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당사자이기에 도망갈 수 없다, 운명공동체다"

[일본 원전을 가다 ⑫ 인터뷰] NNAF(반핵아시아 포럼) 우노다 요코

등록 2013.10.24 09:16수정 2013.10.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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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다 요코씨 ⓒ 유혜준


우노다 요코씨에게 관심을 갖게 한 이는 오하라 츠나키씨였다. '탈핵 아시아평화 일본 서부지역 원전투어(이하 탈핵 원전투어)에 동행한 한국여성은 기자가 유일했다. 오하라씨는 한국참가자였지만, 일본여성이다. 오하라씨는 현재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조직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13년이나 된다. 당연히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 

이번 '탈핵 원전투어'에서 오하라씨 덕을 많이 봤다. '탈핵 원전투어'를 하면서 4명의 일본인을 인터뷰했는데, 전부 오하라씨가 통역을 해주었다.

우노다 요코씨는 사토 다이스케 NNAF(반핵아시아 포럼) 사무국장의 부인이다. 두 사람은 반핵 운동을 하다 만났다. 그것도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고 하지만, 대세가 그렇다. 한데 우노다 요코씨는 자신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토 사무국장과 결혼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노다씨는 "결혼하면서 남자의 성을 따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며 "성과 이름을 다 합한 것이 내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기자는 우노다씨와 말이 통하지 않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웃거나 간단한 인사만 주고 받았는데, 우노다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오하라씨가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해주었다. 결혼하고도 성을 바꾸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반핵활동을 했다, 후쿠시마에서 자주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사토 다이스케 NNAF 사무국장이 남편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가 반핵운동을 하게 된 두 번째 이유, 우라늄광산

"대단하신 분이에요."


오하라씨는 우노다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들을수록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터뷰를 청했고 10월 4일, 고베청년학생센터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우노다 요코씨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 '탈핵 원전투어'에서 인터뷰를 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통역은 오하라씨가 했다.

다음은 우노다 요코씨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 결혼한 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성을 그대로 지켰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일본 여성은 결혼하면 남자 성으로 바꾸는데,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성과 이름을 다 합한 것이 내 정체성인데 결혼하면서 그게 바뀌는 게 싫었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우노다씨는 사토 다이스케 사무국장과 결혼하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성(姓)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 일종의 사실혼 관계인데 사회적인 차별은 없는지?
"없다. 특별하게 불리한 것은 없다. 아이는 엄마 성을 따르고 사토씨는 자기 아이로 인정하는 걸로 되었다.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 아이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아이가 헷갈려 하는 시기도 있었다. 아이의 중학교 선생님이 사실혼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 때 반 아이들의 의견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 가족이라는 일체감이 없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결혼을 하더라도 붕괴되는 가족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가족으로 사는 집도 있다며 그것은 제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반 아이들도 많이 수긍을 했고, 그 이후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다."

기자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하자 우노다씨는 활짝 웃으면서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 탈핵운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체르노빌 원전사고 10주기에 인도네시아에 통역을 하려고 갔다. 집회가 끝난 뒤에 행진을 하는데 행진을 하면 안 된다면서 잡혀갔다. 그 때 너무 놀랐다. 집회만 해도 이렇게 당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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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원전투어' 여성 참가자들. 왼쪽부터 세코 카즈호, 오하라 츠나키, 이시마루 하츠미, 우노다 요코. ⓒ 유혜준


우노다씨는 반핵운동을 하게 된 두 번째 이유로 우라늄 광산을 꼽았다. 우노다씨의 고향은 도톳리와 오카야마 사이에 있는 곳인데, 우라늄 광산이 몇 군데 있었다. 그곳에서 채굴한 우라늄을 도카이 원전에서 연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도카이 원전의 폐기물 일부가 도톳리현에 있는 배 농장에 버렸고, 그 일대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당연히 배도 방사능에 오염됐다. 그 뒤 그 근처에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 우노다씨의 설명이다.

