리에서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전시들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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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옛길 화순 입구쪽에 위치한 소아르 갤러리에서 이매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 신원경


너릿재 옛길을 통해 화순에 다다랐다. 광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멀리 무등산이 보였다. 중간쯤 왔을 때 나도 낮잠을 자볼까 하고 의자에 누웠다. 잠이 밀려왔지만 잠들 수 없었다. 나무에 가려진 하늘 보랴, 짹짹거리는 새 소리 들으랴,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의 '딸 자랑, 아들 자랑' 엿들으랴 혼자 바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너릿재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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