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담마을에서 진메마을 가는 섬진강 길에는 먼지 폴폴 나는 흙길 대신 포장된 자전거 길이 나 있다.
김종길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이 보드랍고, 따뜻하고, 아득하고, 고요하고, 정적에 가까운 섬진강. 이따금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움직임만 감지될 뿐이다. 산 너머로 해가 눕기 시작하면서 얼굴로 내리쬐는 햇빛은 더욱 강해졌다. 열 살 난 딸아이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돌아올 때는 반드시 어떤 차라도 세워서 태워주겠노라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나서야 아이는 걸음을 힘차게 딛는 시늉을 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침묵을 지키던 아내가 무심코 한마디 툭 내뱉는다. 여행자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던 아내가 보기에도 이곳은 묘한 곳이었나 보다. 긴 골짜기에 강 한 줄기, 그 옆으로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길 하나, 아무리 눈여겨 봐도 산비탈에 밭 한 뙈기, 강변에 논 한 배미 없는 이런 외진 적막강산이 있단 말인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이따금 골짜기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여울목을 쏜살같이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꿈속을 거니는 줄 알겠다. 마치 소리 없는 산골짜기를 아득히 걷는 듯했다. 이백이 이곳을 보았다면 분명 '이곳은 별천지라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라고 읊었겠다.