"그런 사실을 보고 시골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원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반핵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 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반핵운동을 시작할 때 이미 핵발전소가 전국적으로 많이 세워진 상황이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할 수 있으니까 해외에서 사람을 지원하거나, 일본으로 오면 통역이나 코디네이터 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후쿠시마를 찾아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역할에 변화가 온 것은 12년 전, 암에 걸리면서였다. 죽을 고비를 넘긴 우노다씨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살아남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그런 배경에는 1995년에 일어난 한신 대지진도 일부 포함된다.

한신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현장으로 달려간 우노다씨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냥 왔다갔다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말로 왔다갔다만 했을 리 없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뒤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후쿠시마를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는데 후쿠시마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한신대지진 때의) 답답함이 많이 해결되었다"고 우노다씨는 말했다. 후쿠시마에 가면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자원봉사를 한다.

- 아이는 부모의 반핵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좋게 생각해주는 것 같다. 오이 원전이 작년에 재가동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재가동을 반대하는 싸움을 했다. 그 때 아이와 함께 갔다. 그 전까지는 아이가 '우리 부모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는데, 그 때 같이 (반핵투쟁을) 하고 나서 '우리 부모가 이상한 게 아니라 (반핵운동을) 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반핵운동을 계속했으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보고 책도 많이 읽고 하면서 핵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나니 내가 지금까지 남의 일처럼 생각해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반핵운동을 어떤 자세로 하고 있었는지 반성했다. '아마도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겠지' 하고 있었던 것이 지금 와서 너무 후회가 된다."

- 탈핵 원전투어 참여 이유는?
"오이 원전(후쿠이현에 있다)은 많이 가봤는데 서일본에 있는 원전은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아 이번 기회에 가서 현지에서 싸우는 분들을 만나고 싶었다. 또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서 알리고 싶었다. 특히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오신다니까 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기는 한데, 후쿠시마에서 일반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 소감은?
"탈핵 원전투어를 하면서 '연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연대라는 게 말을 하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많이 할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연대를) 실현할 수 없고 진짜 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후쿠시마 사람들

- 일본 먹거리들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면서 불신이 심하다. 중학생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는지?
"생산지가 서일본인 것을 골라 먹인다. 우유나 생선은 많이 먹지 않는다."

- 원전의 위험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데, 일본에서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이 잘 팔린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먹을 것과 관련해서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방사능)에 대해 관심이 없고 모르니까 그냥 먹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나만 먹지 않으면 된다는 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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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다 요코씨 ⓒ 유혜준


첫 번째 부류 사람들은 탈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먹을 것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탈핵 집회에 참여를 권유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 사람들은 오로지 나만 방사능 오염 식품을 먹지 않으면 된다, 나만 피폭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우노다씨의 설명이다.

"이런 사람(두 번째 부류)은 반핵 집회에도 관심이 없다. 이미 일본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다. 피폭을 각오하고 살아야하는데 그런 생각이 없다. 가해자라는 생각도 없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문제인 것은 이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후쿠시마를 떠난 피난민은 15만~16만 명에 이른다. 후쿠시마 피난민들은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긴다고 한다. 그로 인해 차별을 받거나 왕따를 당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번호판을 탄 차량들에게 돌이나 계란을 던지면서 후쿠시마로 돌아가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쿠시마 사람들이 원전사고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피해자인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다른 지역으로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안 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일본 사람들이 전부 일본을 떠나야 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났고 우리는 그냥 여기서 살아야 한다."

결국 일본은 운명공동체로 이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탈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할 준비를 하고 있고, 원전 건설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우노다씨의 '운명공동체' 이야기에 대해 통역을 하고 있던 오하라씨 역시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오하라씨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음식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한국의 원전을 멈추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시민단체는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앞으로 계획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후쿠시마에 남아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방재계획이다. 사고가 났을 때 피난계획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서 누워 있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후쿠시마에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피난계획이 필요하다. 그런 것은 행정에서 해야 하는데, 행정에서 못하는 부분을 해야 할 것 같다. 세 번째는 불매운동이다. 히타치 도시바 등 원전 메이커가 생산하는 가전제품 불매운동을 할 예정이다."
#우노다 요코 #반핵아시아포롬 #탈핵원전투어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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